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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불과 비, 그리고 잿더미

등록 2016-04-15 20:06수정 2016-04-19 18:57

나희덕, 나의 시를 말한다
이 주의 시인 나희덕

탄센의 노래

1.
이것은 불의 노래,
노래할 때마다 등불이 하나씩 켜져요
불은 번져가고
몸이 점점 뜨거워져요
강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노래를 불러요
강물도 끓어오르기 시작해요
뜨거워요 뜨거워요 너무 뜨거워요
사랑이여, 도와줘요
비의 노래를 불러줘요 비를 불러줘요

2.
이것은 비의 노래,
노래할 때마다 불꽃이 하나씩 꺼져요
비가 내리고
몸이 점점 식어가요
강물도 가라앉기 시작해요
기다려요 기다려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
이 소나기가 당신을 적실 때까지
사랑이여, 사라지지 말아요 노래를 불러줘요

3.
그러나 노래의 휘장은 찢겨지고
비에 젖은 잿더미만 창백하게 남아 있는 밤
불과 비도
어떤 노래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밤

* 고대 인도의 가수 탄센과 그의 딸에 관한 설화
-시선집 <그녀에게>수록

세월호 참사 이후 한동안 시를 쓰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304명의 목숨이 맹골수도 바닷물 속으로 스러져버린 뒤, 그 어이없는 죽음 앞에서 어떤 말도 무의미하고 무기력하게만 느껴졌다. 구조 과정과 생존 소식을 접하던 숨가쁜 날들이 지나가고, 시신만이라도 돌아오기를 바라는 망연한 기다림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 전체가 깊은 슬픔의 바다에 잠겼다. 눈과 의식을 압도해버리는 고통의 리얼리티 앞에서, 무언가 말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무엇도 말할 수 없다는 절망감 사이에서,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처음 써내려간 시가 바로 ‘탄센의 노래’였다. 참담한 현실을 앞에 두고 나는 왜 고대 인도의 가인(歌人) 탄센을 호명했을까. 시를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시야나 생각의 진로마저 차단되어버린 상태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옛 샤먼의 목소리를 빌려 진혼의 노래라도 부르는 것이었을까. 탄센과 그의 딸이라도 불러와 기적을 구하고 싶은 나날이었다.

제랄(힘)과 제말(아름다움)과 케말(지혜)을 잘 조화시켜 노래를 불렀던 탄센은 목소리의 힘만으로 자연을 움직이고 인간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영험한 노래를 사랑했던 왕은 간신들에게 속아 탄센으로 하여금 불의 라가(Raga)를 부르게 했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탄센은 하루 말미를 얻어 어린 딸에게 비의 라가를 가르쳤다. 다음날 탄센이 불의 라가를 부르자 등불이 하나둘 켜지고 불길이 사방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그가 몸을 담근 강물마저 끓어오를 때, 어린 딸이 달려와 혼신의 힘으로 비의 라가를 불렀다. 그녀의 노래에 감응한 하늘은 마침내 비를 내렸고, 탄센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궁정의 문 앞에는 피를 토하며 노래를 부르다 죽은 딸이 쓰러져 있었다.

이 신화를 떠올리며 나는 세월호 속의 아이들이 아비를 구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비의 라가를 불렀던 탄센의 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잘못 살아온 어른들의 탐욕과 거짓의 역사를 일깨우기 위해 어린 목숨들이 대신 희생된 것만 같았다. 불의 라가와 비의 라가가 허공에서 격렬하게 만나 탄센이 소생한 것처럼, 그런 기적이 우리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것일까. 시인이 더 이상 신묘한 힘을 지닌 샤먼이 될 수 없는 시대에 시와 노래는 과연 어떤 힘을 지닐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허공에 흩어진 목소리의 파편들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는 것’, 노래를 사랑하고 노래의 힘을 믿는 이에게 이 말은 죽음에 대한 가장 적절한 정의가 될 수 있다. “죽는다는 것은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했던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죽음은 가장 사랑하는 소리의 상실을 의미한다. 아이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 부모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 될 것이다.

세월호 유족들과 치유공간 ‘이웃’을 꾸려온 정혜신 선생의 말에 의하면,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한결같이 “아이에게 잘 있다는 말 한마디만 들을 수 있으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시인들은 아이의 목소리를 받아 적었고, 그 시들은 ‘이웃’의 생일모임에서 집단 낭송되었다. 나는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받아 적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이의 말을 대신한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었지만, 타자의 고통에 동참하는 일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경험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서른네 명 단원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서른네 명의 시인들과 만나 태어난 그 시들은 <엄마. 나야.>(난다, 2015)라는 시집으로 묶여 나왔다. 그 목소리의 만남에서 우리는 오늘의 시인들이 부르는 탄센의 노래를 듣는다.

‘탄센의 노래’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은 탄센이 부르는 불의 라가이고, 2는 딸이 부르는 비의 라가이고, 3은 제3의 화자가 부르는 폐허의 노래다. 딸의 노래 덕분에 살아남았지만, 그로 인해 자식을 잃은 탄센의 내면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그는 더 이상 어떤 노래도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노래의 휘장은 찢겨지고/ 비에 젖은 잿더미만 창백하게 남아 있는 밤/ 불과 비도/ 어떤 노래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밤”을 고통스럽게 보내고 또 보냈을 것이다. 그 잿더미의 날들을 우리는 또 어떻게 견디어야 할까.

나희덕
나희덕
나희덕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등과 산문집 <반 통의 물> <저 불빛들을 기억해> 등을 냈다.



‘작용의 언어’

말할 수 없지만, 말해야 하는 것. 시의 중요한 기원은 인간이 처한 곤경이다. 곤경의 인간은 말할 수 없음의 중력을 견디면서, 자신의 온몸으로 말하거나 끝내 다 말하지 못한다. 예컨대 학대받는 아이, 병든 노인, 사랑을 잃은 사람, 억울하게 죽은 사람, 그리고 살아남은 자. 시차와 상황의 차이로 임시 구별될 뿐인, ‘나’의 이웃이거나 ‘나’ 자신인, 결국은 우리 모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명제는, 2014년 4월16일 이후 수정을 필요로 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어떤 부작용도 불사하며 말해야 하는 세상이 있다. 그 말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어긋나고, 경청되지 않으며, 난데없는 악의적인 오독에 휩싸일지라도. 모두 알고 있듯이, 지금 여기가 그 세상이다.

어떻게 하면, 이 말들이 부작용 속에서도 제대로 ‘작용’하게 할 수 있을까. 시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무력하고도 강력한 ‘작용의 언어’를 생산하는 것이다. 무력함으로써 강력한 작용의 언어들은 은폐와 망각의 어두운 심해에서 진실을 인양한다. 야만과 폭력이 횡행하는 대낮의 거리에서 저항을 거듭하며, 야만과 폭력이 스러질 때까지 저항을 생활화한다. 국가의 구조를 ‘가만히’ 기다리다 세상을 넘어간(世越) 목숨들을 대신해 부정확을 무릅쓴 채 대신 말하고 노래한다.

인간이 처한 곤경은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니지만, ‘말’은 이 곤경을 다스리는 인간의 공동의 도구이며 실천이다. 실천이어야 한다. 나희덕이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받아적은 ‘탄센의 노래’는, 이 실천에 동참하고자 하는 시인 나희덕의 결의를 표명한다. 역사적으로, 샤먼의 뒤를 이어 억울하게 죽은 자의 목소리를 대신한 이는 시인이었다. 이 역사가 21세기 한국에서 새삼, 그것도 공동체의 차원에서 부활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참혹이 아니다. 어린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참척(慘慽)이다. 한국 사회 전체의 참척. 불행과 절망의 뿌리에서 따뜻한 모성성을 꽃피워온 나희덕은, “어떤 노래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밤”에 이 참척을 노래하기 위해 “노래의 휘장”을 “찢”는다. “사랑이여, 도와줘요”! 듣고 있나요, 당신?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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