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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방영된 에스비에스(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는 2001년 서울 홍제동 화재 사고를 다뤘다. 지금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사고는, 국가가 소방공무원들을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내던져두고 방치했는지를 폭로했던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2001년 3월4일 새벽 홍제동 주택가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러 출동했던 소방관들은, 아직 아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집주인의 이야기에 화마에 휩싸인 다세대주택에 들어갔다가 주택이 붕괴되면서 매몰되었다. 서울 시내 11개 소방서에서 달려온 구조대원 250여명이 삽과 망치를 들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파헤쳐가며 필사적으로 구조에 나섰지만, 끝내 구조한 7명 중 6명이 순직했다. 건물에서 대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던 집주인의 아들은 애초에 일찌감치 현장을 떠난 상태였고, 심지어 집에 불을 지른 방화범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이지만, <꼬꼬무>는 한발 더 들어가 그 무렵 소방공무원들의 열악했던 현실을 짚었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24시간 2교대 근무를 서야 했던 소방관들은,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한 바로 다음날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상태로 다른 현장에 출동해야 했다. 변변한 소방 병원도 없어 자비로 치료한 뒤 보상을 청구해야 했음은 물론이고, 화재 진압을 위해 필수인 방화복도 비싸다는 이유로 지급이 안 되는 탓에 엉뚱한 방수복을 입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이런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생명을 구하는 고귀한 직업이라는 사명의식 하나로 버텨낸 소방공무원들의 헌신을 보며, <꼬꼬무>의 이야기꾼들과 이야기 친구들은 모두 연신 눈물을 훔쳤다.
<꼬꼬무>는 “다행히도 지금은 많은 것들이 개선된 상태”라고 말했지만, 사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소방관들이 제때 소방장갑을 지급받지 못해 자비로 소방장갑을 사는 현실이 화제가 되었던 건 홍제동 화재 사고 이후 13년이 지난 2014년의 일이었다.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된 건 불과 2년 전인 2020년이었는데, 신분만 국가직이 되었을 뿐 아직 조직, 인사, 예산 등의 권한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소방복합치유센터 설립은 2018년에 간신히 그 논의가 시작되어 아직도 ‘짓는 중’이며, 소방청 차원의 트라우마센터 설립 논의는 2020년에야 추진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사실까지 다 짚었더라면 아마 눈물 때문에 정상적으로 녹화를 진행할 수 없었겠지. 그리고 이 에피소드가 방영된 건, 하필이면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용산소방서 최성범 서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사흘 뒤였다.
작정하고 다룬 것일까. 아마 공교로운 우연에 가까울 것이다. <꼬꼬무>는 에피소드마다 A4용지 1만2500장, 서류상자 다섯개 분량의 자료 조사를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카이브를 뒤져 관련 영상을 찾아내고, 에피소드에서 다루는 사건의 관계자들을 찾아내 인터뷰를 요청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그렇게 취재 작가가 조사해 온 자료를, 대본 작가가 다시 ‘친구들끼리 사석에서 편하게 이야기하는’ 포맷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촬영과 편집도 빨리 해치울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다. 3명의 이야기꾼이 3명의 이야기 친구와 독대해서 대화하는 특유의 포맷상, 같은 내용의 녹화를 세차례 거쳐야 한다. 그렇게 촬영된 세쌍의 대화와 관련 영상을 숨가쁘게 교차편집해야 하는 후반 작업도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그러니 아주 과격하게 추산해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10월29일 밤부터 작업을 준비했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제작진이 2주가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해당 에피소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건 다소 무리한 추측이다. 심지어 특수본이 참사 당일 구조 현장을 지휘한 최 서장을 입건한 사실이 알려진 건 11월7일이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소방공무원들의 헌신과 그런 공무원들을 푸대접해온 국가의 무책임을 돌아본 <꼬꼬무> 에피소드가 사흘 뒤인 11월10일에 방영된 건, 제작진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결과라고 보기보단 그저 공교로운 우연이라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백보 양보해 미리 비축해 만들어둔 에피소드의 방영 순서를 다소 앞당기는 건 가능했다 하더라도, 애초에 소방공무원들이 묵묵히 견뎌야 했던 애환을 다룬 에피소드를 이 무렵에 제작하게 된 건 우연이었으리라.
그러나 어떤 우연은 의도보다 더 정확하게 시대를 꾸짖기도 한다. ‘도대체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물을 수밖에 없었던 참사의 그날, 참사를 수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소방공무원들과 구급대원들의 헌신은 사람들이 유일하게 체감할 수 있었던 국가의 존재였다. 현장의 참혹함에 마이크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기자들에게 참사 상황을 브리핑하던 최 서장의 모습을 셀 수 없이 많은 시민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헌신은, 참고인 조사도 없는 입건으로 모욕당했다. 참사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최 서장은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아쉬움과 강한 분노”를 표하면서도 “용산을 관할하는 소방서장인 만큼 도의적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누군가 전력으로 책임에서 달아나는 동안, 헌신했던 이들은 모욕을 당하면서도 책임에서 달아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꼬꼬무>의 공교로운 방영 시기를 생각한다. 난 제작진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런 시기에 편성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여전히 이건 우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고위직들이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현장에서 쉴 틈 없이 뛰어다닌 실무자들을 희생양으로 내몬다는 시민들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이 시기에, 홍제동 화재 사고를 다룬 <꼬꼬무> 에피소드가 방영된 것만큼 ‘정확한 우연’이 또 있을까? 어쩌면, 그 우연은 21년 전 그때에도 지금도 소방공무원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는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는 걸 고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소명의식을 지닌 이들의 헌신을 착취하여 위기 속으로 등 떠미는, 그럼으로써 제 책임을 면피하는 국가의 맨얼굴 말이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