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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시각으로부터 해방 가능성 보여준 ‘난타’

등록 2007-11-30 20:04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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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의 분산’에서‘ 소리의 혼돈’으로 -송승환의 ‘난타’-

송승환이 〈난타〉의 원안을 기획하고 총감독하여 초연한 것은 1997년 10월이었다. 그러니까 올해로 꼭 10년이 되는 셈이다. 그동안 〈난타〉 공연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2000년 전용관 개관 이후 대중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난타〉의 매력은 무엇일까? 무엇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까? 한국의 전통에 국제적 대중성을 가미했기 때문일까? 남녀노소 누구든 즐길 수 있는 공연이기 때문일까? “〈난타〉의 미덕은 관객을 끊임없이 작품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이다”라는 평론처럼 관객과 쌍방향 소통하며 함께 호흡하는 공연이기 때문일까? 속된 말로 “스트레스 팍!팍! 사라지게 하는 공연”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작품의 본질적 특징인 ‘비언어(Non Verbal) 퍼포먼스’에 ‘두드림의 언어’가 역설적으로 결합하기 때문일까?

이 모든 것이 〈난타〉의 특징이자 성공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난타〉를 문화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어떤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곧 문화적 활동이 인간 존재 의미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살펴본다면, 우리는 난타의 공연이 그 리듬과 소리에 앞서 ‘시각의 난장’을 만든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난타〉의 비밀은 바로 ‘시각의 분산화’에 있다. 전통적인 연극이나 고전 발레 아니면 오페라·뮤지컬·서커스 공연 등은 어떤 장면과 행위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런 공연은 무대 위에서 요란한 연출을 해도 사람들의 시각 행위를 무대의 중심으로 집중시키려 한다. 이 공연들의 특징은 관객의 눈을 붙잡아 두는 데에 있다. 이는 ‘관객(觀客)’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연극은 관객의 시선을 배우의 연기에 붙잡아 두고, 발레는 춤동작에, 서커스는 곡예에 붙잡아 둔다. 이런 특성은 무대가 아닌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화에서도 별난 기술적 방식으로 발견된다. 영화는 클로즈업의 예술이다. 그것은 시각의 집중을 극대화한다. 영화의 현란한 액션과 파괴 장면들도 그 요란함으로 시각을 분산시키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액션과 장면에 긴장된 시선을 모이게 한다.


시각은 수천년 전부터 예술 표현에서 핵심적인 것이다. 특히 공연 예술에서는 음악과 음향 그리고 대사가 시각적 표현과 함께 종합적 구성에 참여해도 시각이 핵심이 되어왔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시각과 청각을 종합하는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영상예술’이라고 불린다. 시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예술적 표현과 향유에 관심이 많았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시각을 모든 감각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그는 실물이 아닌 환상의 개념을 설명하는 데에도 상상을 유발하는 영혼의 작동 이상으로 시각을 강조한다. 그는 환상을 감각, 주관적 견해, 객관적 사고 등과 비교하면서 그리스어 판타지아(phantasia)가 빛을 뜻하는 파오스(phaos)에서 유래함을 주목한다. 이것은, 인간에게 빛과 연관된 감각은 시각이고 시각은 감각 중의 감각, 곧 ‘으뜸 감각’이며 판타지아는 ‘보는 것’과 연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시각은 오랫동안 인간의 예술문화 활동에서 중심적 구실을 해왔다. 그 결과 디지털 문명까지 가세한 오늘날 인간은 바야흐로 ‘시각 활동의 과잉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른바 ‘영상문화의 시대’라는 말이 이를 증명해준다. 그런데 〈난타〉는 시각을 집중하면서 즐기는 공연이 아니다. 무대의 구성에서부터 배우의 연기에 이르기까지 이 퍼포먼스가 제공하는 것은 ‘시각의 분산화’다. 이 공연의 무대에는 중심이 없다. 네 명의 출연자가 각각의 도마를 난장의 리듬으로 두드릴 때도 관객들의 시선은 어떤 중심에 집중되지 않고 지속적인 분산의 과정에 노출된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긴장한 관객이 아니라 공연의 편안한 참여자가 된다. 이제 시각은 집중의 긴장에서 해체의 체념을 경험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연은 시각의 분산화로 ‘중심을 놓아버린’ 참여자들을 ‘소리의 혼돈’으로 몰고 간다. 요리사들에다 매니저까지 장단의 난장판에 합세하는 엔딩 장면에서 배우들은 김치통을 비롯해서 다섯 개의 거대한 양념통들을 마구 두드린다. 어느 순간 그들의 몸은 교차하는 조명에 묻혀 하반신밖에 보이지 않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카오스는 극장 안을 ‘하나’로 융합한다. 카오스는 그 어원대로 ‘입벌림’을 뜻한다. 난장의 장단은 공연 참여자들을 소리의 원천 그 ‘텅 빈 굴’ 속으로 몰고 간다. 혼돈은 구별이 없어서 하나가 되어버리는 순간의 멍해짐이다. 그 멍함에서 뭐가 탄생할지 우리는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군더더기 없는 ‘난타’는 우리를 영상문화로부터 해방시킬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이 독특한 퍼포먼스가 미래를 향해 던지는 문화철학적 화두이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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