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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아리조나’에도 아리랑이 -아리랑 해석 시도 2

등록 2016-06-03 20:55수정 2016-06-05 10:08

성기완의 노랫말 얄라셩
아리랑 작사·작곡 미상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이렇듯 시베리아 바이칼 호에서 남하하여 몽골을 거쳐서 한반도에 이른 북방 기마민족의 이동 경로는 아리랑의 말뿌리에 들어 있는 ‘아리’라는 낱말의 자취와 겹친다. 심지어 ‘아리’의 흔적은 멀리 북아메리카에서도 발견된다. 예컨대 ‘아리조나 Arizona’가 그것이다.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미국 아리조나주에는 ‘피나 인디언’으로 불리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 말로 ‘아리조나’, 즉 ‘알리-소낙 Ali-sonak’은 ‘작은 샘’이라고 한다. ‘알리’가 작은, ‘소낙’이 샘인 것이다. 소낙과 소나기가 같은 어원일 수 있다. 아리조나가 작은 소나기라니. 놀랍고 신기하다. 얼핏 보아 ‘아리수’와 다를 바 없는 말 짜임새라 아니할 수 없다. 동북아시아 사람들이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로 들어갔다잖은가. 이렇다 할 때 북아메리카를 자세히 뒤지면 ‘아리’의 더 많은 흔적이 나올 것이라는 가정까지도 해볼 수 있다.

넓게 보아 동북아시아의 기마민족은 ‘아리랑 벨트’로 묶여 있다. 아리랑은 그들의 오랜 문화적 전통을 아우르는 노래의 끈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고비를 맞았고 실제로 여러 고원을 건넜으며 어려울 때마다 신성한 ‘아리’를 중심으로 기원을 되새기는 노래를 지었는데, 그게 아리랑이라 이거다.

넓은 의미의 ‘아리랑’ 안에 좁은 의미의 아리랑을 설정해볼 수 있다. 좁은 의미의 아리랑은 특유의 장단과 노랫말과 정서를 지니고 있는, 한반도에서 형식화된 민요다. 한반도 동부지역에서 전승된 선율체계인 메나리 토리 계열인 아리랑은 세마치장단, 3박자의 패턴이다. ‘독립군 아리랑’처럼 조금 활기찬 아리랑은 5박(3+2)의 엇모리로 연주하기도 한다.

‘아리’에다가 ‘랑’을 붙이니 아리랑이 되었다. 랑이 언덕을 가리키는 ‘령’(嶺)의 변형이라고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가사가 여러 아리랑에서 등장한다. 한반도에서 아리랑의 기원을 찾아가다 보면 강원도가 나온다. 노동요이자 민요인 ‘아리’가 분포하는 지역을 조사하니 강원도가 중심이다. 그래서 ‘정선 아리랑’을 최초의 아리랑으로 치기도 한다.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유점사 법당 뒤에 칠성단 더듬고…’로 시작하는 ‘정선 아리랑’은 첩첩이 접어드는 태백산맥의 지형을 굽이굽이 마음속 쌓인 한을 찾아 들어가는 마음길과 덧대면서 시작한다. 아리랑의 백미다.

그런가 하면 ‘랑’을 신랑, 화랑 할 때의 ‘랑’(郞)과 연결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아리’를 ‘사랑하는 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아리랑을 ‘남자 연인’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밀양 아리랑’은 남자더러 날 좀 보라고 대담하게 요구한다. ‘진도 아리랑’은 데려가 달라는 호소다. 이때 아리랑의 화자는 여성이 된다. 사실 아리랑은 여자의 노래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모든 아리랑을 대표하는 아리랑이 된 ‘경기 아리랑’은 눈에 선한 이별의 장면을 여성 화자의 시선에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자는 고개를 넘어갈 수 없고 남자는 고개 넘어 꼴까닥 사라진다. 남자는 가고, 여자는 머문다. 갇혀 있다. ‘정선 아리랑’은 조선시대 남성 중심 사회의 여성에게 가장 뼈아픈 고통이었을 불임의 한을 노래하고 있다.

아리랑의 이야기들은 개인적인 일화를 담고 있다. 지은이가 없는 익명의 노래라지만 그 이야기는 개인이 실제로 겪은 아픔을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아리랑은 오랜 구전의 전통 속에서 시시각각 새로 추가되고, 다시 만들어진다. 1인칭 여성의 화자가 설정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일지도 모른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1인칭의 화법이 근대적 개인의 자각과 더불어 모습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아리랑을 전국적인 히트송이 되게 한 것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다. ‘경기 아리랑’이 아리랑의 대표곡이 된 것도 그때부터다. 그 공감의 범위는 한반도를 넘어선다. 나라를 잃은 슬픔을 공유한 아리랑 벨트 전역의 민중이 이 노래를 통해 다시 한 번 뿌리 깊은 아픔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것은 나라의 경계를 넘어 수많은 고갯길에서 눈물짓던 유목민의 집단무의식과도 연결되면서 보편화된다.

우리는 마음이 아리고 쓰릴 때 아리랑을 듣는다. 너무나 외로울 때 아리랑을 부른다. 한이 맺혔을 때 아리랑이 절로 나온다. 이 돈이 어떤 돈이냐며 아리랑 내 자식 내놓으라고 아리랑 가슴에 묻었다고 아리랑 탁 치니 억 하고 아리랑 민주주의 만세라며 아리랑 골리앗 크레인에서 아리랑 연변에는 탈북 아리랑 미국 땅엔 불법체류 아리랑 보호구역 인디언 아리랑 사우디에서 사막 아리랑 고국에 계신 동포 아리랑 이역만리 교포 아리랑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 아리랑 어디 니네끼리 되나 보자 아리랑 잘 먹고 잘 살아라 아리랑 이럴 수가 있느냐며 아리랑 아리랑 다 내 잘못이라며 아리랑 소식을 모르니 그저 아리랑 잘 가시오 보내면서 아리랑 차라리 내가 죽지 아리랑 마음속에 삭이고 또 삭여 아리랑 자다가 벌떡 일어나 가슴 치며 아리랑 죽은 남편 보고 싶어 흐느끼며 아리랑.

겪은 사람은 안다. 아리랑은 타향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죽을 만큼 괴로울 때 아리랑에 아리랑을 더한다. 딱 한 곡이 남아 있을 때 그것은 아리랑이다. 내 곁에는 아무도 없고 남들만 즐거울 때 아리랑이 씹힌다. 살다 살다 아리랑이 들릴 때가 오다니. 이럴 순 없다고 가슴을 치며 아리랑을 부르다니. 가지 말라고 울며불며 아리랑을 만들다니.

우리 민족의 노래를 대표한다는 아리랑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기이한 일이다. 가장 많이 부르는데 그 뜻은 모두에게 아리송하다. 그것은 ‘아리’에 담긴 깊고도 넓은 문화적 단층들 때문일 것이다. 몽골 초원의 게르에서, 부랴트 사람들이 뛰노는 시베리아 평원에서 아리랑을 함께 부를 때 모두들 감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것보다 더 생생한 것은 바이칼의 바람 소리다.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이 귓가에 쟁쟁하게 머물렀다. 꼭 엄마 뱃속에서 들었을 법한 다정한 휘파람 소리 같았다. 아리랑의 기원은 그 바람 소리일지도 모른다.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아리랑 아리랑 말로는 못해요

쓰리랑 쓰리랑 상처를 달래요

아리아리 쓰리쓰리 지화자 좋네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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