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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청년들이여, 물 달라고 외쳐라

등록 2016-04-08 20:18수정 2016-04-12 10:07

성기완의 노랫말 얄라셩
-‘물 좀 주소’와 전복의 목마름
물 좀 주소 작사·곡: 한대수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아! 가겠소 난 가겠소 저 언덕 위로 넘어가겠소
여행 도중에 처녀 만나본다면 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아! 그러나 비는 안 오네

* 1974년에 발매된 한대수 1집 앨범 <멀고 먼 길>의 첫째 곡. 한국 가요 사상 가장 처절하고 절박한 청유형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박정희 군사독재 시기 청년 세대의 ‘타는 목마름’을 절규한 포크송이다.

보통 노래의 맨 앞에는 ‘전주’라는 것이 있다. 전주가 무엇인가. 대문 앞에 깔린 레드카펫이다. 그 레드카펫을 밟고 목소리라는 손님이 오신다. 목소리는 또 무엇인가. 노래의 커튼 저쪽에 있는 비밀스러운 존재의 어른거림이다. 그 존재가 카펫을 따라 노래 속으로 사뿐히 입장한다. 노래가 그렇게 목소리를 새 신부로 맞아들이면, 그 둘의 사랑은 시작되고 듣는 이는 목소리와 연주의 주고받음, 사랑의 현장을 목격한다. 얼씨구나, 듣는 이마저 기분이 좋아가지고 춤추며 하나가 된다. 이게 노래라는 의사소통체계를 둘러싼 일반적인 각본이다. 그러나 그런 관습을 내동댕이쳐 버리는 노래가 있다. 한국 가요 사상 가장 처절하고 절박한 청유형으로 시작되는 ‘물 좀 주소’가 그 노래다.

이 노래에서는 목소리가 노래를 확 찢고 들어온다. 전주고 나발이고 없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일요일 오후의 낮잠을 무자비하게 깨워 버리는 택배기사님의 초인종 소리 같다. 난데없는 이 목소리에 의해 노래는 시작되자마자 상처받는다. 경상도 억양을 숨기지 않는, 그래서 물 좀 주소가 아니라 ‘물 쫌 주쏘우’쯤으로 들리는 이 거친 목소리 자체가 일종의 신체 훼손이다. 음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건조한 성대를 찢고 나온다. 자해다. 노래의 순결한 막이 단숨에 찢어지고, 노래는 시작된다.

이 노래가 나온 1969년의 한국 사회는 한밤중에 퍼뜩 잠에서 깼다. 거두절미하고 물 달라고 외치는 한대수의 고통스러운 호소에 독재권력도, 대중도 한 대 얻어맞은 기분. 이 펀치는 도대체 어디서 날아왔나. 어리둥절. 한국 사회는 이 호소를, 이 목소리를, 그리고 한대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한대수는 외친다. 목소리에서 피가 흐른다. 이 네 마디에 존재의 비밀이 숨어 있다. 4음절로 이루어진 단문이 4개. 그 구조를 보면, 3개의 ‘물 좀 주소’가 하나의 ‘목마르요’를 가두고 있다. ‘물 좀 주소’는 대화의 요청이다. 발화자는 타인과의 공감을 원한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다. 거듭 청한다. 또 대답이 없다. 그래서 ‘목마르요’가 나온다. ‘목마르요’는 자기 고백이다. 한대수 자신이다. 목이 타는 청년은 목마르다고 토로하기 싫었다. 참았다. 아무 대답이 없자 하는 수 없이 하는 고백이다. 절박한 자기소개다. 그리고 다시 청유한다. 물 좀 달라고. 그래도 대답은 없다. 한대수는 집시다. 사마리아 여인이다. 이방인이다. 목말라 죽겠다는 이방인에게 한국 사회는 물 한 사발 주지 않는다. 이방인은 이렇게 묘한 말을 던진다.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이 대목이 흥미롭다. 어떤 해석도 가능하다. 모든 시가 그렇듯, 비밀스러운 모호함의 베일이 언어를 감싸고 있다. 물은 사랑인데 나를 놀린다. 그러면서 나를 ‘밖에 보낸다’고 했다. 사랑인데 왜 나를 놀릴까? 목을 간질며, 라면 이미 물을 마신 건가? 그리고 왜 밖으로 보낼까? 이 ‘밖’은 어디일까?

그 ‘밖’에 열쇠가 있다. 한대수는 밖에서 물을 마신 적이 있다. 그 기억이 있다. ‘밖’은 한대수가 가진 모든 것이자, 터전이자, 동시에 고통이다. 밖에서도 그는 밖이었다. 3개의 물 좀 주소가 주류 한국 사회라면 1개의 목마르요는 거기서 밖을 꿈꾸는 이방인 청년, 한대수다. 한대수는 밖에 있었고 밖으로 내몰렸고 동시에 밖을 꿈꾸었다. 그의 또다른 걸작 ‘행복의 나라로’는 ‘장막을 걷어라’로 시작한다. 역시 밖을 꿈꾼다. 이 대목을 ‘모성의 부재’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대수의 무의식 밑바닥에 모성의 부재가 숨어 있다. 실제로 소년 한대수는 남한 사회의 질곡을 그대로 떠안은 운명을 감당해야 했다. 핵물리학자였던 아버지가 미국에서 실종됐다가 극적으로 다시 나타났는데, 자초지종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 그의 실종에는 시아이에이(CIA)가 개입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한대수는 미국으로 간다. 뉴욕에서 새로운 문화를 체험한다. 아버지는 갑자기 없어졌고 어머니는 떠났다. 할아버지가 한대수를 키웠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어머니다. 한대수는 어머니가 그리웠다. 그러나 어머니는 없다. 미국에도 없다. 아버지도 있는데 없다. 없다가 다시 있다. 한대수는 물을 찾아 밖으로 떠돈다. 여행을 떠난다.

“여행 도중에 처녀 만나본다면 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

어머니는 처녀로 치환된다. 처녀는 사랑의 대상이자 물의 환생이다. 물은 모성이고 어머니다. 그러니 실은 어머니하고 살겠다는 뜻이다. 이런 마음을 더 자세히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3절은 그냥 어린애의 투정 같은 ‘아아아’로 채워진다. 아이의 절규다. 그리고 그다음, 이윽고 이 아이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아 그러나 비는 안 오네”

한대수가 기다리는 것은 전면적인 물, 비다. 온 세상을 적시는 자유의 냄새, 모든 이에게 내리는 사랑의 혜택, 홍수다. 전복의 물이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다. 비는 오지 않는다. 목소리가 노래에 상처를 주고, 노래는 목소리를 더 아프게 한다. 이 상처의 순환은 듣는 이에게로 넘어간다. 듣는 이도 아파한다. 참여한다. 노래의 현장은 난장판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이것은 구걸이 아니다. 정당한 요구이기 때문이다. 물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물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1969년에 박정희는 3선 개헌이라는 사기를 쳤고 결국 그 사기는 폭력으로 변했다. 그게 1972년의 10월 유신이다. 거짓과 기만의 시기다. 사람들이 물 달라고 외치면 정부는 사탕을 내밀었다.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 노래는 물 달라는 사람들에게 독재권력이 내놓은 사탕이었다. 김지하는 ‘타는 목마름으로’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만세. 그리고 고문당한다. 아직도 이 목마름은 한국 사회를 전면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상위 10%가 국민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남한은 아시아에서 부의 편중 1위인 나라다. 우리는 한대수와 똑같이 물 달라고 외쳐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목마른 청년들이여, 다들 그렇게 할 건가.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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