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 나의 시를 말한다
혜화경찰서에서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 수록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러 가니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
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
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탐앤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
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도 했고
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러곤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
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
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채증해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
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
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탐앤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
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도 했고
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러곤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
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
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채증해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
송경동
그의 죄는 마음이 찢어진 것 송경동의 시는 공동체 안에서 떠돌고 있는 공동체 밖의 목소리를 듣게 한다. ‘듣게 하는 시’로서 송경동의 시는 듣지 않는 자들의 부동자세를 듣는 행위로 변환하는 것을 꿈꾼다. 공동체는 자주 ‘안’보다 더 많은 ‘밖’의 목소리들로 소란한데, 비민주적인 사회일수록 이를 불편한 잡음이나 소음으로 간주한다. 구획된 삶의 공간들과 제도의 침묵에 저지당한 목소리는 마침내 시와 예술에 다다른다. 시는 가장 개인적이면서 공동체적인 발성기관이며, 하나의 목소리로 통합될 수 없는 생명(공동)체의 육성이 울려 퍼지는 제한 없는 허공이다. 타인의 고통을 듣기 위해서는 ‘마음’이 움직이고 폭발해야 한다. 그 순간, “우리 본성의 더 착한 천사들”(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링컨)이 행동하기 시작한다. 인간이 타인을 향해 마음이 부서져 열리는 연금술을 행할 때, 고통은 폭력 대신 생명력을 촉발하고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다(파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송경동의 꿈은 ‘인간적인, 그래서 민주적인’ 마음의 연금술을 전파하는 것이며, 이 연금술을 험난한 노동의 현장에서 익혀온 “가장 천대받던 별들이 이끌어온/ 희생의 역사, 사랑의 역사/ 변혁의 역사”를 계승하는 것이다(‘별나라로 가신 택시 운전사께’). 듣지 않는 타자들을 향해 절규하는 송경동의 시는 울음에서 간신히 단어와 문장이 된다. 송경동과 그의 시는 ‘노동’과 ‘시’와 ‘꿈’이 같은 목적어와 서술어를 사용하는 우리 시대의 귀한 예다. 건설현장에서 막일을 하는 노동자, 2000년대 시단에서 현장 노동시를 쓰는 예외적 시인, 한국 사회에서 민주와 정의와 평화를 꿈꾸다 여러 번 잡혀간 시민. 송경동은 이 세 정체성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특이점이며, 오늘의 한국 사회와 한국 시의 뼈아픈 상징이자 사건이다. 송경동의 죄는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도 쉽게 잊힌 타인의 고통에 마음이 찢어졌다는 것이며, 가난한 노동자에게 강요된 타자의 목소리를 감수하며 계속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사소한 물음에 답”할 차례는 이제 ‘나’에게 도착해 있다.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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