한겨레가 전문가와 함께뽑은 2005 올해의 책 50
헌책방 순례 뒤돌아보기 낡은 책은 현재에서 멀어진 책. 낡아서 생기는 효과는 대개 두 방향. 컴퓨터처럼 업데이트가 가치인 분야는 쓸모 없어질 터이고, 문학작품처럼 쌓임으로써 빛나는 분야는 가치가 높아질 터다. 그러나 한 사회 또는 한 인간의 궤적인 점에서 전혀 값없는 것은 없다. 컴퓨터 용어의 변천에 관심둔 이한테는 사용설명서도 귀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헌책방은 그런 책을 파는 곳이다. 헌책방 순례라 했다. 순례는 찾아가며 예를 표하는 것이니 존숭은 아니어도 존중의 염이 깔렸다. 천지사방 흩어진 그런 책을 한 곳에 모으는 일이 헌책방 주인몫이다. 분별하는 눈썰미의 그들은 버려진 파지뭉치에서 쏠쏠한 것을 건져내고, 죽어서 흩어질 운명의 개인 장서를 거두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필요한 이에게 전한다. 책은 돌고 돌아 낡지 않는 콘텐츠를 전하고 자체는 너덜거려 사라질 때 제값을 한다. 그 순환의 한 고리를 맡아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주니 헌책방 주인의 공덕은 작지 않다. 그들의 일과는 파지간과 고물상을 뒤지고, 묶어서 지고 나르고, 닦고 붙이고 꽂는 일. 폐포는 먼지가 쌓이고 얼굴은 햇볕에 그을고 손은 갈퀴처럼 볼썽 사납다. 설핏 보아 힘들고 구질구질하여 맡은 바 구실과는 달리 영 폼나는 일이 아니다. 하여 때로 좀글붙이들한테 당신이 뭘 알아? 무시당하고, 좀노랭이한테는 거저 얻어 비싸게 판다고 타박을 당한다. 하니, 순례라 제목 붙여 그 노고에 경의를 표하기로 망발은 아닐 터이고 ‘책과 지성’ 섹션의 꼬리에 붙어 어색하지 않을 터이다. “헌책방은 사양업종”이라는 말은 주인들한테서 더 쉽게 듣는다. 호시절이 있어 흘린 밥도 주워먹던 때가 그때다. 이제 밥 없으면 피자 사먹지 하는 때, 제 자식한테는 새 것만을 사주겠다는 사람들한테 헌책은 당치 않는다. 책방은 피자가게를 피해 한적한 골목에 돌아앉았고 핸드폰 가게에 밀려 고가도로 그늘에 숨어 지나가는 이의 눈길은 못 끌고 찾아오는 이의 발길이 닿을 따름이다.
책이 마른다는 얘기도 공통이다. 귀중한 고서는 해를 거르고 그냥저냥 쓸만한 책들조차 점차 만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구제금융 이후 그런 현상은 더하니 새책의 출판과 소비가 줄어든 것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한다. 더불어 박제된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인터넷과 책을 권하지 않는 대학입시 제도의 영향으로 책이 팔리지 않은 탓도 있다. 그래서 책방 주인들은 눈에 띄면 띄는대로 책을 모아둔다. 동네책방은 웬만하면 중간상인들한테도 책을 넘기지 않으려 한다. 책과 손님의 연결망이 성글어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인터넷 판매. 웬만한 책방이면 홈페이지를 만들어 두고 표지와 서지정보를 띄워 전국의 독자로 손님 삼는다. 특히 2차 책방의 경우 특화전략도 가능한 불황 타개책. 인문사회, 또는 미술 관련 서적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 고서 또는 희귀본만을 판매하는 곳이 그러한 예다. 이러한 곳은 입지가 중요하여 특정지역, 또는 인터넷에 둥지를 틀었다. 헌책방의 어려움은 책의 순환에서 조금이나마 숨통을 틜 수 있다. 책은 결코 모실 것이 아니다. 다만 지식과 정보, 그것을 순환시키는 매체로 의미 있을 뿐이다. 쌓아두어 죽은 책을 살리는 곳이 헌책방. 주변에 혹 썩어나는 책이 없는가 둘러보시라.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연재헌책방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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