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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김수영이 묻는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는가

등록 2021-05-24 04:59수정 2021-05-31 13:42

한겨레 33살 프로젝트
거대한 100년, 지금 그를 다시 읽는 이유

김수영은 사후에 재평가된 대표적 시인의 한 분이다. (…) 그의 문학적 명예는 사후에 식물처럼 느리게 그러나 쉼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김수영. <한겨레> 자료사진
김수영. <한겨레> 자료사진

김수영(1921~1968) 사후 50년을 기념해 2018년에 나온 헌정 산문집 <시는 나의 닻이다>(창비) 서문에서 엮은이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썼다. 생전에 낸 시집이 <달나라의 장난> 단 한권이었고 문학상 수상도 한차례에 그쳤던 그이지만, 지금은 그의 이름으로 된 문학상이 해마다 젊은 후배 시인들에게 주어지고 그의 시와 산문을 망라한 두툼한 두권짜리 전집이 여느 현역 시인의 시집에 못지않게 꾸준히 읽힌다. 국문학과 대학원생들 사이에 ‘수영 금지’라는 말로 김수영 주제 논문 작성을 말릴 정도로 그를 다룬 학위논문 역시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탄생 100주년인 올해는 김수영을 향한 문단 안팎의 관심과 열기가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그를 기리는 학술대회와 시낭송회 등 문학 행사가 줄을 잇고, 그의 문학 정신을 전시와 공연 등 인접 장르로 확산시키는 시도도 잇따른다. 서울 도봉구에 있는 김수영문학관에 더해 또 하나의 문학관이 모교인 연세대 안에 들어설 예정이고, 단행본 출간도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가히 잔치라 할 법한 움직임들이다.

한국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이 해마다 열고 있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가 김수영 100주년 잔치의 서막을 열었다. 두 단체는 지난 13일과 14일 심포지엄과 문학의 밤 행사를 열어, 김종삼·류주현·이병주·조병화 등 1921년생 동갑내기 문인들과 함께 김수영을 기렸다. 두 단체는 이어서 다음달 26일에는 한국시학회와 함께 고려대에서 ‘탄생 100주년 시인 기념 학술대회’를 열어 김수영과 김종삼, 조병화를 다루기로 했다. 연세대에서도 10월 하순께 김수영 학술대회를 열고 발표문들을 모아 총서를 간행할 예정이다. 50주기였던 2018년에 김수영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고 부인 김현경 여사와 유품 기증 협약식을 맺었던 연세대는 탄생 100주년인 11월에 신촌 교정에 ‘김수영 기념관’을 개관하거나 적어도 개관 일정을 공표할 예정이다. 이 밖에 김수영을 연구하는 학자들 모임인 ‘김수영연구회’ 역시 11월20일 김수영문학관에서 학술대회를 열기로 했다.

서울 도봉구 김수영문학관 들머리에 세워진 김수영 시 ‘풀'의 시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서울 도봉구 김수영문학관 들머리에 세워진 김수영 시 ‘풀'의 시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의 부대행사로 김수영의 시를 소재로 삼은 전시회도 마련된다. 김선두·박영근·서은애·이광호·이인·임춘희 등 중견 화가 여섯 사람이 김수영의 시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시그림전이 9월부터 12월까지 교보문고 광화문점 교보아트스페이스와 교보문고 합정점, 김수영문학관에서 차례로 열릴 예정이다. 전시된 작품들을 모은 시그림집도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김수영연구회 소속 회원들은 국어 교사들과 학생들을 전시장에 초청해 일주일에 한번씩 도슨트가 되어 해설을 하기로 했다.

김수영문학관과 도봉문화재단은 김수영의 삶과 문학 세계를 담은 연극 <다시 부르는 자유의 노래>를 11월에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영문학자 출신 소설가인 박정근 전 대진대 교수의 동명 소설을 박 교수 자신이 희곡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김수영의 부인 김현경 여사가 살고 있는 경기 용인시에서도 11월에 기념 시낭송회를 열 계획이다. 시를 노래하는 음유시인 트루베르와 밴드 이지에프엠은 김수영의 두 시 ‘풀’과 ‘아픈 몸이’를 음악과 낭송으로 함께 담은 음반 <풀>을 지난 12일 공개했다.

서울 도봉구 김수영문학관 1층에 있는 시인의 흉상 앞에 지난 21일 오후 꽃다발이 놓여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서울 도봉구 김수영문학관 1층에 있는 시인의 흉상 앞에 지난 21일 오후 꽃다발이 놓여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김수영 전집> 엮은이인 이영준 경희대 교수는 김수영의 문학론과 예술론을 모은 산문 선집 <시여, 침을 뱉어라>를 다음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한다. 윤동주의 시와 삶을 다룬 책 <처럼>과 <서른세 번의 만남, 백석과 동주>의 지은이인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김수영의 시 60여편을 상세히 풀면서 그의 삶을 만나도록 하는 책 <기운을 주라―시로 만나는 김수영 평전>을 10월 말께 내놓을 예정이다. 맹문재 시인(안양대 교수)도 김수영의 생애와 시에 관해 김현경 여사와 나눈 대담을 모아 <김수영 깊이 읽기>(가제)라는 제목으로 8월 중에 출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김현경 여사가 남편이 죽은 직후 발표한 추모 글들을 비롯한 산문과 직접 쓴 시 등을 엮은 문집, 김수영을 기리는 후배 문인들의 글을 엮은 합동 산문집도 역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민음사에 따르면 1981년에 초판이 출간되었던 <김수영 전집>(1권 시, 2권 산문)은 2003년 2판 발간 전까지 22년 동안 시 전집이 6만5천부, 산문 전집이 2만6천부 팔렸다. 그리고 2018년 3판이 발간되기 전까지 15년 동안은 2판 시 전집이 2만5천부, 산문 전집이 1만8천부 판매되었는데, 3판은 불과 발간 3년여 만에 시 전집이 1만2천부, 산문 전집이 8천부 팔리는 등 오히려 판매에 가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전집 엮은이 이영준 교수는 이런 현상과 관련해 “김수영의 시가 결코 쉽지 않은데도 이렇게 많이 팔리는 것은 그가 특히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인기가 있기 때문이다. 시대에 저항하고,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는 그의 올곧은 선비 정신이 지식인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강석 연세대 교수는 “김수영의 현재적 의미는 크게 두가지, 자유와 윤리의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김수영은 한정된 방향에서 한정된 정도의 자유가 아니라 그야말로 정해진 방향이 없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 폭으로 무한한 자유를 추구했다. 또 그는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고 행해야 하는가를 바람과 먼지와 풀에 매번 고쳐 묻는 윤리의 영도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김수영연구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임동확 시인은 “김수영 50주기였던 2018년에 최원식 교수와 김명인 교수 등이 ‘김수영학’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는데, 탄생 100주년인 올해를 김수영학의 원년으로 삼았으면 한다. 김수영의 미학은 지극히 한국적이며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을 지녔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괴테 인스티튜트와 같은 김수영 인스티튜트를 연구회에 공식 제안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부인 김현경씨가 지난달 9일 오후 경기 용인시 집 서재에서 김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용인/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부인 김현경씨가 지난달 9일 오후 경기 용인시 집 서재에서 김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용인/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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