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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이끼와 더불어

등록 2016-05-13 22:05수정 2016-05-16 10:25

유종인, 나의 시를 말한다
다른 시간을 위해 토요일에 시를 읽습니다. 잊어온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무뎌진 것들에 대한 송곳의 날카로움으로, 버린 것들에 대한 발견으로. 시인들이 자신의 시를 산문으로 설명하고, 시와 노랫말 전문가가 독자들에게 시의 지도를, 초대손님이 시와 관련된 체험을 들려줍니다. 지면에는 여백이 있습니다. 시인, 전문가, 초대손님들이 스쳐간 자리에 스며든 나의 다른 시간. 다른 시간을 위한 자리입니다. 시인과 초대손님의 시 낭송은 정보무늬(QR코드)를 통해 <한겨레티브이(TV)>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주의 시인 유종인

이끼

그대가 오는 것도 한 그늘이라고 했다
그늘 속에
꽃도 열매도 늦춘 걸음은
그늘의 한 축이라 했다

늦춘 걸음은 그늘을 맛보며 오래 번지는 중이라 했다

번진다는 말이 가슴에 슬었다
번지는 다솜,
다솜은 옛말이지만 옛날이 아직도 머뭇거리며 번지고 있는

아직 사랑을 모르는 사랑의 옛말,
여직도 청맹과니의 손처럼 그늘을 더듬어
번지고 있다

한끝 걸음을 얻으면 그늘이
없는 사랑이라는 재촉들,
너무 멀리
키를 세울까 두려운 그늘의 다솜,

다솜은 옛말이지만
사랑이라는 옷을 아직 입어보지 않은
축축한 옛말이지만

-<사랑이라는 재촉들>수록-

*1996년 <문예중앙> 시 신인상을 수상했다.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에 당선됐다. 시집 <사랑이라는 재촉들>, 산문집 <염전>, 시조집 <얼굴을 더듬다>를 냈다.

볕바른 곳의 풀꽃과 꽃나무들은 그 꽃과 잎과 열매로 천성을 다 풀어헤친다. 누군가는 그걸 보통의 온당한 세상살이, 혹은 출세나 양명한 삶의 비유로 본다. 그런 화려함은 곧 긍정의 세계로 단숨에 포장되고 치장된다. 그런 밝음을 저만치서 내다보고 있는 그늘은 여름인데도 가슴에 잔설이 서린 듯하고 석임물이 흐른 듯하다. 그러나 저런 밝음이면 이런 그늘짐도 아름답다 해야지, 저 그늘이 천금처럼 종요로울 때는, 마음에 그윽한 말을 품을 때와 견주어도 좋다. 그 가만한 냅뜰성이나 오지랖은 겨울 이끼라고 해도 쉬 움츠러들지 않는다. 나는 가만히 산자락의 눈을 헤치거나 솔가리를 헤쳐 볼 때가 있다. 거기 서린 이끼의 꽃말은 모성애라 한다.

겨울에 초록이 보고 싶을 때, 그것도 눈보라와 맹추위 속에 초록이 보고플 때, 나는 이끼에게로 간다. 이끼는 산그늘과 햇살이 갈마드는 솔수펑이나 묵묵한 바위너설 사이에 낙락히 도사린다. 거기 내 그림자가 어리는 것도 가만히 기쁘다. 이끼는 잔설과 낙엽과 솔가리 등속을 장자(莊子)가 말한 천지의 이불처럼 덮고 가만히 푸르다. 그걸 몬존하고 어리석은 사람의 비유로 써먹으려는 얄팍한 비유를 나는 걷어치운다. 이끼는 부드럽게 강하며 드러낼 필요 없이 자족한다. 그늘을 품지만 햇빛을 마다하지 않고 햇빛 속에 드러나더라도 그늘의 소슬함을 그 초록 속에 품는다. 꽃나무가 꽃과 열매를 잃으면 초라하지만 이끼는 그 꽃을 숨긴 은화(隱花)의 허무를 오히려 즐긴다. 나는 이런 속종이 사랑에도 깃들었음을 이끼에게 배운다. 내 배움은 우주의 학력이고 자연의 학력에 덧입은 바 크다. 배움은 곧 지식이 아닌 마음의 겨를이 될 터이니, 시는 그 곁에서 가만한 눈초리로 소슬해질 따름이다.

낮은 곳에 머물지만 바위를 타면 천리마에 초록 안장을 얹은 듯 든든하고, 키 큰 교목에 오르면 망루처럼 먼 광야를 내다볼 수 있을 만치 담대하다. 그것을 뭐라 말해야 할까. 비록 반그늘에 머물러 가지에 가지를 분절증식하며 뻗어가지만 그 키를 어찌 높이로만 잴 수 있을까.

이끼를 처음 봤을 때는 아마 재래시장에서다. 싸구려 춘란을 몇 촉씩을 묶어 그 뿌리를 감싸주던, 난초뿌리의 수분 증발을 막아주는 방편이었다. 이끼는 난초뿌리를 감싸고 제 몸은 실에 칭칭 묶여서도 담담했다. 그 소낙비가 온 봄날 춘란을 사와서 화분에 옮겨 심고 보니, 해진 걸레처럼 그러나 어딘가 더 번져갈 마음처럼 이끼가 남았다. 이끼를 가만히 쥐어 코에다 가져갔다. 선사시대를 넘어 페름기(2억8000만년 전부터 5500만년간 지속된 시기)에서부터 살아 왔을 이끼의 냄새는 묘하다. 그 내음에는 평정심에 가까운 쓸쓸함과 담담함과 영원의 아득함이 배어 있다. 나는 그걸 도시락 같은 데 넣어 어느 병약한 목숨에게 꽃 대신 싸들고 가 이끼 냄새를 맡게 하고 싶었다. 그러면 그 음전한 초록을 보고 한 십수년 더 연명의 기운이 그에게 돌지 않을까 바란 적 있다. 그늘도 햇볕도 다 갈마드는 이끼는 여유와 번짐이 있는 아웃사이더다.

이끼는 너무 흔하지만 시은(市隱)의 속종을 품은 식물계의 살아 있는 세속 신선(神仙)이다. 이 세속과 동떨어진 어떤 별스러운 것을 바란다면 그는 끝내 생사 어디서도 천국을 못 볼 것이다. 여기 잘 둘러보면 값없이 내버려둔 천국의 사소함이 꽃을 다하지 않아도 가만히 즐겁고 그 열매를 구하지 않아도 초록의 양탄자로 스스로를 누린다.

이끼의 번식은, 가지가 계속 갈라져 나와 녹색의 매트를 이룬다고, 사전은 적고 있다. 영원(永遠)이 저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녹색의 매트’라는 말 속에서 나는 평화의 감촉을 얻는다. 누군가를 어눌하고 몬존한 그늘로만 몰지 않고 또 누군가를 열혈의 광장에 우뚝 선 우상으로 치켜세우지 않는 자리에 이끼는 사랑의 번짐처럼 서렸다. 나는 어느 때고 그런 이끼를 보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접고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내민다. 너, 거기 있었구나.

유종인 시인
유종인 시인
초록의 너를 손으로 어루고 있으면 환멸이 잦아들고 욕망에 꺼둘리던 내 마음이 서늘해진다. 쉬라, 쉬라 한다. 꼭 무엇을 달고 살아야 하느냐, 라고도 한다. 이끼는 가만히 준다. 초록의 한철을 주지 않고 초록의 사철을 준다. 영원이 한철이 아니라는 걸 이 은화식물은 내내 번져 보인다. 저기 광장 한켠 보도블록 틈새의 이끼는 어느새 이 숲 키 큰 버드나무 우듬지 가까이 올라와 있다. 그 죽어가는 나무의 등짝을 어르듯 초록의 가만한 손을 내릴 줄 모른다. 몰라봐서 그렇지 이끼는 자유롭다. 어느 날 이끼 한 줌 더해주고픈 그대가 있다면, 그것은 내내 번지는 마음, 도시를 지나 광야를 지나 바다를 건너 또 다른 행성을 향해 사랑은 번진다 할 것이다.

이끼는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늘의 총화(總和)다.


‘이주의 시인’ 선정위원회 황현산(위원장), 김수이 손택수 이영광

자연의 학력

피로와 모멸과 상처와 분노 없이 지나가는 하루. 현대인에게 행복은 이런 종류의 것이 되었다. 자연의 하루가 현대문명이 내뿜는 온갖 유독물질에 위협받는 것처럼, 인간의 하루도 스트레스로 통칭되는 갖가지 사회적 독성에 노출되어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현대인은 자연과 사회에 가득한 이중의 독성에 저항하며 살아가야 한다. 독성을 제거하고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 하지만 독성의 제거도, 면역력의 증강에도 한계가 있다. 사후 해결이 아닌, 근본적인 변화와 공동체의 협력이 요청되는 이유다. 물론 우리는 이 당위를 모르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으나 실천하지 않고 못하는 변화에 대해서는, 계속 말해야 한다. 이 말들의 건강한 소음이 세상을 바꾸어 왔고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이끼와 풍란과 파도 등에게 사사한 “자연의 학력, 우주의 학력”을 지닌 유종인은 이 변화를 구체적으로 사유하는 데 능하다. 자연의 학력은 문명의 학력과는 다른 삶의 지혜와 방식을 체득하게 한다. 유종인은 “그늘을 더듬어 번지”는 이끼로부터 “사랑이라는 재촉들”을 배운다. 계절과 서식지를 가리지 않고 한 뼘 한 뼘 그늘을 초록으로 만드는 이끼는, 사랑이 어떤 심성과 형상으로 자라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가장 낮게 엎드려 그늘을 더듬으며 수평으로 번지는 이끼의 사랑은 화려한 꽃도, 자신을 욕심껏 펼칠 허공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을 절제하고 최소화하는 데 공력을 쏟는다. 이 사랑은 차라리 수양(修養)이다. “너무 크게 숨 쉬면 사랑이 발을 가질까 달아날까// 꽃도 부처도 놔두고 온 초록의 적멸보궁”(‘이끼’)이 이렇게 탄생한다.

유종인이 자연의 학력을 적용하는 곳은 “무간지옥 같은”(‘大便佛’) 현대인의 일상이다. 일산 오일장에서 “여리고 굽고 힘없는 상늙은이들이 내놓은 푸성귀”들 중 “시든 부추 한 단에 낀 부추꽃 흰 꽃대의 눈빛들”(‘부추꽃’)에 눈을 맞추는 것이 하나의 예다. 현대문명이 만든 자연과 문명의 부당한 학력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이 ‘수평의 눈’이라는 듯. “초록의 적멸보궁”인 이끼의 사랑을 머금은 눈.

김수이/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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