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나의 시를 말한다
이 주의 시인 나희덕
탄센의 노래
1.
이것은 불의 노래,
노래할 때마다 등불이 하나씩 켜져요
불은 번져가고
몸이 점점 뜨거워져요
강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노래를 불러요
강물도 끓어오르기 시작해요
뜨거워요 뜨거워요 너무 뜨거워요
사랑이여, 도와줘요
비의 노래를 불러줘요 비를 불러줘요 2.
이것은 비의 노래,
노래할 때마다 불꽃이 하나씩 꺼져요
비가 내리고
몸이 점점 식어가요
강물도 가라앉기 시작해요
기다려요 기다려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
이 소나기가 당신을 적실 때까지
사랑이여, 사라지지 말아요 노래를 불러줘요 3.
그러나 노래의 휘장은 찢겨지고
비에 젖은 잿더미만 창백하게 남아 있는 밤
불과 비도
어떤 노래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밤 * 고대 인도의 가수 탄센과 그의 딸에 관한 설화
-시선집 <그녀에게>수록
이것은 불의 노래,
노래할 때마다 등불이 하나씩 켜져요
불은 번져가고
몸이 점점 뜨거워져요
강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노래를 불러요
강물도 끓어오르기 시작해요
뜨거워요 뜨거워요 너무 뜨거워요
사랑이여, 도와줘요
비의 노래를 불러줘요 비를 불러줘요 2.
이것은 비의 노래,
노래할 때마다 불꽃이 하나씩 꺼져요
비가 내리고
몸이 점점 식어가요
강물도 가라앉기 시작해요
기다려요 기다려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
이 소나기가 당신을 적실 때까지
사랑이여, 사라지지 말아요 노래를 불러줘요 3.
그러나 노래의 휘장은 찢겨지고
비에 젖은 잿더미만 창백하게 남아 있는 밤
불과 비도
어떤 노래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밤 * 고대 인도의 가수 탄센과 그의 딸에 관한 설화
-시선집 <그녀에게>수록
나희덕
‘작용의 언어’ 말할 수 없지만, 말해야 하는 것. 시의 중요한 기원은 인간이 처한 곤경이다. 곤경의 인간은 말할 수 없음의 중력을 견디면서, 자신의 온몸으로 말하거나 끝내 다 말하지 못한다. 예컨대 학대받는 아이, 병든 노인, 사랑을 잃은 사람, 억울하게 죽은 사람, 그리고 살아남은 자. 시차와 상황의 차이로 임시 구별될 뿐인, ‘나’의 이웃이거나 ‘나’ 자신인, 결국은 우리 모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명제는, 2014년 4월16일 이후 수정을 필요로 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어떤 부작용도 불사하며 말해야 하는 세상이 있다. 그 말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어긋나고, 경청되지 않으며, 난데없는 악의적인 오독에 휩싸일지라도. 모두 알고 있듯이, 지금 여기가 그 세상이다. 어떻게 하면, 이 말들이 부작용 속에서도 제대로 ‘작용’하게 할 수 있을까. 시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무력하고도 강력한 ‘작용의 언어’를 생산하는 것이다. 무력함으로써 강력한 작용의 언어들은 은폐와 망각의 어두운 심해에서 진실을 인양한다. 야만과 폭력이 횡행하는 대낮의 거리에서 저항을 거듭하며, 야만과 폭력이 스러질 때까지 저항을 생활화한다. 국가의 구조를 ‘가만히’ 기다리다 세상을 넘어간(世越) 목숨들을 대신해 부정확을 무릅쓴 채 대신 말하고 노래한다. 인간이 처한 곤경은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니지만, ‘말’은 이 곤경을 다스리는 인간의 공동의 도구이며 실천이다. 실천이어야 한다. 나희덕이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받아적은 ‘탄센의 노래’는, 이 실천에 동참하고자 하는 시인 나희덕의 결의를 표명한다. 역사적으로, 샤먼의 뒤를 이어 억울하게 죽은 자의 목소리를 대신한 이는 시인이었다. 이 역사가 21세기 한국에서 새삼, 그것도 공동체의 차원에서 부활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참혹이 아니다. 어린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참척(慘慽)이다. 한국 사회 전체의 참척. 불행과 절망의 뿌리에서 따뜻한 모성성을 꽃피워온 나희덕은, “어떤 노래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밤”에 이 참척을 노래하기 위해 “노래의 휘장”을 “찢”는다. “사랑이여, 도와줘요”! 듣고 있나요, 당신?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