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대중문화 기자들 할말 못할말
#1 한해 결산, 기자들의 동문서답
‘그나마 나은 한해(영화), 퇴행은 계속되고(방송), 물밑 가능성은 여전하다.(음악)’
<한겨레> 문화면의 방송(하어영)·영화(이재성)·음악(서정민) 담당 기자들이 2009년 한해의 대중문화판을 취재 방담으로 엮어봤다. 올해 지면에 내보낸 문화 퇴행(막장 드라마 등), 인디 문화 부각(장기하 열풍 등) 등에 대한 기획 기사들을 되짚으며, 취재 과정에서 기사화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덧붙이기로 했다.
#2 인디신? 밴드신이라고 부르자
<한겨레> 기자들에게 장기하란?
이재성(이): 장기하의 등장은 밴드 공연을 주로 소개해온 교육방송 <스페이스 공감>의 역할이 컸죠? 기사도 두 번정도 다뤘구요.
하어영(하): 한 신문에서 한 가수를 한 해 두 번이상 인터뷰한 경우는 드물죠.
서정민(서): 그의 노래들은 <…공감>을 시작으로 다른 지상파도 관심을 보이면서 대중들도 듣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그런 연결 고리가 끊어졌어요. 최근 주요 지상파에서는 이런 밴드들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레 사라졌어요.
하어영 기자
지상파 막장 경쟁 속
교육방송 고군분투
오아시스 같은 역할 하: 문화방송의 <음악여행 라라라>도 있지 않나요? 서: 올해 <…라라라>는 음악방송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어요. 첫 출연자 이승열은 파격이었죠. 첫 회부터 대중 앞에 무명이던 모던록의 실력파 음악인을 단독 초대했으니까요. 이장혁, 검정치마 등 인디음악인들 초대가 이어지면서 또 하나 오아시스 같은 프로그램이 되겠구나 기대도 컸는데…. 피디 교체 뒤쯤부터, 메이저 가수 소개 형식으로 가더라구요. 어차피 시청률이 큰 의미없는 시간대니까 그냥 갔어도 되는데…. 이: 우리가 썼던 문화 퇴행과 관련한 기획기사(1월9일치 21면)와 인디밴드에 대한 기획기사(7월3일치 8면)를 놓고 얘기해 보죠. 올 한해 변화가 좀 있었나요. 서: 일단 용어 정리를 해보죠. 사실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음악을 지칭하는 인디씬이라는 말은 뜻이 모호하고 대중과 거리감을 높이는 것 같아요. 밴드 음악을 하는 ‘밴드씬’으로 부르도록 하죠. 솔로도 있지만, 인디 가수들이 대략 이런 식으로 포함될 거 같아요. 인디라고 대중들과 떨어져 독야청청하겠다는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자신들의 음악을 많은 이들이 들어주길 바라죠. 이·하: 그래요. 밴드씬으로 하죠. 서: 1월 문화 퇴행 기획기사에서 ‘30초 음악’, 이른바 ‘훅송’(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나오는 가벼운 댄스곡)을 퇴행의 한 단면으로 짚은 건 의미가 있었어요. 다만 듣기 좋은 음악에 대한 폄하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놓친 것 같아요. 훅송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천편일률적으로 음악이 생산, 소비되는 구조가 문제라는 함의를 담은 기사였는데, 지면에 나간 뒤 “훅송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 않느냐”는 등 논의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번졌죠. 사실 너도나도 훅송에만 매달리는 풍토 때문에 다른 다양한 시도들이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우려였거든요. 하: 그래도 걸그룹 덕분에 가슴 뛰지 않았나요. 서: 혹시 아이돌 그룹 얘기로 오해를 살까봐 조심스럽네요. 투애니원 등 일부 그룹들은 음악성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해요. 모두 다 획일적이라는 말은 아니구요. #3 교육방송, 눈부신 성과를 버리지 말았으면… 고품격 방담을 해보자며 모인 세 기자들, 여배우와 걸그룹 이야기가 나올 때‘만’ 눈이 반짝였다. 그것도 2009년의 흐름이라면 흐름이다. 하: 올 한해 인터넷 매체들이 다루지 않는 유니크한 기사를 써보이겠다는 욕심이 앞선 것도 사실이에요. 신인탤런트나 성우의 세계가 특히 그랬죠.
이재성 기자
워낭소리서 박쥐까지
영화계는 나아진 한해
독립영화를 ‘저수지’로 서: 음악 쪽도 비슷해요. 지상파에서 나오는 사람들만 계속 나오니까 <한겨레>에서는 정말 음악으로 승부하는 사람들을 소개해보려한 것도 있죠. 이: 영화 <워낭소리>는 그래서 집중적으로 지면에서 다뤘고, 흥행까지 연결이 됐죠. 하: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상파들이 시청률 경쟁에 너나없이 막장 드라마, 막말 예능들을 쏟아낼 때 교육방송은 홀로 고군분투했어요. 박수쳐주죠. 짝짝짝. 서: <스페이스 공감>의 존재는 음악인들에게는 오아시스예요. 그런데 요즘 교육방송이 교육콘텐츠 강화에 나서면서 <…공감>을 지켜내야 하는 분위기가 됐어요. 내년에는 여러모로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하: 교육방송은 지상파가 방기해온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냈어요.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다큐멘터리는 훌륭했죠. 그런데 다큐 쪽도 콘텐츠 변화 때문에 많이 어려운 상황이 됐어요. 이: <워낭소리> 얘기를 다시 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워낭소리>가 원래 지상파에서 거절당한 프로젝트였죠. 최근 큰 상을 수상한 다큐 <인간의 땅>도 편성을 잡지 못해 난항이라던데요. 하: 결과적으로 시청자들만 피해를 보는 상황이죠. 제가 <인간의 땅> 소개 기사를 쓴 게 6개월전이니까, 그때 다 방송됐어야할 프로그램이 아직도 못 나가는 형편이죠. 올 한해 시청률 때문에 희생된 좋은 콘텐츠들이 너무 많아 열거하기도 힘드네요. #4 방담을 정리하며 서: 밴드씬 쪽에서는 음악적인 부흥기가 오고 있어요. 아이돌 그룹이 방송의 쇼, 예능, 드라마 등을 휩쓰는 동안 장기하뿐 아니라 주목할 만한 밴드들이 다양한 장르 실험을 하고 있거든요.
서정민 기자
가요계 획일화 사이에
‘밴드신’ 부흥기 오는 중
장기하가 증거 아닌가 이게 임계점을 넘어서면 무섭게 터져 나올 거에요. 문제는 그 시점까지 그들이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방송이 어떻게 보듬느냐도 관건이구요. 이: <마더>, <박쥐>에서 <워낭소리>, <똥파리> 등까지 한국 영화는 지난해에 비해 상황이 나아졌죠. 요즘 할리우드 영화 중에 수작들이 많은 건 이유가 있어요. 메이저 영화사들이 독립영화 제작사를 따로 가지고 있는데, 독립영화를 상업영화의 저수지로 생각하고 투자하는 거죠. 우리도 그렇게 가야죠. 그나마 올해 사라졌던 독립영화 개봉지원제도가 내년부터 부활한다니 다행입니다. 하: 드라마 쪽은 수십년 아성을 쌓아온 9시 뉴스들이 고전할 정도로 막장드라마가 강세죠. 스타마케팅을 앞세운 <아이리스> 등 블록버스터 드라마 역시 강세구요. <꽃남>에서 <미남이시네요>를 잇는 트렌드 드라마 또한 한 흐름을 만들었죠. 내년에도 이런 흐름은 계속될 것 같아요. #5 추신 서: 각자 생각하는 올해의 ‘발견’(배우, 예능인, 음악인)으로 정리를 하죠.
하: 지난 2월 배우 송혜교씨를 인터뷰할 때 만나자마자 직설적으로 연기력 논란 어떻게 하실거냐고 따졌죠. 질문도 참…. 경력이 짧아 그 전 사회부 경찰 기자로 따져묻던 버릇이 없어지지 않았던 게 제일 크구요. 매니저가 나서서 말렸고 저는 ‘이게 뭔가’ 싶었죠. 그런데 송혜교씨가 괜찮다며 직접 해명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침을 튀기면서 말이죠. 그 때는 그 침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몰랐죠.
서: 그 침 때문에 방송담당 기자에게 올해의 발견은 송혜교가 되겠군요.
하: 네! 동료들에게 자랑스럽게 그 때 튄 침, 아직도 갖고 있다고 하죠….
이: (조심스럽게)조안 인터뷰가 생각나네요. 인터뷰 약속 시간에 40분이나 늦은 조안이 어떻게 했을까요. 등장하자마자 죄송하다면서 사진기자와 저를 꼭 안아주더라고….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요. 아, 사람 마음을 움직일줄 아는 배우구나 생각했죠. 실제로 영화 속 연기도 좋았구요.
서: 그럼 영화 쪽 올해의 발견은 포옹 한번으로 조안이 되는 건가요?
이: 아뇨, 그건 <파주>의 서우.(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서: 이하나씨 얘기를 해야겠네요. 예전에 방송 담당할 때 드라마 <메리대구공방전>을 보고 너무 인상적이어서 인터뷰를 잡아놨다가 못했는데…. 올해 초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사회를 보고…. 음악 프로 진행도 하고….
이: 흠, 그건 말은 길고 재미는 없네요. 하하. 한국대중음악상 뒷풀이 자리에서, 이하나씨를 만나 “음악 프로 진행 때 너무 주눅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고, 이하나씨가 바짝 다가와 살갑게 얘기 나눴다는 거죠? 흠, 그래도 안아준 것에 비하면…. 그런데 올해 앨범도 없던 이하나씨를 음악 쪽 올해의 발견으로 미는 건 뭔가요?
서: 하하하. (서둘러 중저음의 목소리로)밴드 국카스텐이랑 검정치마.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너무 가혹해요.
정리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서정민(서): 그의 노래들은 <…공감>을 시작으로 다른 지상파도 관심을 보이면서 대중들도 듣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그런 연결 고리가 끊어졌어요. 최근 주요 지상파에서는 이런 밴드들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레 사라졌어요.
하어영 기자
지상파 막장 경쟁 속
교육방송 고군분투
오아시스 같은 역할 하: 문화방송의 <음악여행 라라라>도 있지 않나요? 서: 올해 <…라라라>는 음악방송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어요. 첫 출연자 이승열은 파격이었죠. 첫 회부터 대중 앞에 무명이던 모던록의 실력파 음악인을 단독 초대했으니까요. 이장혁, 검정치마 등 인디음악인들 초대가 이어지면서 또 하나 오아시스 같은 프로그램이 되겠구나 기대도 컸는데…. 피디 교체 뒤쯤부터, 메이저 가수 소개 형식으로 가더라구요. 어차피 시청률이 큰 의미없는 시간대니까 그냥 갔어도 되는데…. 이: 우리가 썼던 문화 퇴행과 관련한 기획기사(1월9일치 21면)와 인디밴드에 대한 기획기사(7월3일치 8면)를 놓고 얘기해 보죠. 올 한해 변화가 좀 있었나요. 서: 일단 용어 정리를 해보죠. 사실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음악을 지칭하는 인디씬이라는 말은 뜻이 모호하고 대중과 거리감을 높이는 것 같아요. 밴드 음악을 하는 ‘밴드씬’으로 부르도록 하죠. 솔로도 있지만, 인디 가수들이 대략 이런 식으로 포함될 거 같아요. 인디라고 대중들과 떨어져 독야청청하겠다는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자신들의 음악을 많은 이들이 들어주길 바라죠. 이·하: 그래요. 밴드씬으로 하죠. 서: 1월 문화 퇴행 기획기사에서 ‘30초 음악’, 이른바 ‘훅송’(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나오는 가벼운 댄스곡)을 퇴행의 한 단면으로 짚은 건 의미가 있었어요. 다만 듣기 좋은 음악에 대한 폄하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놓친 것 같아요. 훅송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천편일률적으로 음악이 생산, 소비되는 구조가 문제라는 함의를 담은 기사였는데, 지면에 나간 뒤 “훅송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 않느냐”는 등 논의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번졌죠. 사실 너도나도 훅송에만 매달리는 풍토 때문에 다른 다양한 시도들이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우려였거든요. 하: 그래도 걸그룹 덕분에 가슴 뛰지 않았나요. 서: 혹시 아이돌 그룹 얘기로 오해를 살까봐 조심스럽네요. 투애니원 등 일부 그룹들은 음악성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해요. 모두 다 획일적이라는 말은 아니구요. #3 교육방송, 눈부신 성과를 버리지 말았으면… 고품격 방담을 해보자며 모인 세 기자들, 여배우와 걸그룹 이야기가 나올 때‘만’ 눈이 반짝였다. 그것도 2009년의 흐름이라면 흐름이다. 하: 올 한해 인터넷 매체들이 다루지 않는 유니크한 기사를 써보이겠다는 욕심이 앞선 것도 사실이에요. 신인탤런트나 성우의 세계가 특히 그랬죠.
이재성 기자
워낭소리서 박쥐까지
영화계는 나아진 한해
독립영화를 ‘저수지’로 서: 음악 쪽도 비슷해요. 지상파에서 나오는 사람들만 계속 나오니까 <한겨레>에서는 정말 음악으로 승부하는 사람들을 소개해보려한 것도 있죠. 이: 영화 <워낭소리>는 그래서 집중적으로 지면에서 다뤘고, 흥행까지 연결이 됐죠. 하: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상파들이 시청률 경쟁에 너나없이 막장 드라마, 막말 예능들을 쏟아낼 때 교육방송은 홀로 고군분투했어요. 박수쳐주죠. 짝짝짝. 서: <스페이스 공감>의 존재는 음악인들에게는 오아시스예요. 그런데 요즘 교육방송이 교육콘텐츠 강화에 나서면서 <…공감>을 지켜내야 하는 분위기가 됐어요. 내년에는 여러모로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하: 교육방송은 지상파가 방기해온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냈어요.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다큐멘터리는 훌륭했죠. 그런데 다큐 쪽도 콘텐츠 변화 때문에 많이 어려운 상황이 됐어요. 이: <워낭소리> 얘기를 다시 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워낭소리>가 원래 지상파에서 거절당한 프로젝트였죠. 최근 큰 상을 수상한 다큐 <인간의 땅>도 편성을 잡지 못해 난항이라던데요. 하: 결과적으로 시청자들만 피해를 보는 상황이죠. 제가 <인간의 땅> 소개 기사를 쓴 게 6개월전이니까, 그때 다 방송됐어야할 프로그램이 아직도 못 나가는 형편이죠. 올 한해 시청률 때문에 희생된 좋은 콘텐츠들이 너무 많아 열거하기도 힘드네요. #4 방담을 정리하며 서: 밴드씬 쪽에서는 음악적인 부흥기가 오고 있어요. 아이돌 그룹이 방송의 쇼, 예능, 드라마 등을 휩쓰는 동안 장기하뿐 아니라 주목할 만한 밴드들이 다양한 장르 실험을 하고 있거든요.
서정민 기자
가요계 획일화 사이에
‘밴드신’ 부흥기 오는 중
장기하가 증거 아닌가 이게 임계점을 넘어서면 무섭게 터져 나올 거에요. 문제는 그 시점까지 그들이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방송이 어떻게 보듬느냐도 관건이구요. 이: <마더>, <박쥐>에서 <워낭소리>, <똥파리> 등까지 한국 영화는 지난해에 비해 상황이 나아졌죠. 요즘 할리우드 영화 중에 수작들이 많은 건 이유가 있어요. 메이저 영화사들이 독립영화 제작사를 따로 가지고 있는데, 독립영화를 상업영화의 저수지로 생각하고 투자하는 거죠. 우리도 그렇게 가야죠. 그나마 올해 사라졌던 독립영화 개봉지원제도가 내년부터 부활한다니 다행입니다. 하: 드라마 쪽은 수십년 아성을 쌓아온 9시 뉴스들이 고전할 정도로 막장드라마가 강세죠. 스타마케팅을 앞세운 <아이리스> 등 블록버스터 드라마 역시 강세구요. <꽃남>에서 <미남이시네요>를 잇는 트렌드 드라마 또한 한 흐름을 만들었죠. 내년에도 이런 흐름은 계속될 것 같아요. #5 추신 서: 각자 생각하는 올해의 ‘발견’(배우, 예능인, 음악인)으로 정리를 하죠.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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