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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서양주택 ‘딜쿠샤’…그 말쑥함에 100년 역사 무색

등록 2021-04-16 04:59수정 2021-04-16 10:02

[노형석의 시사 문화재]
약 3년간의 공사 끝에 복원돼 지난 3월1일부터 전시관으로 개방된 서울 행촌동 딜쿠샤의 정면. 지금도 주변 공간은 정비 공사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약 3년간의 공사 끝에 복원돼 지난 3월1일부터 전시관으로 개방된 서울 행촌동 딜쿠샤의 정면. 지금도 주변 공간은 정비 공사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어, 이런 난로는 본 적이 없는데?’

1920년대 미국 중상류층 가정을 덥혔던 글렌우드 상표의 철제 난로가 관객들 눈길을 붙잡았다. 검고 투박한 직육면체 모양의 100여년 전 난로가 창가에 놓여 있었다. 맞은편에는 적벽돌로 정연하게 쌓은 벽난로와 아르데코풍의 곡선미가 도드라지는 램프, 서양인의 이국적인 취미를 상징하는 청화백자 화병, 은제 컵, 은촛대 등이 배치된 거실 풍경이 나타났다. 1920~30년대 미국인 가족이 살던 거주 공간의 풍경이라고 설명판에 적혀 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꼼꼼하게 자리를 정하고, 소품들도 대충 만들거나 입수한 것이 아니란 건 알겠는데, 그 시절 것이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행촌동 1-89번지의 97년 묵은 서양식 주택 ‘딜쿠샤’ 내부를 관람하며 든 느낌은 우선 안쓰러움이었다.

복원 뒤 개방된 딜쿠샤 1층 내부 거실. 원래 주인이던 미국인 가족이 남긴 당시 실내 사진 자료들을 토대로 내부에 놓였던 탁자와 벽시계, 벽난로, 은촛대, 꽃병, 거울 등을 꼼꼼하게 고증해 재현했다.
복원 뒤 개방된 딜쿠샤 1층 내부 거실. 원래 주인이던 미국인 가족이 남긴 당시 실내 사진 자료들을 토대로 내부에 놓였던 탁자와 벽시계, 벽난로, 은촛대, 꽃병, 거울 등을 꼼꼼하게 고증해 재현했다.

딜쿠샤는 1917년 평안도 운산 금광 채굴 사업을 하러 왔다가 조선의 풍경과 문화를 사랑하게 된 미국인 사업가 앨버트 테일러와 영국 연극배우 출신 메리 테일러 부부가 1923~24년 지어 1942년 일제강점기 말기까지 살았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그 뒤 무단으로 들어온 일반 서민들이 50년 넘게 살다가, 2000년대 이후 뒤늦게 원래 주인인 미국인 가족의 거주 내력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이곳이 2018년 새롭게 복원 공사에 들어가 지난 3월1일 원래 생활 공간을 살린 전시관으로 문을 열었다. 근대사 연구자, 근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이 내부 부재와 장식, 구조 등을 꼼꼼하게 고증·복원한 결실이다. 서울시는 2년간의 건축사 연구 용역 작업을 했고, 근대 가구와 기물 등을 국외에서 일일이 고증하면서 입수해 배치한 서양 앤티크 재현 전문가 최지혜씨는 관련 책까지 펴내 호평을 받았다.

1930년대 찍은 앨버트 테일러 가족의 사진 앨범에 보이는 당시 1층 거실 내부 모습. 왼쪽에 앉은 이가 앨버트 테일러의 부인 메리 테일러다.
1930년대 찍은 앨버트 테일러 가족의 사진 앨범에 보이는 당시 1층 거실 내부 모습. 왼쪽에 앉은 이가 앨버트 테일러의 부인 메리 테일러다.

하지만 박수만 나오는 건 아니다. 문화재 학계에선 복원이 너무 새 부재 위주로 매끈하게 이뤄져, 되레 과거 원형의 실체와 멀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촌동 일대의 공간 역사에 주목해온 소장 연구자들은 미국인 가족이 떠난 이후 지난 수십여년간 서민들의 생활 가옥으로 쓰이며 또 다른 자취를 남긴 딜쿠샤의 역사가 완전히 소거됐다는 점에 대해서도 아쉽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최근 서구에선 건축 유산의 복원이나 리모델링 과정에서 현재 공간의 정체성과 이 공간을 쓰는 주민들의 삶을 존중하는 인본주의 리모델링이 각광받는 추세다. 1930년대에 지어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관의 묻혔던 공간을 찾아내 전시 공간을 크게 확충한 건축가 듀오 안 라카통과 장필리프 바살이 올해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것이 대표적이다. 2007년 독일 쾰른의 고색창연한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를, 중세 성당 유리 색깔을 72가지로 분류하고 조합한 색상 연구를 통해 다채색 색면 회화로 채운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업이 현대미술과 문화재 복원의 새로운 만남으로 각광받은 사례도 있다.

1920년대 찍은 딜쿠샤와 주변의 모습. 행촌동의 상징인 오랜 은행나무 거목이 건물을 지키듯 서 있다. 딜쿠샤와 은행나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지금은 주위에 빽빽하게 건물들이 들어서 이런 구도의 풍경을 찾을 수 없다.
1920년대 찍은 딜쿠샤와 주변의 모습. 행촌동의 상징인 오랜 은행나무 거목이 건물을 지키듯 서 있다. 딜쿠샤와 은행나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지금은 주위에 빽빽하게 건물들이 들어서 이런 구도의 풍경을 찾을 수 없다.

사실 지난 10여년간 군산, 강경, 인천 등의 옛 근대 건축물 복원은 거의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부실한 고증과 졸속 시공으로 이뤄진 경우가 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견주면 딜쿠샤는 외양뿐 아니라 내부 공간 고증에 대한 책까지 낼 정도로 꼼꼼하고 집요한 공정이 이뤄졌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1·2층 거실 공간에서 이 건물을 스쳐간 역사적 자취를 온전히 파악하고 실감하기엔 빈틈이 많다. 근대건축유산 또한 가까운 과거의 유산인데, 그 과거의 지층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신축에 가깝게 지어진 까닭이다.

더군다나 딜쿠샤 역사에서 미국인 가족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을 함께했던 서민들 삶의 이야기는 완전히 소거돼버렸다. 기자는 10여년 전 답사 당시 딜쿠샤 앞에 플라스틱 대야를 놓고 물놀이를 즐기던 어린 딸과 아빠·엄마의 망중한 놀이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 시절 딜쿠샤는 곳곳에 칠이 벗겨지고 때가 타고 벽돌이 삭은 모습이었지만, 정겹고 건강한 삶의 기품이 풍기는 거주지였다. 이제 그 기억을 떠올릴 만한 어떤 것도 지금의 말쑥해진 딜쿠샤에는 남아 있지 않다. 근대 건축물은 어디서부터 복원의 기점과 기준을 잡아야 할 것인가? 딜쿠샤는 근대 건축 유산 복원에 얽힌 딜레마를 새삼 환기시킨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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