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이 이렇게 전세계적인 화제가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요.(웃음) 캐스팅될 거라고 기대도 안 했거든요. 요즘에야 조금씩 실감하고 있어요. 처음 겪는 일이 너무 많은데 진짜 감사하죠.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벼락스타’가 된 배우 정호연은 지난 1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얼떨떨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456억원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 걸고 생존 게임에 참여하는 이야기인 <오징어 게임>에서 새터민 출신 소매치기 강새벽 역을 인상적으로 소화해냈다. 연기 데뷔작이 넷플릭스 세계 1위에 오르는 엄청난 행운을 거머쥐며 <오징어 게임>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른 그는, 작품 공개 뒤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기존 40만명대에서 4일 현재 1300만명대까지 급증하는 등 국내외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이 됐다.
신비로운 마스크와 독특한 목소리로 국외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가 대중에게 처음 얼굴을 알린 것은 모델로서였다. 2013년 모델 경연 프로그램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온스타일)에서 공동 준우승을 한 뒤 샤넬 등 명품 브랜드 광고와 쇼에 출연하는 등 주로 국외에서 활동해온 그는, 2018년 9월 세계 여성 모델 랭킹 톱 50위권에 들기도 했다. 배우 이동휘와 6년째 공개 연애 중이기도 하다.
“수명이 짧은 (모델) 직업 특성상 동료들끼리 ‘앞으로 뭘 해야 하나’ 고민을 나눌 때도 연기는 너무 어려울 거 같아 선택지 중 상위에 놓지 않았어요. 그런데 (모델로서) 정점을 찍고 내려오면서 일이 하나씩 줄어 시간 여유가 많이 생겼죠. 영화도 많이 보고 소설도 많이 읽다 보니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오징어 게임>에서 새터민 출신 소매치기 강새벽 역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정호연. 넷플릭스 제공
지난해 모델 소속사 에스팀에서 배우들이 주로 있는 사람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한 뒤 한달도 안 돼 오디션을 보게 됐다는 그. “미국 뉴욕에서 패션위크 무대를 준비하던 중 연락을 받았어요. 잠자는 시간 줄여가며 열심히 촬영해 소속사에 보냈는데 감독님이 ‘직접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대충 짐을 싸서 돌아왔죠. 감독님과의 인터뷰 땐 너무 긴장해서 눈도 못 마주치고 대답도 잘 못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실제로 새벽이처럼 리액션이 없는 애인 줄 아셨대요.(웃음) 캐스팅됐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놀랐죠.”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지난달 28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오디션 당시를 떠올리며 “연기 경험은 없지만 동물적인 느낌, 때 묻지 않은 야생마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신인이 가진 불안감마저 신선하게 느껴졌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막상 연기를 해보니 모든 것이 상상과 달랐지만, 황 감독과 두 주연배우 이정재·박해수의 조언과 격려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신인배우 정호연의 강렬한 연기는 무엇보다 그의 바지런한 노력이 낳은 결과인 듯싶다.
“새벽이와 가까워지려고 새벽이 시점으로 일기를 쓰기도 했어요.(웃음) 중국에서 숨어 지내다가 공안에 들켰는데 엄마가 남매를 구하기 위해 희생당했다고 생각했어요. 동생 철이를 잘 부탁한다는 엄마의 마지막 말까지 일기장에 적어가며 연기를 준비했죠.”
캐릭터 분석을 위해 새터민 다큐 영화 <마담 비(B)>도 봤다는 그는 “그분들의 삶이 어떤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찾아봤다”며 “연기도 액션도 처음이라 사투리 수업과 함께 무술 수업도 들었다. 감독님이 ‘우리 드라마는 막싸움인데 왜 그렇게 열심히 무술을 배우냐’고 하셨다(웃음)”고 너스레를 떨었다.
캐릭터가 사랑받은 이유에 대해선 “‘남을 위한다’는 게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며 “스스로는 개인주의적인데, 새벽이는 게임에 들어온 것도 가족을 위해서다. 새벽을 보면서 좀 더 남을 생각하며 사는 삶도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누구도 믿지 못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로 날이 서 있던 새벽과 달리, 인터뷰 내내 웃는 얼굴로 명랑하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준 정호연은 극 중 다양한 게임 가운데 가장 자신 있는 게임으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꼽았다. “제가 모델 출신이어서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걸 굉장히 잘하거든요.(웃음)”
신인으로 ‘글로벌 돌풍’이 부담스럽지 않냐고 묻자 담담하게 답했다. “박해수 선배랑 통화했는데 ‘두 발을 땅에 잘 딛고 있자’고 하시더라고요. 요즘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되새기는 말이에요. 제가 하는 일에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겠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미리 겁먹지는 말자’는 생각이에요. 한발 한발 땅을 디디며 열심히 해나가려고요.”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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