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보통 도청 중심으로 알려져 있죠. 사진이나 영상자료들도 그렇고요. 송암동 민간인 학살 사건은 사진 한장, 비디오 한컷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번 작품을 극영화로 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이유입니다.”
다큐멘터리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2020)의 이조훈 감독이 개울가에서 놀던 11살 어린이까지 무차별 학살당했던 광주 ‘송암동 사건’을 조명한 극영화 <송암동>을 완성했다.
영화는 광주 시내는 피로 물들었지만 아직 고요하고 평화롭던 1980년 5월24일의 광주 변두리 송암동을 비춘다. 이날 광주시 외곽의 송암동 일대를 지나던 공수부대는 시민군에게 발포를 시작한다. 이때 이 지역 목포방향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구축하던 전투교육사령부대는 총격이 자신들을 향한 것인 줄 착각해 계엄군과 오인 교전을 벌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수부대원 9명이 사망하자 공수부대는 동네를 쥐잡듯 뒤지며 보복학살에 나선다.
8일 용산 씨지브이(CGV) <송암동> 언론공개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감독은 <광주비디오>이후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합류하면서 송암동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2020년 겨울 영화에 등장하는 당시 계엄군 대위의 제보를 받았어요. 이듬해 초부터 송암동 피해자들과 계엄군100여명을 찾아다니며 만났고 지금도 만나고 있습니다. 당시 결정적인 목격자가 됐던 분들 상당수가 돌아가셨거나 증언을 꺼리세요. 아직 진실이 다 밝혀지지 않은 송암동 사건의 조사를 독려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당시 민간인들이 가지고 있던 총을 회수하기 위해 송암동에 갔던 시민군 최진수 일행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열일곱살 나이로 시민군에 합류했다가 살아남아 훗날 국회 광주청문회 증언을 비롯해 송암동 사건을 알리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최진수씨는 요란한 총소리를 피해 동료들과 민가에 몸을 피한다.
영화 <송암동>을 연출한 이조훈 감독. 훈프로 제공
이 감독은 사건이 벌어지던 당시 송암동에서 산 하나 넘으면 나오는 이웃 마을에 살았다고 한다. 감독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체는 몰랐지만 엄마가 근처에서 몇살 많은 형들이 죽었으니 나가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해서 어린 형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 했다.
영화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당시 생존자들의 진술을 90% 이상 시나리오에 담아 극으로 재구성했다. 또 결정적인 제보를 한 당시 계엄군 대위의 진술도 녹여냈다. 이 대위의 진술을 토대로 총살을 주저하는 군인들을 대신해 계엄군 한사람이 민간인 약 20명을 일렬로 세워놓고 총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감독은 “그 사건의 가해자가 누군지 특정은 됐지만 복수 확인 등의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대한 조사활동이 다음 작품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암동>은 올 하반기 개봉을 목표로 펀딩을 진행 중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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