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씨
커버스토리 / ‘소운서원’ 연 재야 철학자 이정우씨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조선 철학자 퇴계 이황을 만나 우리 시대를 이야기한다? 재야 철학자 이정우(48)씨가 서울 한복판에 서원을 열었다는 소식은 이런 흥미로운 초시공간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한동안 철학아카데미를 이끌었던 그는 지난달 자신의 호를 따 ‘소운서원’(逍雲書院·www.sowoon.org)이란 이름의 연구 공간을 세웠다. 마포구 동교동 한적한 골목 6층 건물의 5층에 자리잡은 이 서원은 말하자면, 현대판 학문 공동체다. 30평이 채 안 되는 조그만 공간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회원들이 각자 공부할 수 있는 방이 있고, 그 안쪽에 연구실과 세미나실이 있다. 과거의 서원이 특정한 인물이나 집단의 지도 아래 국가철학을 익히며 관료 예비군을 키우는 곳이었다면, 이 새로운 서원은 공부와 연구에 전념하는 학자 공동체라는 점에서만 옛 서원을 닮았다. 출세의 욕망은 뒤로 돌리고 용맹정진의 정신만 오늘에 되살려 낸 곳이 이 서원이다.
이정우씨는 외국 유학을 하지 않은 순수 국내파 철학자다. 그의 이력은 동·서 철학의 만남으로 요약할 수 있다. 통상의 철학 연구자들이 서양이면 서양, 동양이면 동양의 어느 한 철학 유파를 주로 공부하고 그 유파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서양과 동양을 가로지르는 철학적 회통의 길을 찾아 왔다. 들뢰즈 철학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이면서 동시에 동북아 철학 사상을 찬찬히 탐색해 왔다. 학문 내부를 억지로 갈라놓은 벽들을 뛰어넘어 전체를 조망하려는 것이 그의 야심이라면 야심이다.
동서양 가로지르고자 대학 교수직 스스로 반납
철학아카데미 세워 7년간 강좌 ‘철학 대중화’
“이제 정신의 식민지성을 깨야 합니다”
탐구 밀도 높일 ‘학자 공동체’ 서원 불밝혔다 그런 ‘가로지르기’의 태도는 그가 대학이라는 제도권 아카데미를 벗어나 재야에 선 이유가 되기도 했다. 1998년 그는 서강대 철학과 교수직을 스스로 반납했다. 미셸 푸코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제도권 식 구획으로 보면 서양 철학 전공자, 그것도 프랑스 현대 철학 전공자였다. 그런 그가 동북아 철학을 연구하고 한국철학을 강의하는 것을 교수 사회는 일종의 금기 위반으로 보았다. 제도가 자유를 제압하는 모습이었다. 탐구의 열정은 어떤 장벽 앞에서도 멈출 수 없다고 믿은 그는 미련 없이 강단을 내려왔다. 2000년 그는 철학아카데미를 세웠다. 제도권 바깥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대중 교육 공간이었다. 조광제 공동대표를 비롯한 다른 철학 연구자들과 함께 철학의 자유정신을 대중화하는 시민 교육에 힘을 쏟았다. 7년 동안 500여 강좌를 열었고, 7000여명의 수강생들이 철학의 세례를 받았다. 고등학생부터 할머니·할아버지까지 이 개방된 시민교육 공간에서 지식의 샘물을 나누어 마셨다. 만만찮은 성과였고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엔 아쉬움도 쌓였다. 대중을 상대로 하여 가르치다보니 자기 사상을 세우는 데 필요한 공부 시간이 부족했다. 그가 소운서원을 세운 건 나름의 결단의 결과였다. 탐구의 밀도를 한 급 더 높여 새로운 철학을 제시할 때가 됐다는 판단이었다. 좀더 집약적으로 연구하고 토론하고 결과물을 생산할 공간을 그는 옛 서원의 모습에서 따왔다.
“동유럽에 슬로베니아학파가 등장해 지금 세계 철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듯이, 이제 한국도 독자적인 철학사상학파를 내보일 때가 됐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남의 것 배우는 데만 몰두했습니다. 영·미권이든 독일어권이든 프랑스어권이든 그쪽 철학을 공부했으면 한국이라는 용광로에 융해시켜야 하는데, 다들 자기가 공부한 철학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서점에 가보면, 서양철학은 언어권 별로 구분돼 있지만, 현대 한국 철학이라는 코너는 따로 없습니다. 우리 사상이 없는 겁니다. 이런 정신의 식민지성을 깨야 합니다.” 소운서원은 그 자신에게는 자기 사상을 닦는 공간이지만, 더 넓게 보면 학문적 고립을 극복해 우리 시대의 한국 사상을 찾는 터전이기도 하다. 현재는 20여명의 연구자들이 중심이 돼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자크 라캉의 <세미나>를 텍스트로 삼아 두 종의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그 중 5~6명을 따로 모아 저술·번역팀도 꾸렸다. 함께 공부할 사람들이 더 모이면 세미나를 매일 가동할 계획이다. 대학의 여름·겨울 방학에 맞춰 고전읽기 교실로 열 생각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 전집 같은 고전을 집약적으로 읽고 토론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헤겔은 철학을 ‘개념으로 포착한 시대’라고 표현했는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19세기 산업사회가 열려 노동자계급이 출현했는데, 마르크스는 그 시대 현상을 ‘소외’라는 개념으로 포착했습니다. 철학은 이렇게 자기 시대를 설명해야 합니다. 거기에 더해 철학은 미래를 전망하는 기능을 해야 합니다. 우리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좋은 삶을 살려면 인간은 어떠 노력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그게 철학이 할 일입니다. 서양과 동양의 철학을 깊고 넓게 공부해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 속에서 융합한다면 학문적 보편성과 삶의 구체성이 만나는 경지를 밝힐 수 있을 겁니다.” 문의 (010)3008-8636.글·사진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철학아카데미 세워 7년간 강좌 ‘철학 대중화’
“이제 정신의 식민지성을 깨야 합니다”
탐구 밀도 높일 ‘학자 공동체’ 서원 불밝혔다 그런 ‘가로지르기’의 태도는 그가 대학이라는 제도권 아카데미를 벗어나 재야에 선 이유가 되기도 했다. 1998년 그는 서강대 철학과 교수직을 스스로 반납했다. 미셸 푸코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제도권 식 구획으로 보면 서양 철학 전공자, 그것도 프랑스 현대 철학 전공자였다. 그런 그가 동북아 철학을 연구하고 한국철학을 강의하는 것을 교수 사회는 일종의 금기 위반으로 보았다. 제도가 자유를 제압하는 모습이었다. 탐구의 열정은 어떤 장벽 앞에서도 멈출 수 없다고 믿은 그는 미련 없이 강단을 내려왔다. 2000년 그는 철학아카데미를 세웠다. 제도권 바깥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대중 교육 공간이었다. 조광제 공동대표를 비롯한 다른 철학 연구자들과 함께 철학의 자유정신을 대중화하는 시민 교육에 힘을 쏟았다. 7년 동안 500여 강좌를 열었고, 7000여명의 수강생들이 철학의 세례를 받았다. 고등학생부터 할머니·할아버지까지 이 개방된 시민교육 공간에서 지식의 샘물을 나누어 마셨다. 만만찮은 성과였고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엔 아쉬움도 쌓였다. 대중을 상대로 하여 가르치다보니 자기 사상을 세우는 데 필요한 공부 시간이 부족했다. 그가 소운서원을 세운 건 나름의 결단의 결과였다. 탐구의 밀도를 한 급 더 높여 새로운 철학을 제시할 때가 됐다는 판단이었다. 좀더 집약적으로 연구하고 토론하고 결과물을 생산할 공간을 그는 옛 서원의 모습에서 따왔다.
“동유럽에 슬로베니아학파가 등장해 지금 세계 철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듯이, 이제 한국도 독자적인 철학사상학파를 내보일 때가 됐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남의 것 배우는 데만 몰두했습니다. 영·미권이든 독일어권이든 프랑스어권이든 그쪽 철학을 공부했으면 한국이라는 용광로에 융해시켜야 하는데, 다들 자기가 공부한 철학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서점에 가보면, 서양철학은 언어권 별로 구분돼 있지만, 현대 한국 철학이라는 코너는 따로 없습니다. 우리 사상이 없는 겁니다. 이런 정신의 식민지성을 깨야 합니다.” 소운서원은 그 자신에게는 자기 사상을 닦는 공간이지만, 더 넓게 보면 학문적 고립을 극복해 우리 시대의 한국 사상을 찾는 터전이기도 하다. 현재는 20여명의 연구자들이 중심이 돼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자크 라캉의 <세미나>를 텍스트로 삼아 두 종의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그 중 5~6명을 따로 모아 저술·번역팀도 꾸렸다. 함께 공부할 사람들이 더 모이면 세미나를 매일 가동할 계획이다. 대학의 여름·겨울 방학에 맞춰 고전읽기 교실로 열 생각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 전집 같은 고전을 집약적으로 읽고 토론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헤겔은 철학을 ‘개념으로 포착한 시대’라고 표현했는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19세기 산업사회가 열려 노동자계급이 출현했는데, 마르크스는 그 시대 현상을 ‘소외’라는 개념으로 포착했습니다. 철학은 이렇게 자기 시대를 설명해야 합니다. 거기에 더해 철학은 미래를 전망하는 기능을 해야 합니다. 우리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좋은 삶을 살려면 인간은 어떠 노력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그게 철학이 할 일입니다. 서양과 동양의 철학을 깊고 넓게 공부해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 속에서 융합한다면 학문적 보편성과 삶의 구체성이 만나는 경지를 밝힐 수 있을 겁니다.” 문의 (010)3008-8636.글·사진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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