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중산간 봉개동에 있는 제주 4·3평화공원에는 ‘행방불명인 표석’이 있다. 제주 4·3사건 당시 희생당한 3만여 명 중 전국의 수용소, 형무소 등에서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표석 3781기가 설치돼 있다. 제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4월이 되면 제주의 들판은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이 시기, 제주 4·3사건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나 학생, 시민단체의 4·3 유적지 기행이 절정을 이룬다. 푸릇푸릇한 초록과 노란 유채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함덕해수욕장 동쪽 서우봉 주변이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성산 일출봉으로 가는 길목에도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제주4·3사건은 제주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지난 2000년 제정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는 제주4·3사건을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고 돼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한 제주도민의 인명피해는 2만5천~3만여명으로 추정된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에 이른다. 제주도민 10명 가운데 한명은 4·3 피해자다.
제주4·3사건 당시 마을 주민이 집단학살돼 폐촌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자연마을 무등이왓 집단학살 터의 대나무와 풀잎이 14일 오후 바람에 날리고 있다. 제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은 4·3의 역사를 이해하고, 평화와 인권을 생각하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의 명소다. 지난 2008년 조성된 제주4·3평화공원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지역, 나이 등을 적은 각명비와 위령 제단, 위패봉안소, 3889기의 행방불명인 표지석, 조각상 등이 있고, 4·3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념관이 있다. 지난해 방문객은 20만1천여명으로 전년도의 16만1천여명에 견줘 크게 늘어났다. 오승국 제주4·3평화재단 기념사업팀장은 “요즘은 수학여행 시기가 아닌데도 하루 500~600여명이 찾고, 학생단체가 방문하는 시기에는 하루 3천~4천여명이 찾을 정도로 평화교육의 현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령제단·행불자 표지석 묘신 평화공원
마을 초토화 된 동광리엔 집터만 남아
올레 10코스엔 섯알오름 희생자 추모비
“비극의 현장, 평화·인권 되새기는 기회”
제주4·3사건 당시 이틀 새 400여명이 집단학살된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기념관에는 소설가 현기영이 북촌리 학살사건을 다룬 소설 <순이삼촌>의 육필원고와 마을의 4·3 관련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한 마을의 흔적을 통해 4·3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를 찾는 게 좋다. 제주4·3사건 당시인 1948년 초토화돼 폐촌된 동광리 자연마을 무등이왓은 집터와 팽나무, 대나무 등만이 사람이 살았던 곳임을 알려준다. 최근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안내판들이 곳곳에 붙어 있어 4·3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제주올레 10코스가 지나는 서귀포시 대정읍 섯알오름 옛 일본군 탄약고 터에는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한국전쟁 시기 예비검속돼 희생된 주민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주변의 옛 알뜨르비행장과 일본군 군사시설들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섯알오름 희생자들을 안장한 ‘백조일손지묘’도 있다. 제주 동부지역 오름 군락지인 제주시 구좌읍 다랑쉬굴과 다랑쉬오름을 비롯한 오름 군락지도 기행 장소다. 다랑쉬굴에서는 1992년 4·3 희생자 11구의 유해가 발견됐는데, 길이 정비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 유적지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잦다.
시민들이 4·3의 비극을 그린 영화 <지슬>의 무대인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를 답사하고 있다. 제주/허호준 기자
제주4·3연구소는 30여년 전부터 소규모로 4·3 유적지를 발굴하고 기행에 나서고 있다. 김은희 연구실장은 “시민·학생들에게 4·3의 진상을 얘기하는 것보다 직접 역사의 현장을 찾아 설명해 주면 훨씬 쉽게 이해하고, 평화와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제주 4·3 기념관 출구 앞에 놓인 소원지에는 이런 글귀가 눈에 띄었다. “4·3사건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겠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없도록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 정도의 느낌을 받으면 역사교훈의 장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가는 길
■ 제주4.3평화공원 :제주시 명림로 430
제주 4·3의 모든 것을 보기 위해서는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을 추천한다. 무료다. 제주시청 앞에서 43번 시내버스를 타면 간다. 주변에는 유명 관광지인 절물휴양림도 있다.
■ 무등이왓: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모슬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내려도 되고 시외버스 782, 782-2, 755 등을 타고 동광리 복지회관 앞에서 내린다. 복지회관에서는 동광리 4·3안내길 표지판이 있어서 표지판을 따라갈 수 있다. 영화 <지슬>의 현장인 큰넓궤자연동굴)도 부근에 있다.
■ 북촌리 4·3너븐숭이기념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길
제주4·3사건 당시인 1949년 1월 이틀새 400여명이 집단학살된 4·3 비극의 대표적인 마을이다. 당시 희생된 아기무덤이 있고, 4·3기념관도 있다. 마을포구는 언제 그런 비극이 있었는지 아름다운 자연풍광으로 뛰어나다. 제주올레 19코스가 지난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순환버스 910, 990, 980, 시외버스 701 등 수시로 다닌다. 가는 도중에 함덕해수욕장에서 내려도 된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