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간다 작사: 이주현 작곡: 갤럭시 익스프레스
날 것 같았던 그때
날 것 같았던 그때
날 것 같았던 그때
가보자 노래를 부르며
눈을 감고서 떠나보자
하늘을 날 것 같았던 그때
하늘을 날 것 같았던 그때
안타깝지만 시간은 간다
안타깝지만 시간은 간다
같이 가자고 모두 다 같이 춤추며
함께 손을 잡고서 떠나보자
저 파도 치는 바닷가에 모여 불을 피워놓고
저 하늘 위로 구름 따라 별 따라 가보자
하늘을 날 것 같았던 그때
하늘을 날 것 같았던 그때
안타깝지만 시간은 간다
안타깝지만 시간은 간다
엠(M). 이제 너는 어디에도 없다. <워킹 온 엠프티>(Walking on Empty). 작년에 발매된 이 멋진 앨범은 네가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함께한 마지막 앨범이 되고 말았다. 앨범 제목처럼 너는 허공을 걸었다. 어느 물의 난간에서 몸을 던졌다. 너의 발밑에는 바람뿐이었고 일순 너는 자유로웠다. 안타깝게도 그 찰나의 절대적인 자유를 몸은 감당하지 못한다. 몸은 무거워 아래로 향하고 물에 닿았다. 너는 그렇게 몸의 거추장스러움을 벗어던졌고 가벼워진 영혼은 끝내 하늘을 날게 되었다.
지난주, 온 인디음악 신이 슬픔에 빠졌다. 검은 진에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무대에서 활화산을 뿜던 갤럭시 익스프레스 친구들은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하고 누런 베완장을 찬 모습으로 문상객들을 맞았다. 기타와 베이스와 드럼 스틱을 잡고 숨가쁘게 리듬을 쫓던 이른바 ‘탈진록(rock)’의 주인공, 이 3인조 록밴드 멤버들의 손은 다소곳이 모아져 있었다. 그 예의바름이 슬펐다. 같은 러브락컴퍼니 소속 친구들을 비롯한 절친했던 뮤지션과 기획자들이 상주 노릇을 했다. 너의 장례식에서 한국 인디록은 유족들과 더불어 상주였다. 돌아보니 한국 인디록이 너의 가족이었다. 너의 모든 것이었다.
너를 보내기 위해 인디 뮤지션들, 기획자들이 모두 모여 애도했다. 나 역시 이틀 밤을 너의 빈소에서 향과 소주 냄새와 함께했다. 한 친구가 말했다. “잘 살았네.” 이 사람들이 이틀간 공연을 했다면 그건 성대한 록 페스티벌이었다. 진짜 다들 모인 걸 보면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네가 헛살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수많은 공연을 기획하면서 그렇게 여러 군데로 전화하며 관객들을 모으더니 이번에는 우리 친구들을 모두 모았구나. 애썼다. 고맙다.
빈소로 오며 가며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던 노래가 하나 있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시간은 간다’. 네가 그토록 애써서 세상에 나오게 한 갤럭시의 4집 <워킹 온 엠프티>의 두번째 트랙이다. BPM 89 정도 되는, 살짝 느린 템포의 편안하고 아름다운 록 발라드인 이 노래의 후렴 부분을 하루 종일 반복해서 중얼거렸던 거 같다.
안타깝지만 시간은 간다
그래. 시간은 간다. 시간은 머물지 않는다. 시간이 왔다. 너는 떠나고 시간은 다시 간다
날 것 같았던 그때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E플랫-A플랫, 딱 두 코드가 메인으로 계속 반복된다. 1도-4도. 다운 튜닝을 해서 짚으면 E-A의 반복이 되겠지? 가장 록적이고, 가장 심플하고, 가장 날것이다. 가사도 참 쉽다. 누가 이 말들을 모르랴.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날아올랐다, 가 아니라 ‘날 것 같았’다. 날 줄 알았는데 날지 못했다. 시간의 태양은 다이달로스가 만든 날개의 밀랍을 녹여 이카로스를 추락시킨다. 확실한 건 날 것 같았던 때가 있었다는 것뿐이다. 행복했던 꿈의 순간일 뿐이다. 그때를 떠올리려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수밖에 없다.
가보자 노래를 부르며
눈을 감고서 떠나보자
그것이 노래의 본질이다. 노래가 유일한 방법이다. 노래는 날 것 같았던 그때, 산 것들에게는 한 번도 와주지 않을 그 시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때는 눈을 감아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크게 들을 것. 뒤돌아보지도, 심지어 앞을 보지도 말아야 한다. 보이는 것은 ‘같았던’의 세계일 뿐이다. 노래는 그 헛된 바람의 세계에서 목숨 가진 것들이 꿈꾸는 궁극의 비상을 어렴풋이 그려준다. 그러나 그 시간은 노래라는 폐쇄회로 속에서만 잠시 그림자를 보여주고, 다시,
안타깝지만 시간은 간다
인디신의 뮤지션들에게는 정말 안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헬조선의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닌 것 같다. 인디 음악이 홍대 주변의 땅값을 얼마나 올렸니. 그런데 점점 홍대에서 인디의 설 자리는 없어진다. 인디는 이런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다. 문화가 가치를 만들어내는데 정작 약삭빠른 돈의 가치는 문화를 내쫓는다. 도둑놈들. 그래도 우리는 노래할 거다. 우리는 ‘파도 치는 바닷가’에 있다. 우리는 ‘불을 피워놓고’, ‘별 따라 가보자’고 노래할 거다. 파도는 모래밭에 찍힌 노래와 춤의 발자국을 지울 것이다. 비극적이다. 노래는 신화의 영역에 혀뿌리를 담그고 있고, 모든 신화적인 앎은 비극을 품고 있다. 그러나 노래하는 이는 담담하다. 울며불며 가는 시간을 쫓아가지 않는다. 그냥 보내준다. 달리 방법이 없다. 이 노래의 중간에는 거의 공백 또는 묵념에 가까운 무려 열여섯 마디의 E플랫 근음만 치는 묵직하고 담담한 베이스 솔로가 있다. 둥둥둥둥…. 이 말없는 대목에서 시간은 시간마저 지운다. 검은 우주의 주인공, 블랙홀이 하늘에서 주린 입을 벌리고 있다.
없는 사람이 있다. 있던 사람이 없어진다. 그래. 갤럭시를 통해 배운다. 시간은 간다. 소리는 시간이다. 노래는 시간이다. 시간은 가고 노래는 끝난다. M, 너는 마흔셋 한평생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다녔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부산으로, 제주도로, 철원 디엠제트(DMZ)로, 텍사스의 오스틴으로, 사막으로, 댈러스로, 캘리포니아의 바닷가로, 샌프란시스코로, 숲으로, 뉴욕의 맨해튼으로, 도시 속으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황무지로, 영국 리버풀로, 모든 아이들을 태우고 다녔다. 그렇게 시간은 길 위에서 흘렀다. 너는 어디로든 다녔다. 너는 길 위에 있었다. 길이 너의 일터였다. 길찾기가 너의 일이었다. 그러던 네가 이제 운전대에서 손을 놓았다. 너는 드디어 도착했다. 너의 살과 뼈는 타올랐다. 시간은 모든 것을 태운다. 태워 재로 만들어 놓고 다시 태워 데려간다.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잘 쉬고 있니? 거기에도 음악이 있니? 이승에 묶인 우리는 ‘날 것 같았던 그때’라고 노래하지만 너의 영혼은 이제 우주를 날아다니겠지. 자유롭게. 우리는 ‘가보자’라고 노래하지만 너는 가 있고, ‘눈을 감고 떠나보자’고 노래하는 동안 너는 눈을 감았다. 어쩌면 음악은 거기에서 완성될지도 모르겠다. 노래는 허공에 거는 덧없는 주문인가 보다.
M. 은하 급행열차를 타고 떠난 너는 이젠 어디로든 갈 수 있다. 검은 우주 속 어디로든. 이제 너는 어디에도 있다.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