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랑말 체험공원 승마장에서 어린이들이 조랑말을 타고 있다. 승마장 밖으로 나가 들판을 달리는 코스도 있다.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더 재미진 마을 가시리.’
가시리사무소나 ‘조랑말 체험 공원’ 입구 등에 붙어 있는 표지판이다. 이 말처럼 가시리는 제주 전통의 아름다운 마을 풍경과 트레킹 코스, 즐길 거리 등을 고루 갖추면서도 여유와 한적함을 지닌 곳이다. 마을에 숙소를 정하고 며칠 어슬렁거리며 느긋하게 쉬어가기 딱 좋은 마을이다.
서귀포시 동남부에 있는 중산간 마을로서 서로는 남원읍, 북으로는 조천읍과 경계를 이룬 표선면 가시리는 한라산의 동남쪽 아래부터 태평양과 맞닿은 표선 해수욕장 사이에 있다. 많은 기생화산을 끼고 있으며, 드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진 한쪽으로 울창한 수목 속에 묻혀 있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면 소재지인 표선리에서 북서쪽으로 7㎞ 지점인 해발 100~120m 지대에 본동 외 6개의 자연 부락이 흩어져 있는 중산간 주변 부락으로, 표선 해수욕장까지는 6㎞ 남짓 떨어져 있다.
유채꽃 프라자 앞에서 관광객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뒷편으로 풍력 발전용 거대한 풍차가 보인다. 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제주의 봄은 노란 유채꽃이 피는 가시리 마을에서 시작된다. 해마다 4월이면 가시리 유채꽃 광장 일대에서 ‘제주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 ‘오름의 여왕’으로 알려진 따라비 오름을 비롯해 13개 오름이 있고, 세계자연문화유산인 거문 오름도 인접해 있다.
가시리는 제주 ‘마을 만들기’ 사업 중 성공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4·3으로 마을 주민의 절반이 희생되고 폐허가 됐던 산간벽지의 마을이 이제는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부자 마을이 됐다. 가시리에는 744만㎡(약 225만 평)에 이르는 공동목장이 있는데, 2007년부터 주민들은 이를 활용해 ‘조랑말 박물관’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승마교실, 목축캠프 같은 관광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또한 마을의 공동재산이다.
조랑말 체험공원 입구에 있는 가시리 마을 표지판. 사진 류우종 기자
제주도가 마을 만들기 지원 조례를 신설한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시작됐다. 예술인 창작지원센터를 세우자, 센터를 이용하는 예술인들이 말 관련 조형물과 그림을 제작해 마을에 제공했다. 주민 자신을 위한 150평 규모 주민문화센터도 만들었다. 이를 중심으로 동네 밴드, 난타, 댄스, 기공 동아리를 비롯한 6개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다. 겨울이면 마을 문화축제를 열어 이 동아리들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기도 하는데, 이 또한 외부인들이 찾는 이 마을의 볼거리다.
갑마장길과 마을 내 4·3길을 만들고 유채꽃 축제 등을 열면서 가시리는 세상에 알려졌고, 많은 이들이 찾아오게 됐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갑마장길 일원에서 제주국제 트레일러닝(시골길 달리기) 대회도 열린다.
마을 공동목장 안엔 풍력발전기 20여기와 60여 만㎡(약 18만2천 평)에 자리한 태양광발전소가 위용을 자랑한다. 마을에서는 친환경 발전회사들에 땅을 임대하고 연 10억원의 수입을 올린다. 이 수입은 마을 주민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으로 돌아간다.
가시리 마을 곳곳엔 예쁘고 맛있는 카페도 많다. 사진/박영률 기자
10여 년에 걸쳐 갖가지 사업을 벌이면서 예술인 등 많은 사람이 들어왔고, 이들은 벽화나 조형물 등 많은 흔적을 남겼다. 리사무소를 중심으로 마을 곳곳에 예쁜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서면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던 마을 풍경도 바뀌었다. 핸드드립 커피가 맛있는 ‘모드락572’, 인도풍이 느껴지는 ‘우리동네 가시리’, 수제 피자와 파스타·맥주를 즐길 수 있는 ‘토니토니’, 리사무소 입구의 ‘깡’ 등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제주의 목가적인 농촌 풍경과 어우러져 재미난 풍경을 자아낸다.
당시 마을 만들기 사업을 주도했던 정경운(57) 전 이장은 “변화에 대해 주민들 사이에 찬반이 있지만, 마을의 삶의 질이 달라지고 문화적으로 윤택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늘어나는 외부인, 관광객들과 평화로운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가 또 하나의 과제”라고 말했다.
옛 가시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자연사랑 갤러리 전경. 건물 내부엔 흥미로운 사진과 볼 거리가 가득하다. 사진/ 박영률 기자
리사무소 뒤편 운치 있는 숲 터널을 지나면 제주도의 대표적 사진작가인 서재철 사진가가 옛 가시초등학교 건물을 갤러리로 꾸민 자연사랑 갤러리가 있다. 이미 다녀간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널리 알려진 곳인데, 제주 풍경을 담은 사진과 옛 물건, 가시초등학교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료 등 볼거리가 많아 한번 다녀감 직하다.
가시리는 두루치기 등 제주에서 돼지고기가 맛있는 동네로도 유명한데, 돼지고기 음식점만 10개가 넘는다. 그중 가시식당과 가스름식당의 두루치기, 나목도식당의 순댓국 등이 많이 알려졌고 가성비도 높다. 근처에 대한항공이 운영하는 항공 관련 전시관인 정석항공관도 유명한데 요즘은 휴업 중이다. 성읍 마을도 가깝다.
중산간이면서도 대중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공항에서 가려면 제주터미널로 가서 하루 네 번 있는 가시리행 220번 버스를 갈아타거나, 표선에서 가시리행 버스를 타면 된다. 서귀포/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