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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송경동, 시를 짓느니 죄를 짓겠다

등록 2016-02-19 19:54수정 2016-02-20 15:21

송경동, 나의 시를 말한다
혜화경찰서에서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 수록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러 가니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
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
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탐앤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
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도 했고
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러곤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
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
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채증해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에서 철거민 다섯 분이 공권력 강제침탈 과정에서 화장당했다. 투기개발이익 3조원의 환상이 저지른 명백한 ‘학살’이었다. 그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그해 내 넋도 어디로 번질지 모르는 불길처럼 걷잡을 수가 없었다. 일할수록 빈곤해지는 시대의 쳇바퀴. 제로성장 시대를 맞아 축적 위기에 도달한 자본은 부자 감세와 각종 규제 완화, 금융과 부동산 투기, 그리고 비정규직 제도화 등 노동자들 몫을 추가 수탈하며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 서민들의 위기로 돌리려 했다.

이 시는 당시 끌려갔던 혜화경찰서를 나오며 썼다. 김수영 시인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 /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분개하는 너무도 작은 자신을 한탄하다, 4·19 혁명 직후 ‘선량한 백성들이 하늘같이 모시고 / 아침저녁으로 우러러보던 그 사진은 / 사실은 억압과 폭정의 방패이었느니 / 썩은 놈의 사진이었느니, / 아아 살인자의 사진이었느니’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 밑씻개로 쓰자>고 할 때의 해방감을 떠올려 보면서, 혼자 낄낄낄거리며 썼던 시다.

이런 불량한 시들을 지으며 나는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꾸준하게 일수 찍듯 경찰서로, 검찰로, 법원으로 끌려가고 있다. 재작년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외치며 청와대로 향하다 일곱 건을 추가했다. 작년 이맘때에는 쌍용차, 유성기업, 콜트콜텍, 기륭전자, 엘지유플러스(LGU+)와 에스케이브로드밴드 노동자들과 함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오체투지’에 나섰다가 여섯 건을 추가했다. 각기 다른 경찰서에서 보낸 소환장 일곱 통을 한날한시에 받는 가문의 영광을 누려보기도 했다. 내 삶이 어떤 문학사에 기록되는 것보다 경찰 ‘조서’와, 검찰 ‘공소장’과 법원 ‘판결문’에 기록되는 것이 얼마나 벅차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들은 여전히 내게 ‘알아서 불어라’고 한다. 나도 연애시나 지으며 ‘풀피리’나 멋들어지게 불고 싶은 날라리 시인이지만, 3면이 바다인 땅에서 4대강을 1자로 줄세우고 대운하를 놓겠다던 이명박이 ‘대똘아이’가 아니면 뭐냐고 불지 않을 수 없었다. 무수한 복선의 역사를 자신의 가족사라도 되는 양 천편일률 ‘국정화’시키려는 박근혜 씨 짓이 ‘닭짓’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공공연히 불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는 ‘청년 일자리’ 핑계지만 뒤로는 모든 이에게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 시대를 선사하려는 노동법 개악이 사기가 아니면 뭐냐고 목이 터지도록 분다. 시가 안 되면 몸으로라도 들이밀고 분다. 차벽을 밀어보고, 용역깡패들과 드잡이를 해보고, 점거농성에 함께 들어간다. 김수영이 ‘온몸으로 온몸을 밀고 가는 게 시’라고 했던 뜻이 ‘시가 안 되면 몸으로라도 살아봐라’ 바로 그 뜻 아니겠냐고 즐겁게 해석해보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온하고 건방진 시를 쓰고 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가 2000만 노동자들의 대변자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내 친구인 박준선과 배태선과 남정수와 박정상과 또 그 누구를 함부로 구속하지 않고, 전쟁 없고 핵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강정과 밀양 어르신들을 탄압하지 않고, 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백남기 농민을 직사 물대포로 살인진압하지 않고, 온갖 무능과 독점과 부패로 한국 사회 세월호를 거듭 침몰시키지 않는 세상이 된다면 나도 다른 시를 써볼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 경찰들이 조서를 받을 때, 당신은 그때 ‘사랑’과 ‘정의’를 위해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 아니냐고, 당신은 그 당시 사유재산에 무단 침입한 게 아니라 모두가 공평히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피치 못하게 그 불의의 담장을 넘었던 게 아니냐고 물어보는 세상이 된다면 충분히 나도 다른 아름다운 시를 써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을 우러러 /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죽어간 젊은 윤동주가, ‘내 고장 칠월은 /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을 떠올리다 베이징 감옥에서 죽어간 이육사, 서대문형무소에서 ‘쇠처럼 찬 이불을’ 덮고 <조선독립이유서>를 썼던 한용운이, 0.7평 독방에 갇혀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5월을 노래하지 말라’고 절규했던 김남주 시인의 꿈이 모두 그러했을 것이다. 더 위대한 시를 짓는 일보다 진실을 위해 더 큰 죄 짓기를, 더 작아지고 외로워지길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되길 소망해본다.

송경동
송경동
송경동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과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냈다.



그의 죄는 마음이 찢어진 것

송경동의 시는 공동체 안에서 떠돌고 있는 공동체 밖의 목소리를 듣게 한다. ‘듣게 하는 시’로서 송경동의 시는 듣지 않는 자들의 부동자세를 듣는 행위로 변환하는 것을 꿈꾼다. 공동체는 자주 ‘안’보다 더 많은 ‘밖’의 목소리들로 소란한데, 비민주적인 사회일수록 이를 불편한 잡음이나 소음으로 간주한다. 구획된 삶의 공간들과 제도의 침묵에 저지당한 목소리는 마침내 시와 예술에 다다른다. 시는 가장 개인적이면서 공동체적인 발성기관이며, 하나의 목소리로 통합될 수 없는 생명(공동)체의 육성이 울려 퍼지는 제한 없는 허공이다.

타인의 고통을 듣기 위해서는 ‘마음’이 움직이고 폭발해야 한다. 그 순간, “우리 본성의 더 착한 천사들”(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링컨)이 행동하기 시작한다. 인간이 타인을 향해 마음이 부서져 열리는 연금술을 행할 때, 고통은 폭력 대신 생명력을 촉발하고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다(파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송경동의 꿈은 ‘인간적인, 그래서 민주적인’ 마음의 연금술을 전파하는 것이며, 이 연금술을 험난한 노동의 현장에서 익혀온 “가장 천대받던 별들이 이끌어온/ 희생의 역사, 사랑의 역사/ 변혁의 역사”를 계승하는 것이다(‘별나라로 가신 택시 운전사께’).

듣지 않는 타자들을 향해 절규하는 송경동의 시는 울음에서 간신히 단어와 문장이 된다. 송경동과 그의 시는 ‘노동’과 ‘시’와 ‘꿈’이 같은 목적어와 서술어를 사용하는 우리 시대의 귀한 예다. 건설현장에서 막일을 하는 노동자, 2000년대 시단에서 현장 노동시를 쓰는 예외적 시인, 한국 사회에서 민주와 정의와 평화를 꿈꾸다 여러 번 잡혀간 시민. 송경동은 이 세 정체성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특이점이며, 오늘의 한국 사회와 한국 시의 뼈아픈 상징이자 사건이다. 송경동의 죄는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도 쉽게 잊힌 타인의 고통에 마음이 찢어졌다는 것이며, 가난한 노동자에게 강요된 타자의 목소리를 감수하며 계속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사소한 물음에 답”할 차례는 이제 ‘나’에게 도착해 있다.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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