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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할머니의 알무릎

등록 2016-06-10 21:11수정 2016-06-11 09:40

이정록, 나의 시를 말한다

다른 시간을 위해 토요일에 시를 읽습니다. 잊어온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무뎌진 것들에 대한 송곳의 날카로움으로, 버린 것들에 대한 발견으로. 시인들이 자신의 시를 산문으로 설명하고, 시와 노랫말 전문가가 독자들에게 시의 지도를, 초대손님이 시와 관련된 체험을 들려줍니다. 지면에는 여백이 있습니다. 시인, 전문가, 초대손님들이 스쳐간 자리에 스며든 나의 다른 시간. 다른 시간을 위한 자리입니다. 시인과 초대손님의 시 낭송은 정보무늬(QR코드)를 통해 <한겨레티브이(TV)>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주의 시인 이정록

젖은 신발

아이들 운동화는
대문 옆 담장 위에 말려야지.
우리 집에 막 발을 내딛는
첫 햇살로 말려야지.

어른들 신발은 지붕에 올려놔야지.
개가 물어가지만 않으면 되니까.
높고 험한 데로 밥벌이하러 나가야 하니까.

어릴 적에,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셨지.
북망산천 가까운 사랑방 툇마루에
당신은, 당신 흰 고무신을 말리셨지.

노을빛에 말리셨지.
어둔 저승길, 미리 넘어져보는 거야.
달빛에 엎어놓으셨지.
저물어도 거둬들이지 않으셨지.

마지막은 다 밤길이야.
젖은 신발이 고꾸라져 있었지.

-<서정시학> 2014 여름호 수록-

시 속에 동그마니 앉아 계신 할머니를 이곳으로 모신다.

“빨랫줄처럼 안마당을 가로질러/ 꽃밭 옆에서 세수를 합니다, 할머니는/ 먼저 마른 개밥 그릇에/ 물 한 모금 덜어주고/ 골진 얼굴 뽀득뽀득 닦습니다/ 수건 대신 치마 걷어올려/ 마지막으로 눈물을 찍어냅니다/ 이름도 뻔한 꽃들/ 그 세숫물 먹고 이름을 색칠하고/ 자두나무는 떫은맛을 채워갑니다// 얼마나 맑게 살아야/ 내 땟국물로/ 하늘 가까이 푸른 열매를 매달고/ 땅 위, 꽃그늘을 적실 수 있을까요” ‘세수’란 시다. 우리 집 샘터에는 세숫대야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학 그림이 있는 스테인리스 세숫대야였고, 다른 하나는 갖가지 용도로 쓰이는 찌그러지고 구멍 난 양은 세숫대야였다. 할머니는 꼭 볼품없는 세숫대야로 세수를 했다. “늙은이는 늙은 걸로 닦아야 해.” 할머니가 세숫물을 들고 가는 토방 끝자리까지 물방울 목걸이 모양으로 말줄임표가 그어졌다. 샘터와 개밥그릇과 목마른 실뿌리가 잇대어졌다. 지상 최고의 맑은 생명수가 할머니의 주름진 손 우물에서 찰람거렸다. 어미개의 긴 혀가 연주하는 생명의 교향곡에 수선화와 개나리가 작은 나팔을 불었다. 마른 수건은 어린 식구들에게 양보하고 당신은 꾀죄죄한 치마에 눈물샘을 찍어내셨다. 지금도 할머니의 세수 터에 앉아보면 담장에서 해바라기를 하던 운동화가 자두나무 이파리 사이로 걸어 나온다.

“허리를 펴면/ 덩달아 일어서는 앞산/ 지팡이 딛는 곳마다 콩을 심었으면/ 온통 콩밭이 되었을 마을/ 일하지 않으면 외려 병이 도진다는/ 그가 오늘은 두둑콩을 깐다/ 마루턱에 앉은 그의 알무릎이/ 햇살에 눈부시다/ 동부 같은 팔순의 속살/ 콩 한 소쿠리 토방에 널 때/ 멀고먼 저켠에서 내려온 햇살이/ 드디어 일거리를 만난다/ 빛나는 콩의 이마,/ 맨땅에 엎드러지는 햇살은 얼마나 민망한가/ (……)헐렁한 막버스가 지나가고/ 고추잠자리들 심심하게 놀다 잠든 마을/ 불빛을 흔들며 할머니가 콩을 깐다// 늙을수록 그림자는 둥그러진다.” ‘황새울’이란 시 일부다. 상처투성이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도심 속 우리들이 가야 할 나라는 할머니의 알무릎이다. 골고다 언덕이 거기에 있다. 민망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쑥스러움까지 가야 한다. 부끄러움과 염치를 숭배해야 한다. 알무릎 같은 감자, 알무릎 같은 양파, 알무릎 같은 무, 알무릎 같은 달을 경배하자. 알무릎 같은 얼굴로 서로를 사랑하자.

“병이 깊으면/ 뒤뜰이 좋아지나 보다// 간경화로 고생 많은 아버지와/ 할머니가 두런두런 뒤뜰 풀을 뽑는다/ 항아리로 차오르는 아버지의 배/ 화톳불 놓을 장작더미도 어루만지고 / 해묵은 국화며 상사초를 옮겨심는다// (어머니, 울타리를 다시 허야것슈/ 뫼느리밑찡개만 무성헌 언덕빼기를 허물구/ 골담초두 욈겨심구 두릎남구두 심궈야것슈/ 새끼덜 낭중에 고향집이라고 찾으면/ 가시 돋친 두릎 순을 꺾으며 못난 애비 생각두 허것지유)// 장날이면 호두나무며 대추나무 묘목을 사와/ 울안 구석구석이며 두둑마다/ 쉬엄쉬엄 구덩이를 파는/ 아버지는 평생 열매 좋은 나무였을까// (가꾸지 안혀두 크는 남구라야 혀/ 니네덜 죄다 대처에 살더라두/ 스러지는 지붕 너머로 혼자서두 열릴 것잉께)// 마음만 깊은 아버지의 나이테에/ 빙빙 황사바람이 인다 캄캄한/ 항아리 속 얼굴을 어루만지는 아버지,/ 병 깊고 나이 많아지면/ 기웃거리는 뒤뜰 잔바람이며/ 울타리 너머 차운 달도 다정한 벗이 되나보다/ 밥풀꽃 같은 할머니와 아버지가/ 어둠을 흔들며 모퉁이로 나온다” ‘한식’이란 시다. 아픈 아들의 유언을 듣는 할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아렸을까. 나는 또 얼마나 마음이 먹먹했던가.

“농약을 마신 막내삼촌이 막 숨 몰아쉬던 안마당/ 그때 그 자리에서 할머니가 마른 고추를 가른다/ 삼촌도 견뎠으면 맵고 붉게 익었을 것이다 고추 가위는/ 입만 벌리면 아직도 멀었다고 가위표를 내보이는데/ 조카들도 장성했으니 이만하면 됐다고, 삼십 년이면 충분하다고/ 숨 멈춘 뒤에도 솟구치던 게거품이 노란 씨앗으로 쏟아진다/ 붉고 매운 눈물의 나날이 배를 가르고 뛰쳐나오자/ 고추의 빈 뱃속으로 햇살 들이친다 삼십여 년이면 족하다고/ 재채기도 없이, 삼촌의 방에 불이 켜진다/ 고추를 가르던 손으로는 눈물을 훔칠 수 없다/ 눈길도 없이, 나와 할머니의 눈에 붉은 등이 켜진다” ‘고추의 방’이란 시다. 무슨 말인가를 덧대려니 다시 눈이 매워진다. 밤하늘의 별들이 고추씨처럼 맵다.

이정록 시인
이정록 시인
내가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쉰여섯에 떠나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 아버지에 돌아가신 삼촌 셋까지, 독수공방 다섯 채를 가슴우리에 품고 사셨다. 그 무서운 방에 장작을 지피고, 꽃무늬 벽지를 바르고, 아랫목에 옹기종기 밥그릇을 묻고, 콩나물시루처럼 눈물을 다스리며 손주들을 키우셨다. 손길 하나하나가 봄 햇살 같았다. 내 소원 하나는 할머니처럼 나이를 많이 먹는 거다. 아버지가 못 해본,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되는 거다. 그리하여 세상에 주름경전을 건네는 거다.

“곱게 늙어야 하는데.” 할머니의 말씀대로 살고 싶다. 첫 시집을 낼 즈음에 이미 봐버린 서녘하늘을 잊지 않으며.

이정록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정말> <의자> <제비꽃 여인숙>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풋사과의 주름살>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를 냈다.


아름다운 것은 때로 무서운 것

설명되지 않는 운명 탓에, 불합리한 사회현실 때문에, 악의에 찬 폭력과 우연한 선택으로 인해 하나의 목숨은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가. 이정록은 목숨이 존엄하고 절대적인 것이면서, 또 한없이 취약하고 미미한 것이라는 사실을 시의 전제로 삼는다. “보잘것없는 목숨 하나가/ 필사적으로 끌어당긴 이승의 끈기”(‘반달’). 오직 살아 있는 동안에만 힘을 발휘하는, 이 처절하고도 한시적인 끈기에 의해 이정록의 시는 씌어진다.

이정록은 자연의 일들과 농촌의 삶을 주로 노래하면서도, 미학적인 예찬의 서정과 잠언풍의 진술에 침잠하지 않는다. 그에게 자연과 농촌은 돌아가야 할 영원한 마음의 본향도, 오래된 가치들이 보존되어 있는 인간적인 것의 보물창고도 아니다. 그보다는, 뜨거운 땡볕과 캄캄한 어둠을 맨살로 고스란히 받아내며 주름이 지고 쾨쾨한 냄새를 풍기는 비루한 생명들이 고군분투하는 삶의 터전이라고 해야 옳다.

이런 맥락에서 이정록은 아름다운 것이 때로 무서운 것임을 간파한다. “아름다운 것이 이렇게 무서울 수가 있구나/ 등을 찍혔는데도 무늬를 보여주는 눈사람”(‘눈사람의 상처’). 아름다운 것들이 삶에 부딪혀 쉽게 스러진 자취들은 비극성을 넘어 두려움을 안겨 준다. 그렇지 않다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집의 마당에 핀 국화며 상사초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아름다움이 훼손되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삶이 훼손된 후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이 번성한다는 것은 더없이 무서운 일이다.

아이들 신발은 첫 햇살로 말리고, 높고 험한 데로 밥벌이 나가는 어른들 신발은 지붕에 말리고, 북망산천 가까운 할머니 신발은 노을빛과 달빛에 말리는 일은, 아름다운 것이 품고 있는 무서움의 잠재성을 삶의 행위로 바꾼 단적인 예다. 누구의 신발을 어느 빛에 말리든 무슨 소용일까마는, 이 유비의 상상력은 모든 인간이 걸어가는 길을 압축하면서 그 서늘한 실상을 미리 마주하게 한다. “마지막은 다 밤길이야./ 젖은 신발이 고꾸라져 있었지”. 어떤 서술어로도 풀 길 없는 마지막 풍경의 아름다운 무서움, 혹은 무서운 아름다움.

김수이/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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