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디기 서정주(1915~2000)
예수의 손발에 못을 박고 박히우듯이
그렇게라도 산다면야 오죽이야 좋으리오?
그렇지만 여기선 그 못도 그만 빼자는 것이야.
그러고는 반창고나 쬐끔씩 그 자리에 붙이고
뻔디기 니야까나 끌어 달라는 것이야.
“뻐억, 뻐억, 뻔디기, 한봉지에 십원, 십원,
비 오는 날 뻔디기는 더욱이나 맛좋습네.”
그것이나 겨우 끌어 달라는 것이야.
그것도 우리한테뿐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국민학교 6학년짜리 손자놈들에게까지 이어서
끌고 끌고 또 끌고 가 달라는 것이야.
우선적으로, 열심히, 열심히, 제에길!
미당 서정주는 한국 시언어의 가장 아스라한 경지다. 그 사실을 의심하는 것은 제 모국어 감각이 둔함을 자랑스레, 푼수처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20세기 한국 시사(詩史)를 양분한다면, 필시 미당과 그 나머지일 것이다. 그 한편, 청년 미당에게서 특히 도드라졌고 만년에 이르기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탈-정치적 탐미주의는 이 불세출의 시인에게 적잖은 공격거리를 주었다. 식민지배와 군사독재를 통과하며 그의 입에서 발설된 몇 편의 극히 정치적인 계기시들(occasional poems)은 그를 역사의 법정에 세우고 싶어한 문학 검사들에게 의심할 수 없는 유죄의 증거였다. 그러나 그 역사의 법정은 동시에 문학의 법정이기도 했으므로, 검사들은 미당의 시적 성취가 허약함을 증명하기 위한 도로(徒勞)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반대로 그의 변호인들은 그 정치적 기념시들의 증거능력을 훼손하기 위한 상황논리의 구성에 몰두했다. 그것 역시 헛된 수고였다. 양측 다 문학과 삶이 내적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가정 위에 서 있었다. 그런 가정은 오컴의 면도날처럼 매력적이고 깔끔하지만, 사실 앞의 겸손함을 잃었다. 판관인 우리가 보기에, 시인 스스로 종천순일(從天順日)이라 변명한 그의 공적 자아는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나, 그 한편으로 그 휘어진 삶 속에서 솟아난 모국어의 휘황한 빛줄기 앞에서 한국 현대문학사는 모자를 벗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조금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문학과 삶이 고스란히 포개지는 것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든 삶이든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다. 만물이 유전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우리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에게 기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내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세속의 일상 속에서 저절로 안다. 생각(의 힘)도 변하고, 느낌(의 힘)도 변한다. 미당이 걸었던 나그넷길의 반고비쯤에 태어난 ‘뻔디기’는 이 위대한 시인이 매우 드물게만 노래했던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우리 마음속에 분노로 꽂아놓는다. 시인이 그 고단함에 분노하는 것은 그것이 불공평한 제도가 강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화자는 손발에 못을 박히고도 그 아픔을 견뎌내며 살아갈 용의가 충만하다. 그러나 제도는 그런 불구의 삶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제도는 그 못을 빼라고 강요하고, 그 자리에 반창고나 붙이고 ‘뻔디기 니야까’를 끌라고 강요한다. 제도는 화자에게만이 아니라 화자의 (아들과) 손자에게까지 그 리어카를 끌고 끌고 또 끌고 가라고 강요함으로써, 화자에게 자신이 노예임을 또박또박 일깨운다.
미당과 시대를 공유했던 독자가 아니라면, “뻐억, 뻐억, 뻔디기, 한 봉지에 십원, 십원,/ 비 오는 날 뻔디기는 더욱이나 맛좋습네”라는 번데기 장수의 외침에서 배어나는 가난과 후진(後進)의 냄새를 결코 맡지 못하리라. 다시 말해, 이 시의 소재는 어떤 세대에 밀착해 있다. 그러나 이 시의 주제라 할 가난의 대물림과 계급 재생산은 보편적인 것이고, 자본주의가 난숙할수록 더욱 공고해진다. 화자의 손자가 번데기 리어카를 ‘우선적으로, 열심히, 열심히’ 끌고 끌고 또 끌고 가듯, 내 아들도, 당신의 아들도, 내 손자도, 당신의 손자도 상처에 반창고나 붙인 채 가난과 질병의 삶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화자가, 그러므로 ‘반동적 시인’ 미당 서정주가 박정희에게, 그리하여 그의 딸 박근혜에게 외친다. “제에길!”(영어로 살짝 데치면 “Fuck You!”)
고종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