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순례/크리스천 중고서점
지난 12월 말 어느 날 오후 동작구 사당동 크리스천 중고서점(02-3474-5594. www.cubook.co.kr). 한 신학생이 책을 골랐다. 한아름 계산대에 옮겨놓고 다시 책꽂이 사이를 훑었다. “더러우면 어때요. 싸게만 주세요.” 대부분 새책같은 헌책을 찾는데 반해 그는 밑줄이 그어졌거나 낡았거나를 가리지 않았다. 3만원으로 빈 배낭을 책으로 가득 채운 그는 뿌듯한 표정이었다. 30분 정도 머물면서 그만큼 책을 고른 것은 그의 눈썰미 덕이지만 책들이 출판사, 주제별로 깔끔하게 정리된 탓이 크다.
목장갑과 토시로 중무장한 주인 이성애(48)씨는 책의 위치와 서지사항 역시 준비된 듯 척척이다. 2000년 8월 처음 25평으로 살림을 겸해 책방을 차려 5년이 지난 지금은 70평 공간에 책을 가득 메우고 있다. 뿐더러 12월 들어 2주째 3,500여권의 책이 서울 제기동과 잠실, 안양, 인천, 충북 청원, 대구 등지에서 들어오고, 필리핀의 신설 신학교에서 원서 500권을 한꺼번에 빼가는 등 책의 드나듦이 빈번하다. 인터넷 판매도 겸해 이씨 부부와 딸, 그리고 아르바이트 1명 등 4명이 달라붙어야 할 만큼 분주하다.
책값은 정가의 반값을 기준으로 하되 상태와 수요에 따라 40~60%를 오간다. 책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대부분 목회자나 신학생인 만큼 제 값에 중개해야 한다는 게 이씨의 지론이다. 그래서 100원 단위만 빼줄 뿐 깎아주는 법은 없다. 미아리에서 별러서 찾아왔다는 한 목사는 5만원어치를 현금으로 사고 3만원어치는 카드를 긁었다. 그래도 미진해 머뭇거리다가 책 한권을 더 집어든 그는 “그냥 드린다”는 주인의 말에 감격하고 말았다.
전국 유일의 기독교전문 헌책방인 이곳은 신학 교과서, 성경 주해서, 각종 설교집 외에 신앙 관련 잡지와 단행본을 고루 갖췄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몰트만, 한국신학연구소), <모세와 출애급>(주희석, 대한기독교출판사), <종교와 소외>(그레고리 바움, 이원규 역, 대한기독교출판사),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서인석, 분도), <예수 바울 요한>(유동식, 대한기독교서회) 등 일반인의 눈에 띄는 책도 있다. <요세푸스>는 시디로도 준비돼 있다.
“5년 뒤에는 부부 선교사로 나갈 생각입니다.” ‘자비량 선교’, 즉 교회의 지원없이 자비로 중국을 오가며 선교활동을 하는 목사 남편를 따르겠다는 것. 아내는 책방으로 돈을 벌고 남편은 목회와 선교로 돈을 쓰는 쪽이다. 5년 만에 이렇게 크게 성장한 것은 신학생 때 서점 알바를 했던 남편의 도움이 컸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이씨는 말했다. 이익금은 남편의 선교활동 외에 다른 이의 선교활동에도 나누어 보탠다는데, 사용처와 액수는 굳이 밝히지 않았다.
마음이 가난한 주인과 손님들이 모이는 공간이니 이곳은 천국이란 말인가. 어쨌든 책을 좋아하는 기독교인에게 적어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만은 행복할 터이다. 벽에 걸린 시계는 세속의 시간을 가리켰고 주인은 책값으로 현금 외에 카드와 상품권도 받았다.
할인점 2층에 자리한 책방을 나와서 보니 3층은 교회, 지하는 술집이었다. 술을 마시면서도 기도를 하는 사람은 착하고 기도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나쁘다는데…. 언뜻 스친 짓궂은 생각.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할인점 2층에 자리한 책방을 나와서 보니 3층은 교회, 지하는 술집이었다. 술을 마시면서도 기도를 하는 사람은 착하고 기도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나쁘다는데…. 언뜻 스친 짓궂은 생각.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연재헌책방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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