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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날뛰는 ‘젊은 히틀러들’ 경계령

등록 2006-06-01 19:36수정 2006-06-02 16:44

2000년 6월 옛 동독 지역 데사우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공격해 숨지게 한 프랑크 미트바우어(앞쪽)와 크리스티안 리히터(오른쪽서 두번째)가 법원에서 유죄선고를 받았다. 신나치주의를 따르는 당시 16살의 이들 청소년은 살인 혐의로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다. 할레/AP 연합
2000년 6월 옛 동독 지역 데사우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공격해 숨지게 한 프랑크 미트바우어(앞쪽)와 크리스티안 리히터(오른쪽서 두번째)가 법원에서 유죄선고를 받았다. 신나치주의를 따르는 당시 16살의 이들 청소년은 살인 혐의로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다. 할레/AP 연합
극우세력의 이유 없는 혐오로 옛 동독서 유색인종에 폭행 잇따라
히틀러의 ‘우생학’ 악몽 재현될라 노심초사 위험성 알려야 하나 마나 ‘시끌’
안과 밖/월드컵과 독일 (상)

“친구를 찾은 손님처럼 세계를” (Die Welt zu Gast bei Freunden). 전 세계인의 축구제전을 맞아 독일 정부가 정한 월드컵 공식 슬로건이다. 하지만 이 화려한 잔치를 즐기러 원근 각지에서 찾아 올 손님들 중 반갑지 않는 사람들이 끼어 있다면? 아니 반갑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때려 죽일만큼 미운 인간들이 그들 중 섞여 있고 이미 수십 명이 두들겨 맞거나 혼수상태에 빠졌고, 더러는 목숨까지 잃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듯 보인다면?

그렇다면 마땅히 잔치를 준비하는 주인은 체면이 좀 깎이는 한이 있더라도 누가 이 거대한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는가를 미리 세상에 알려줌으로써, 자신이 초대받지 못했음을 미처 모른 채 멀리까지 구경왔다 목숨잃고 가지 않도록 그 위험성을 알려야 하는가? 아니면 이 개명된 세상에서, 그것도 가장 문명화된 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감추고 묵살해야 할 것인가? 혹은 생명 부지를 보장하기 어려운 몇몇 위험지역(No-Go-Areas)만을 선정하여 손님들에게 가지 못하도록 그 위험성을 알리는 방안은 어떠한가? 가상이 아니라 실제로 월드컵을 불과 2주 앞둔 독일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국민적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폭력은 국가의 안위를 흔드는 행위?

논란의 시작은 이러하다. 지난 부활절 새벽, 포츠담의 한 버스정거장에서 극우파 2명의 폭행으로 독일국적의 에티오피아 출신 37살 엔지니어가 머릿뼈가 함몰되고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건 발생 4일 뒤 연방검찰은 극우세력 젊은이 둘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둘은 범행을 일절 부인하며 알리바이를 제시했으나 사고현장의 DNA(유전자)와 일치했고, 알리바이 또한 신뢰성이 없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특별히 이 사건을 해당 브란덴부르크주의 지역 검사에게 배당하지 않고 연방 검사장이 자신의 관할임을 선언함으로써 수사는 연방차원에서 진행됐다. 연방검사는 국가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헌법의 기본정신을 해치는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판단되었을 경우에만 간여한다. 외국인에 대한 폭력행위의 경우 독일 헌법재판소는 그 행위가 모방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거나, 독일의 대외 인상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만한 사건은 연방검사 소관임을 판결한 적이 있다. 따라서 처음에는 연방검사장 카이 넴이 이 사건의 수사를 자신의 소관으로 선언한 것은 독일이 외국인에 대한 폭력을 국가차원에서의 중대한 사건으로 보고있음을 드러낸 것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 브란덴부르크주의 내무장관은 단순 폭력사건을 연방검사장이 맡음으로써 오히려 사건의 의미를 과장하고 정치화시켰으며, 마치 전 독일의 치안이 위협받는 듯한 인상을 국외에 알리는 결과만 가져오게 했다고 비난했다. 여기에 내무장관까지 논쟁에 가세해, 금발이나 푸른 눈의 사람들도 이러한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과거 동독지역의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은 동독정권의 고립정책에 기인한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사건의 핵심을 인종주의적 편견이 아니라 단순한 폭력행위로 상대화시키는 듯 한 인상을 남겼다. 나아가 이 사건은 그렇다면 외국인을 상대로 한 폭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연방검사가 개입해야 할 것인가,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아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사람들간의 의견충돌에 따른 폭력행위일 경우에도 매번 연방검사가 개입해야 할 것인가, 등의 비판을 야기했다. 그러나 연방검사장은 사건이 자신의 소관임을 밝히는 일은 수사의 진행결과에 따라서가 아니라, 사건의 성격이 독일의 치안을 위협하는 것이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서도 사건발생 며칠 만에 또 다시 토고 출신 흑인이 옛 동독지역 비스마에서 세명의 독일인한테 폭행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직 정부 대변인의 자살골?

이처럼 일련의 외국인에 대한 폭력사태가 옛 동독지역을 중심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지난 사민당 정권에서 대변인직을 역임했던 우베-카르스텐 하이예는 5월1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브란덴부르크주의 일부지역에는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디 가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은 곳이 있다. 그런 곳에 잘못 갔다가는 어쩌면 더 이상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 외국인에 가해지는 폭력의 위험성을 공개적이고도 직접적으로 경고하였다. 그에 따르면 월드컵을 앞두고 극우세력과 인종주의의 위협 앞에서 쉬쉬하며 인종차별적 폭력을 사소한 일로 축소할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가 마침내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하이예 발언의 적합성을 두고 찬반 논란이 일어나면서 독일 여론은 일시에 둘로 갈라졌다. 주로 현 정부의 책임을 맡고 있는 쪽이나 관광관련 단체에서는 독일 전체를 외국인 혐오국으로 만드는 무책임하고 과장된 발언이라는 비난이 쏟아져 나왔으며, 그래서 정말로 외국인들이 무서워 독일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극우세력을 지원하는 “자살골”을 쏜 격이라며 반발하였다.

이에 반해, 야당이나 외국인 관련 단체들 또는 사민당 당내에서는, ‘사실을 전했다고 전령이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며, 단지 누구나 아는 일을 공개적으로 문제화한 것일 뿐이고, 이제라도 현실을 인정하고 전 사회적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이예의 언급을 둘러싸고 온라인상에서는 실제로 옛 동독지역에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 이들과 결혼한 독일인들, 혹은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어린이를 입양한 독일 부모들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대우와 폭력에 대한 경험들들 토로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금발이나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모욕적 언사는 거의 일상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그의 인터뷰가 알려진 이틀 뒤, 마치 하이예의 외국인에 대한 경고를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쿠르드족 출신의 베를린 시의원이 자기 지역구에서 시비를 걸어온 청년들한테 모욕적인 욕설과 함께 병으로 머리를 맞아 입원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일부러 동베를린지역에 거주하면서 외국인 차별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정치인이었다. 또 지난 22일에는 막데부르크의 한 한국인 유학생이 욕설과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하이예 언급의 적합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이처럼 크고 작은 외국인에 대한 폭력행위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큰 잔치를 앞둔 독일의 현실인 것이다.

증가하는 외국인에 대한 폭력과 극우세력

독일 국회 내무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독일내 극우 세력에 의한 폭력범죄는 2004년 776건에서 2005년 959건으로 23,6% 증가했고, 그 중 97건이 브란덴부르크에서 발생하였으며, 816건이 상해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하지만 고발되지 않은 사건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통일 이후 극우세력 폭력으로 죽은 희생자는 모두 17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문제가 되는 브란덴부르크 주에서는 인구 10만명에 4건 꼴로 외국인에 대한 극우세력의 폭력이 발생하고 있는데, 1990년 한 앙골라인을 스킨헤드가 죽인 이후 지금까지 방화, 야구방망이, 돌 등에 의한 살인사건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며, 심지어 1994년 가나출신 흑인은 달리는 전차에서 산채로 내던져지기까지 했다. 포츠담에서는 올해만 22건의 외국인에 대한 극우세력의 폭력이 보고됐다. 네오나치의 수도 전국적으로 2004년 3800명에서 2005년에는 4100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보고됐다. 지난 연방 국회의원선거에서 옛 동독지역의 젊은이들이 극우정당에 던진 지지율은 5~10%에 달하고 있다.

인류는 과연 좀 더 현명해진 것일까?

지금까지 독일인들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극우주의적 사고의 원인을 옛 동독지역의 경제적 쇠퇴와 이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으로 돌리는 데 익숙해졌다. 그래선지 우려의 목소리 가운데 심각해지는 인종차별주의적 현상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려는 입장은 찾기 힘들다. 지금부터 정확히 70년 전, 베를린에서는 올림픽 축전이 벌어졌다.
이진일/튀빙겐대 역사학 박사, 성균관대 강사
이진일/튀빙겐대 역사학 박사, 성균관대 강사
그 자리를 히틀러는 독일의 발달된 과학기술과 문명, 세계를 향한 개방성, 그리고 이를 통한 히틀러 정권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기회로 삼았다. 이후 그는 과학과 문명의 이름으로 독일인이라는 우수한 인종의 배양을 위한 거대한 실험을 실시한다. 정신 장애인, 지체 부자유자, 동성애자, 집시 등 약 80만명의 “살 가치가 없는 인간들”이 우생학과 인종 위생학의 이름으로 각종 실험 속에 죽어갔으며, “효율적” 관리와 “산업화된” 기술이 동원된 동유럽의 가스실에서는 600만의 유대인들이 소리없이 연기로 사라져갔다. 너무나도 극적인 사건은 그 한번으로 끝나고 후대에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높은 수준의 문명과 과학의 발달, 계몽과 근대화가 인간이 더욱 현명해졌다는 증거일 수 없음을 우리는 역사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오히려 인간사에서 한번 일어났던 일이야말로, 그렇기 때문에 언제고 또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징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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