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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DJ가 틀어주는 날 위한 노래

등록 2015-11-08 20:06

최동민의 팟캐는 남자
서울역 낡은 음악다방
실수로 풀어진 카세트 테이프에 볼펜을 꽂아 힘겹게 감던 시절, 들고 다니다 보면 자꾸 튀어서 귀를 아프게 했던 시디 플레이어 시절, 한 번에 열 곡을 넣기에 용량이 부족했던 초기 엠피스리(MP3) 플레이어 시절까지. 우리는 음악을 들으려고 투쟁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리고 그 긴 투쟁의 시기를 버텨낸 우리는 ‘스마트폰’과 ‘스트리밍’이라는 혁명을 만나 언제 어디서든, 또 어떤 곡이든 손쉽게 들을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몇십 장의 시디를 가방에 넣고 다닐 필요도 없고, 갑자기 듣고 싶은 노래가 엠피스리 플레이어에 없다고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에서 음원 사이트 앱을 켜면 수십만 곡의 음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듣고 싶은 음악을 접하는 것이 편해지자 우리는 다시 아날로그 라디오를 찾고 있다. 수십만 곡의 음원들 사이에서 헤매는 대신, 분위기와 성향에 맞게 누군가 선곡해둔 플레이 리스트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음원 사이트에서는 앞다투어 라디오 채널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우울할 때’, ‘도서관에서’ 등의 제목으로 서비스되는 자동 선곡 라디오 채널은 수십만 곡의 음원 속에서 음악 큐레이터가 되어주었다. 팟캐스트에도 이런 서비스의 방송을 찾을 수 있을까? 물론이다. 오늘 소개할 ‘서울역 낡은 음악다방’은 더 넓은 음악의 세계, 더욱 섬세한 음악 선곡 리스트로 우리를 찾아왔다.

사실 팟캐스트는 음악과는 거리가 먼 매체이다. 기본적으로 다운로드를 통해 전달되는 방송이기에 음악을 그대로 담는 것은 저작권에 크게 위배된다. 게다가 예전과 달리 음원을 찾아 듣는 것이 쉬워져 다수의 팟캐스트 방송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음악을 담아낼 필요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서울역 낡은 음악다방’은 특별한 방법으로 음악 감상 방송을 전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시작한 이 팟캐스트는 토크도 하고 초대손님이 나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음악이 주가 된다. 음악의 종류가 지상파 방송과는 조금 다른데, 저작권이 걸려 있는 가요나 팝 등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작곡가와 가수가 ‘저작물 이용 허락 표시’(CCL)를 통해 자유롭게 사용을 허락해준 음원을 청취자에게 전한다. 이런 음원을 무작위로 내보내는 것은 아니다. 방송의 제작과 진행을 맡은 조피디는 이 음원들을 방송 주제에 맞춰 정성껏 선곡하여 플레이 리스트를 전한다.

이렇게 준비된 플레이 리스트로 꾸며진 방송을 들으며 청취자들은 두 가지 선물을 받게 된다. 첫 번째는 기존의 음원 사이트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독립 음악가들의 좋은 음악을 만나는 선물이다. 청취자들은 방송을 듣기만 해도 주변 지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나만 아는 음악’ 리스트가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이런 리스트가 쌓이면 쌓일수록 과거 구하기 힘든 앨범을 겨우 손에 넣고 기뻐하던 때처럼 어깨가 으쓱 올라가게 된다. 두 번째 선물은 외롭거나 힘들 때, 공부를 위한 연주곡이 필요할 때 등 수많은 상황에 딱 맞는 플레이 리스트이다. 현재 나와 있는 음원 사이트에서도 제공되는 서비스이다. 하지만 ‘서울역 낡은 음악다방’에서 엮어주는 플레이 리스트는 방송을 듣는 청취자들의 의견이 십분 반영된 것이기에 믹스 테이프의 에이(A) 면과 비(B) 면을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 꽂아놓는 기분이 들게 한다.

청취자들은 이 방송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수십만 곡의 음원이 아닌, 나만 알고 나를 알아주는 음악을 고이 서랍에 담을 수 있다. 서랍을 닫으며 자연스레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우리에겐 아직 라디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에겐 아직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디제이(DJ)가 필요하다는 것을.

최동민 팟캐스트 ‘빨간책방’ 피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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