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나의 시를 말한다
그 머나먼
홍대 앞보다 마레지구가 좋았다
내 동생 희영이보다 앨리스가 좋았다
철수보다 폴이 좋았다
국어사전보다 세계대백과가 좋다
아가씨들의 향수보다 당나라 벼루에 갈린 먹 냄새가 좋다
과학자의 천왕성보다 시인들의 달이 좋다 멀리 있으니까 여기에서 김 뿌린 셈베이 과자보다 노란 마카롱이 좋았다
더 멀리 있으니까
가족에게서, 어린 날 저녁 매질에서 엘뤼아르보다 박노해가 좋았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상처들에서 연필보다 망치가 좋다, 지우개보다 십자나사못
성경보다 불경이 좋다
소녀들이 노인보다 좋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책상에서
분노에게서
나에게서 너의 노래가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기쁨에서, 침묵에서, 노래에게서 혁명이, 철학이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집에서, 깃털 구름에게서, 심장 속 검은 돌에게서
내 동생 희영이보다 앨리스가 좋았다
철수보다 폴이 좋았다
국어사전보다 세계대백과가 좋다
아가씨들의 향수보다 당나라 벼루에 갈린 먹 냄새가 좋다
과학자의 천왕성보다 시인들의 달이 좋다 멀리 있으니까 여기에서 김 뿌린 셈베이 과자보다 노란 마카롱이 좋았다
더 멀리 있으니까
가족에게서, 어린 날 저녁 매질에서 엘뤼아르보다 박노해가 좋았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상처들에서 연필보다 망치가 좋다, 지우개보다 십자나사못
성경보다 불경이 좋다
소녀들이 노인보다 좋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책상에서
분노에게서
나에게서 너의 노래가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기쁨에서, 침묵에서, 노래에게서 혁명이, 철학이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집에서, 깃털 구름에게서, 심장 속 검은 돌에게서
진은영
“훔쳐가도 좋다” 같은 세계를 다르게 배치하는 것. 그럼으로써 다른 세계로 도약하는 것. 진은영은 다른 세계가 이 세계의 밖이 아니라, ‘먼 곳’의 형태로 이 세계의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노래한다. 먼 곳은 지금 여기의 현실에 깃들어 있는 (불)가능성을 압축한다. 먼 곳을 품은 덕에 세계는 본래보다 더 넓어질 수 있고, 삶은 실제보다 더 풍부해질 수 있다. ‘먼 곳’에는 우리가 가진 적 없이 잃어버린 것들과, 마땅히 가져야 하나 갖지 못한 것들이 영주한다. 먼 곳은 실은, 불완전한 세계와 삶에 상처처럼 뚫려 있는 빈 곳이다. 가까이 있으나 어디에도 없는 이 빈 곳=먼 곳은 세계와 삶의 빈약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새로운 배치의 가능성을 공급한다. 먼 곳을 편애하는 시인 진은영은 재현이 아닌 재배치를 통해 현실에 개입한다. 이때 시는 세계를 재배치하고 삶을 재구성하는 기술이 된다. 진은영이 추구하는 시는 감각의 낡은 매뉴얼을 버리고 계속 새 버전을 제작해 배포하는, 즉 무의식적 차원의 ‘감각의 재분배’(자크 랑시에르)를 통해 세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미학적이며 정치적인 운동이다. ‘사랑’과 ‘혁명’의 동의어인 이 운동은 세계가 그대로여도 주체가 위치와 행위를 바꿈으로써 진전된다. 진은영의 말처럼, 같은 장소도 다른 문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계가 열린다. 재배치는 세계의 고착과 반복, 양극화에 저항하는 전략이다. 진은영의 시는 나와 타자, 이것과 저것, 단어와 우정, 금잔화와 망치 등을 바꾸는 “공정한 물물교환”(<훔쳐가는 노래>)의 장소가 된다. 이곳에서는 독특한 물품이 진열되고, 파격적인 거래가 이루어진다. 단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진은영의 첫 시집)을 살 수 있고, “그 머나먼” 것과 내 손안의 것, 다른 것과 같은 것을 바꿀 수 있다. 그중 가장 놀랍고 아름다운 물물교환은 낡은 세계를 지불하고 새로운 세계를 사는 것이다. 우리의 낡은 감각과 상상력을 새것으로 교환해 주는 ‘시’의 좌판 앞에는 진은영이 써놓은, ‘훔쳐가도 좋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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