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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제주 옛 교회 끼고 돌담길 걷다보면 효리네 단골집

등록 2018-06-13 13:09수정 2018-06-14 11:47

[제주&] ‘제주 원도심’ 오래된 거리를 걷다
공항서 365번 버스 타고 제주의 명동으로
미술관이 되어버린 낡은 모텔과 도립병원
카페가 된 쌀집, 그리고 책방이 된 식당…
제주시 삼도2동 관덕정 서쪽 옛시청 청사 부근 창뒷골 골목길. 골목길 끝 노란 건물 앞에 있던 옛 시청 청사는 2012년 철거되었다. 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제주시 삼도2동 관덕정 서쪽 옛시청 청사 부근 창뒷골 골목길. 골목길 끝 노란 건물 앞에 있던 옛 시청 청사는 2012년 철거되었다. 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올레길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는 제주를 다시 발견하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사람들의 관심은 제주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해안도로를 따라 많은 리조트가 들어섰고, 카페와 레스토랑도 줄지어 문을 열었다. 외국 자본이 밀물처럼 들어왔고, 낯설던 중산간에도 세련된 숙소들과 카페들이 속속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보니 이제 제주에서 가장 제주다운 곳은 해안가나 중산간이 아닌 원도심이라고 말하는 이가 늘고 있다. 이전 여행자들에게 원도심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제주 사람들의 ‘진짜 삶’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요즘은 문화가 가득한 거리로 점점 변하고 있으니, 뭘 좀 아는 여행자들은 이제 원도심을 찾는다고 한다. 제주와 제주 사람들을 조금 깊이 알고 싶다면, 제주의 ‘진짜 삶’이 살아 있는 원도심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글·사진 제주/문신기 여행작가


제주시의 랜드마크인 제주목 관아 안쪽에 있는 망경루.
제주시의 랜드마크인 제주목 관아 안쪽에 있는 망경루.
제주공항에서 버스를 타려 밖으로 나오면 유독 사람들이 몰려 있는 정류장이 보인다. 3번 정류장이다. 다른 정류장에는 짐을 든 여행객이 많지만 이 정류장은 회사원, 학생, 할머니 등 도민이 대부분이다.

3번 정류장의 주인공은 365번 버스다. 지난해 여름 대중교통 체계가 개편되기 전에 이 버스는 500번이었다. 제주시 지리를 몰라도 500번 버스만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365번 버스는 아라동의 제주대학교와 노형동의 한라대학교를 오가는데 제주도청, 제주공항, 관덕정, 제주시청, 제주법원, 제주세무서 등 제주시의 중요 관공서 및 명소를 거쳐 간다. 제주 시민들의 삶과 밀착되어 있는 노선이자 원도심을 관통하는 노선이다.

버스가 공항을 벗어나면 창문 밖으로 푸른 바다가 다가온다. 하지만 아주 잠시다. 버스는 곧 우리를 또 다른 풍경으로 데려간다. 수평의 바다 대신 크고 작은, 조금은 남루한 건물들의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빛바랜 간판을 명함처럼 달고 있는 오래된 가게와 재래시장이 눈에 들어온다.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 버스는 관덕정에 닻을 내린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남대문이 있다면 제주에는 관덕정과 제주목 관아가 있다. 관덕정(보물 제322호)은 세종 30년인 1448년에 병사들을 훈련하기 위해 제주목사인 신숙청이 세웠다. 성종 11년인 1480년에 중수해 제주에서 현존하는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 단층인 관덕정은 조금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높게 뻗은 서울의 빌딩들 사이에 외롭게 서 있는 남대문에 비해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다.

제주목 관아는 조선시대의 관청으로, 고대 탐라국 때 성주청이 들어선 이래 제주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다. 1434년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었으며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거의 훼손되었지만, 2002년에 옛 제주목 관아 건물 8동을 복원하였다.

제주목 관아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제주도 상권에서 가장 유명했던 ‘칠성로’가 나온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거리로 제주에서 가장 먼저 근대적인 상점이 들어섰다. 쇼핑 일번지인 셈이다. 유명 브랜드숍들이 즐비해 서울의 쇼핑가 같기도 하다.

칠성로는 수많은 이의 기억을 품은 곳이다. 어린 시절 용돈을 모아 옷을 사는 날이면, 서귀포에서 친구들과 한 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칠성로까지 왔다. 명절 전날 칠성로와 지하상가는 크리스마스 때 명동 거리라 착각하게 할 만큼 인파로 가득했다. 거리를 걷다보면 친구뿐만 아니라 친인척까지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뿐인가. 크고 작은 극장이 많아 최신 영화를 보려면 칠성로를 찾아야만 했다. 설렘이 가득한 첫 번째 데이트 장소는 단연 칠성로였다. 제주도민이라면 한 번쯤은 연인의 손을 잡고 칠성로 극장에서 영화를 본 추억이 있으리라.

모퉁이 옷집과 라이킷.
모퉁이 옷집과 라이킷.

온라인 쇼핑몰이 등장하고, 상권이 제주도청이 있는 신도심으로 옮겨가면서 영원할 것 같던 칠성로의 영광도 저물었다. 거리도 생물처럼 살아 있는 것일까? 빈 점포가 늘어나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영영 멀어질 것 같은 칠성로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몇 해 전부터 독립서점, 카페, 갤러리가 칠성로 골목으로 찾아들었다. ‘라이킷’은 칠성로를 대표하는 독립서점이다. 대형서점에서 접하기 힘든 독특한 독립출판물과 제주와 관련된 도서를 판매한다. 라이킷과 마주한 ‘더 아일랜더’는 현대적인 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제주 기념품을 판매한다. 여행객에게 제법 인기가 좋다. 칠성로는 예전보다 표정이 풍부해졌다. 쇼핑에 문화가 더해지면서 한 번쯤 가고 싶은 거리로 살아나고 있다.

원도심의 분위기를 조금 더 느끼고 싶다면 관덕정 서쪽으로 향하면 된다. 옛 제주시청 터와 접한 창뒷골 돌담길은 운치를 더한다. 골목을 나와 길을 건너면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성내교회가 있다. 제주 최초의 선교사인 이기풍 목사(1865~1942)가 1908년에 세운 교회다. 제주 개신교의 뿌리 같은 곳이다. 제주의 첫 교회라는 상징과 함께 건축물 또한 유명하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이 교회는 제주답게 검은 현무암을 높게 쌓아 올렸다. 고딕 양식의 특징인 높이와 화려함을 제주의 자연미와 소박함으로 해석한 소중한 건축 문화유산이다.

성내교회.
성내교회.
교회 옆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창살과 문은 녹슬었고 벽은 여기저기 금이 갔다. 1940년부터 1978년까지 운영된 제주 최초의 영화관 구 현대극장이다. 4·3 사건 당시 서북청년단의 거점이기도 했다. 극장의 흔적이 내부에 미미하게 남아 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건물에 들어갈 수는 없다. 두 건물을 감상하다보면 건물 사이의 푸른빛이 나는 작은 건물이 유독 눈에 띈다. 젊은 여성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기도 하는 이곳은 이효리가 단골로 유명한 ‘모퉁이 옷집’이다. 모퉁이 옷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아주 작은 골목(관덕로4길)이 나온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1970년대에 만들어진 가옥 몇 채가 보인다. 돌로 만들어진 제주 가옥인데, 자세히 보면 멋스러운 액세서리들과 책들을 판매하는 가게가 들어서 있다. 조금 더 골목길로 들어가면 쌀집 간판을 그대로 둔 카페가 보인다. 식당과 쌀집이었던 건물을 카페로 바꾸었다. 쌀집 간판을 그대로 두고 다방이란 단어를 덧붙여 ‘쌀다방’이 되었다. 쌀다방은 TV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아이유가 사진 찍은 곳으로 유명해졌다. 쌀다방 앞 이탈리아 레스토랑 ‘비스트로 더반’은 가끔 DJ를 하는 이상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덕분에 이 좁은 골목길까지 많은 여행객이 찾아들고 있다.

이 밖에도 곳곳에 옛 제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건물들이 많다. 50년 전통의 대형 문구점 ‘인천문화당’과 옛 제주대학병원과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시네마가 대표적이다. 구 제주대학병원은 작년에 대형 갤러리로 거듭났다. 지하 1층 두 곳은 전시장, 3~4층은 입주 작가 작업실로 쓰이고 있다.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시네마는 과거 극장이었던 건물을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앤디 워홀, 백남준 같은 거장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쌀카페와 예술공간 이아.
쌀카페와 예술공간 이아.

미래책방과 도시재생지원센터.
미래책방과 도시재생지원센터.


제주 바다 옮겨놓은 동문시장 앞엔 포구로 흐르는 산지천

산지천.
산지천.
제주 원도심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코스가 또 있다. 동문시장과 ‘산지천’(山地川)이다. 칠성로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동문시장과 산지천이 나온다. 동문재래시장은 제주 읍성의 동성문 자리에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제주 읍성은 100년 전만 해도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산지항(지금의 제주항)을 확장하면서 허물어졌다. 읍성은 헐렸으나 동문시장은 산지항을 지천에 둔 덕에 해방 이후 성장을 거듭해 제주의 대표 재래시장이 되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좌우로 늘어선 청과점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다. 천혜향, 황금향, 레드향, 한라봉 등 그 어디에도 없는 제주만의 금빛 과일이 시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수산시장은 해산물 천지다. 제주 바다를 통째 옮겨놓은 것 같다. 흥정하는 소리, 생선 다듬는 소리, 파닥거리는 물고기 소리가 활기를 더한다. 그야말로 체험, 삶의 현장이다.

동문시장 북쪽으로 도로 하나만 건너면 산지천을 볼 수 있다. 산지천 하류의 포구 풍경이 아름다워 영주10경(瀛州十景) 중 한 곳으로 불렸다. 그러나 1960∼70년대 주변 상권이 발달하면서 환경오염이 심해져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졌다. 다행히 1995년부터 복원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맑은 물이 흐르는 옛 산지천 모습을 되찾았다. 잉어, 붕어 등 다양한 물고기가 살 만큼 깨끗하다. 최근에는 제주도의 도심재생사업인 탐라광장 사업으로 말끔하게 새단장을 했다.

산지천 주변에는 제주의 역사를 품은 다양한 건축물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고씨가옥이 대표적으로 일본식 주택과 제주 가옥을 절충했다. 건물은 일본식이지만, 가옥의 배치는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바깥채(아래채)가 마주 보는 제주 전통 방식이다. 동문시장 입구에 있는, 1965년에 지어진 구 동양극장과 오래된 여관을 개조해 만든 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도 주요 볼거리다.

고씨 가옥.
고씨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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