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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나를 구하는 바깥의 생각

등록 2016-03-25 21:39수정 2016-03-26 10:42

김연수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 陶淵明 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1941)

후기 시로 갈수록 백석은 점점 생각이 많아진다.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남자로서.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시인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생각에 골몰하니까. 수첩이나 일기장에 적은 글자들처럼,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계획하고 점검하고 반성한다. 생활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즉 골몰의 결과,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현실이 창조된다.

그러나 백석의 경우는 남다르다. 만주로 떠난 1939년 이후 그의 생각은 그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다. 생활과 삶 역시 생각과 함께, 그러니까 그의 외부에 있다. 백석은 ‘북방에서’라는 시에서 “아득한 녯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흥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라고 썼다. 이때의 부여며 숙신이며 발해 따위는, 생활과 삶의 바깥을 은유하는 단어들이며, 생각이 많아진 백석이 ‘지금’ 머무는 ‘치외’(治外)의 공간이다.

처음부터 생각이 백석의 바깥에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내가 생각하는 것은’)라고 쓸 때까지만 해도 생각은 그의 안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생각들은 백석의 가슴을 뜨겁게 달궈 눈물을 밀어올린다. 이것은 비애라고 할 만한데, 이처럼 비애는 대개 생활 안에 있고, 그래서 언제라도 눈물겹다.

그랬던 것인데, ‘흰 바람벽이 있어’를 쓸 때는 그 생각이 그의 바깥에 있다. 그렇다고 아주 멀지는 않고, 아무도 없는 방에 누워 있으면 저기 맞은편 벽이나 기껏해야 천장 정도 떨어진 곳에 그 생각이 있다.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백석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생각을 ‘본다’. 자기 바깥으로 나가면 인생은 수많은 현실 중 하나에 불과하며, 스크린마저 보이니 이는 필경 환영이다. 그런데 여기에 구원이 있다. 흰 바람벽을 배경으로 영사된 것처럼 보여질 때, 언젠가처럼 다시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솟구치려는 찰나, 바깥의 생각은 스스로 움직이며 백석에게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이라는 글자를 보여준다.

김연수 소설가
김연수 소설가
이 바깥의 생각은 몇 년 뒤의 마지막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라고 할 때,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라는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백석을 구한다. 이 구원의 효력은 영원하다. 그 후 북에서 그가 어떤 비애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그러나 잠시 뒤에 그가 고개를 들 수만 있었다면.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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