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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출세한 오빠보다 노는 오빠가 좋다

등록 2016-03-11 19:07수정 2016-03-27 14:44

성기완의 노랫말 얄라셩
‘오빠는 풍각쟁이야’와 그들이 소비되는 방식
오빠는 풍각쟁이야 작사 박영호, 작곡 김해송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내 반찬 다 뺏어 먹는거 난 몰라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고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오빠는 트집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실여 난 실여 내 편지 남 몰래 보는 것 난 실여

명치좌 구경갈 땐 혼자만 가구
심부름 시킬 때면 엄벙땡하구
오빠는 핑계쟁이 오빠는 안달쟁이
오빠는 트집쟁이야

오빠는 주정뱅이야, 뭐
오빠는 모주꾼이야, 뭐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밤늦게 술취해 오는것 난 몰라
날마다 회사에선 지각만 하구
월급만 안 오른다구 짜증만 내구
오빠는 짜증쟁이 오빠는 모주쟁이
오빠는 대포쟁이야

오빠, 하고 발음해 본다. 아니, 실은 누가 나를 ‘오빠!’ 하고 부르는 상상을 해본다. 기분이 매우 좋다. 오빠 소리만 들어도 무조건 좋다. 오빠. 발음 자체가 약간의 흥분을 머금고 있다. 오!와 아! 라는 감탄의 모음 사이에 쌍비읍이 듬직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누나, 라고도 발음해 본다. 그리움이 가득하다. 오빠나 누나 모두 발음이 끝났는데도 입이 벌어져 있다. 그 벌어진 입 안에 여운이 맴돈다. 살가운 정이 메아리친다.

이런 ‘오빠’의 어감은 서구어로 번역이 불가능하다. 번역해 봐야 ‘브러더’다. 아끼고 따르는 ‘오빠-여동생’의 정을 어찌 ‘브러더’가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오빠는 또한 ‘아빠’와 한꾸러미에 속하는 말이다. 아빠가 없으면 오빠가 대신한다. 오빠 앞에 ‘큰’이 붙어 ‘큰오빠’가 되면, 그 오빠는 거의 아빠의 경지로 격상된다. 오빠는 말이 없다. 오빠는 밖으로 돈다. 큰오빠만 학교에 가고 가족 전체가 큰오빠만 바라본다. 큰오빠는 어깨가 무겁다. 한마디로 ‘집안의 기둥’이다.

아다시피 오빠는 피를 나눈 형제들끼리의 호칭이었지만 어느샌가 외간남자를 다정하게 부르는 말로도 쓰이게 됐고 이제는 결혼한 사이에서도 그리 이상하지 않게 쓰인다. 점차 ‘오빠’라는 말의 영향력은 커져간다. 낱말들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있다. ‘오빠’가 화려해져가는 동안 상대적으로 ‘아저씨’는 점점 더 망가진다. 아저씨는 꼰대와 동의어가 되어 간다. 그러나 아저씨들도 한때는 오빠였다. 아무리 그래 봐야 누가 아저씨를 원하랴. 우윳빛 ‘오빠’를 원하지. 어느 누리집을 찾아봤더니 오빠라는 말이 들어간 노래가 무려 1127곡이나 검색된다. 누나라는 말이 들어간 노래는 그 절반인 505곡. ‘오빠’는 대중음악 생산자들에게 전략적 키워드의 하나다.

시대마다 오빠는 변한다. 언제 들어도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는 동요 ‘오빠 생각’(1925)은 오빠의 부재를 노래한다. 오빠는 빼앗긴 조국이다. 실제로 이 가사를 쓴 최순애의 오빠는 계몽운동을 하느라 객지를 떠돌다 세상을 떠난 애국청년이었다고 한다.

일제 말기에 등장해서 한국 팝음악의 음악적 수준을 확 끌어올린 이른바 ‘재즈송’은 당대의 퇴폐적이면서도 쾌락적인 분위기를 묘사한다. 이때의 오빠는 ‘풍각쟁이’다. 늘 취해 있고 욕심이 많지만 재치 있고 활달하다. 이난영과 함께 최초의 걸그룹으로 회자되는 ‘저고리 시스터즈’에서 활동한 당대의 여가수 박향림이 부른 ‘오빠는 풍각쟁이야’가 바로 그런 오빠를 잘 묘사하고 있다. 당시 좀 논다는 오빠들은 요릿집, 기생집에 다녔다. ‘노는 오빠’의 첫 등장이다. 그런데 오빠는 왜 놀게 되었을까? 사연은 ‘오빠 생각’만큼이나 슬프다. 나라는 빼앗긴 지 오래, 출세는 친일과 동의어, 독립운동 소식은 가물가물, 이 상실의 시대에 오빠들은 좌절하고 향락에 빠졌다. 아편이 유흥가에 돌았다. 그것은 일제정책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래도 잘 노는 오빠가 출세해서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 노릇을 하는 놈들보다는 나았다. 달리 방법이 없었고 오빠는 술에 취해 밖으로 돈다. 집에 오면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여동생은 그런 오빠가 안됐다. 미워할 수 없다.

1938년에 오케레코드에서 발매된 ‘오빠는 풍각쟁이야’의 작곡가는 김해송(1911~50?)으로 가요 100년사 최고의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본명은 김송규이고 최고의 여가수 이난영의 남편이기도 했다. 육이오 때 납월북이 불확실한 상태로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그 걸작 전부가 1988년 월북작가 해금조치 이전까지 금지곡으로 묶이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빠는 풍각쟁이야’라는 만요풍 재즈송이다. 이 노래를 작사한 박영호는 조명암과 더불어 일제 말기 최고의 작사가였다. 그는 김해송과 호흡을 맞춰 많은 명곡을 만들어냈는데, 당대 구어체의 살아 있는 느낌을 포착하려는 사실주의적 시도가 돋보인다. ‘엄벙땡’(얼렁뚱땅), ‘모주쟁이’(고주망태) 같은 당대의 속어를 과감하게 사용하는가 하면 명치좌(지금의 명동예술극장) 같은 명소를 적극적으로 등장시키는 등 생생한 놀이문화를 노래에 담고자 했다. 역시 김해송-박영호 콤비가 지은 ‘모던 기생 점고’는 더 적나라하다. 취기에 젖어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는’으로 너무 유명한 ‘짝사랑’ 역시 박영호가 작사한 곡인데, 함경도 출신인데다가 해방정국 때 월북한 그를 대신해 김능인 작사로 표기된 후 금지곡 신세를 면한 곡이다.

당대의 오빠는 그 시대의 여동생들을 접수한다. 물론 요즘에는 역전현상도 일어난다. 당대의 여동생이 시대의 오빠들을 몰고 다닌다. 많이 바뀌었다. 2000년에 왁스는 오빠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오빠, 나만 바라봐’. 내가 학교 다니던 1980년대 이후 여자들이 드세진 건 확실하다. 우리 때는 학교에서 여자애들도 남자 선배에게 ‘형’이라고 했었다. 오빠 소리 듣기 힘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꼭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오빠는 여동생들의 로망이다. 심지어 연하의 남자친구를 오빠라고 부르는 여자애도 봤다. 헬조선의 오빠들은 어떤가. 여전히 노는 오빠지만 돈 있는 오빠다. 그래서 여동생들의 허망한 꿈자리를 자극하는 ‘오빠차’를 몰고 다닌다.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팝음악의 시장은 늘 오빠-여동생 사이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전략화함으로써 구체화된다. 오빠가 생산자든 그 반대든 마찬가지다. 그 상징적 관계로부터 짜릿한 성적 에너지가 발산될 때 대박은 터진다. 현대 팝음악은 어떤 면에서는 당대의 오빠와 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난 원치 않는 아이였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소녀들 앞에서 골반춤을 출 때, 있는 집 어른들은 그를 거의 강간범 취급 했다. 소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빠 앞에서 집단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런 음란한 오빠의 등장에 사회 전체가 패닉에 빠졌다. 비틀스의 노래는 이 비명에 묻혀 정작 들리지도 않는다. 오빠를 향한 여동생들의 사랑은 광란이 된다. 음란한 오빠를 둘러싼 부모와 소녀들의 대립은 기존의 남녀관, 윤리관의 붕괴로 이어지고, 팝은 그 붕괴를 노래하면서 동시에 이윤의 과실을 따먹는다.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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