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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시리아, 고통이 내어준 숨길 그리고 시

등록 2016-04-15 21:30수정 2016-04-16 12:11

박유리의 시 심장의 귀환
심장의 귀환

시리아 난민 소년

떠나야 할 시간 그리고 슬픔과 압제의 시간
내 심장은 밟혔고 산산이 부서졌고 부러졌다
저 너머 지평선 심장의 조각들
어디서나 슬픔이

인간 괴물에 먹힌 심장이 사방에 흩어지고
우리의 땅은 싸움터가 되었다
어디서나 인간 먹는 인간이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오 나의 나라
언제 다시 내 나라, 나의 집을 볼 수 있을까

오 나의 *다마스쿠스, 자랑스러웠던 다마스쿠스, 괴물들이 굴복된 뒤에 돌아갈 수 있을까

지금 나는 이 삶에 잔뜩 짜증이 나 있고
세상을 주관하는 신은 균형 잃은 균형을 가졌다

사람들은 취해가고 쓰레기로 버려진다

누가 틀린 건지 명확해
너의 심장, 그리고 너의 눈, 제대로 박힌 것이 없지
승리로 부서져 흩어진 내 심장을 줍게 되는 날, 우리의 나라로 귀환할 것이다

*다마스쿠스: 시리아의 수도.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저 멀리 아득히 보이지 않을 때, 희미하게 멀어져 물안개처럼 잡히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다.

2013년 4월16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동쪽으로 30㎞를 달려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베카 계곡에 닿았다. 비닐, 판자, 낡은 담요처럼 버려진 것을 주워 만든 텐트에 시리아 난민들이 산다. 난민촌이다. 한 텐트 안에서 열여섯살 무함마드를 만났다. 말이 거의 없다. 난민들은 기자에게 실명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진짜 이름은 알 수 없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아드라 지역에 살던 무함마드 가족 12명은 문을 채 닫지도 못할 만큼 사람을 꽉 채운 승합차를 타고 그해 1월 국경을 넘었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소년은 땅바닥에 앉아 시와 일기를 쓴다.

“우리는 개처럼 되었지요. 무언가를 좇고 찾으려 하지만 우리에게 맞는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가시가 되었어요.”

2011년부터 이어진 시리아 전쟁으로 숨진 사람은 25만여명. 학살과 죽음으로부터 달아나 국경을 넘은 난민은 400만여명. “우리는 개처럼 되었다”는 무함마드는 난민 400만명 가운데 1명이다. 난민을 환영하는 나라는 없다. 그해 4월, 레바논에서 만난 시리아인은 이러했다. 국경을 넘기 전 포탄 파편을 맞아 피투성이가 된 다섯살 딸 두아를 품에서 떠나보낸 아흐마드. 비 내리는 날 만난 아흐마드는 괜찮지 않은 눈으로 “타만, 타만”(괜찮아, 괜찮아)이라고 말했다. 그가 살던 시리아 바바아므르 지역은 정식 의료시설이 없었다. 병원을 찾아 살던 지역을 벗어나려 했지만 정부군의 포위에 막혔다. 아흐마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죽어가는 딸을 안는 것뿐. 아흐마드의 아내는 영원히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찬 바람이 새는 잿빛 벽돌공장 구석에서 아이를 낳은 시리아 여인이 있었다. 토막 난 시체를 너무 많이 봐서 아무렇지 않게 됐다고 담담한 얼굴로 말하는 열다섯살 소년 우사마가 있었다….

레바논으로 떠날 즈음 나는 한국이 지긋지긋했다. 2012년 언론사 5곳은 정권, 사주에 맞서 파업을 벌였다. 당시 내가 속한 언론사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파업이 실패하고 남은 것은 해고, 징계 그리고 잘못을 모른 채 고개를 떨구어야 하는 굴욕이었다. 2012년 가을, 정직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대출로 장기 해외 취재비를 마련했다. 시리아 최대 야권 통합기구인 ‘시리아국가위원회’를 취재하러 홀로 떠난 터키 이스탄불에서 거리를 헤맸다. 기자가 아닌 시기, 내 앞길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을 때, 기자로서의 일을 하는 게 유일한 투쟁이라 여겼다. 이듬해 4월 국제구호단체와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촌으로 향했다.

그 뒤 한동안 시리아를 잊었다. 왜 그렇게까지 떠나야 했는지 알지 못했다. 투쟁도, 사명도 아닌 그것이 ‘도피’였음을 깨달은 건 몇년이 지나서다. 실존하는 죽음 곁으로, 눈앞에 떨어지는 폭격과 총탄에서 도망친 사람 곁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것으로 나는 겨우 숨을 쉬었다. 난민 소년은 레바논 베카 계곡에서 시를 썼다. 슬픔과 압제의 시간, 심장이 산산이 부서진 소년이 지평선 저 너머 심장의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 소년 곁에 앉은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내가 밟은 유리알 상처보다 더 지독한 실존의 고통 속으로 헤매다, 그 고통 곁에서 숨이 막히게 저려오는 것, 그제야 내쉬어지는 숨. 그 가쁜 숨이 문학 그리고 시일 것이다.

박유리 <한겨레> 기자
박유리 <한겨레> 기자
피하는 도피가 아닌, 맞닥뜨리는 도피가 내준 더운 숨길을 따라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걸었다. 그때, 시리아는 나의 시였다.

박유리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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