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제주엔

‘1100도로’에서 만난 제주의 ‘가을과 겨울 사이’

등록 2018-11-15 10:43수정 2018-11-15 16:37

[제주&] 1100도로 기행
높이에 따라 풍경 달라지는 제주
1100도로서 다양한 가을 풍경 만나게 돼
해발 1100m 고지 지난다 해서 1100도로

따스한 중문색달 해변서는 아직도 서핑
어승생악에선 제주 모든 풍경이 한눈에
제주도립미술관과 한라수목원도 가볼 만
1100도로를 달리면 제주의 다양한 가을풍경을 만날 수 있다.
1100도로를 달리면 제주의 다양한 가을풍경을 만날 수 있다.
마음은 여전히 가을 초입에서 서성이는데, 어느덧 가을은 시나브로 저물어간다. 그런데 제주의 가을은 조금 특별하다. 가을 안에 다양한 풍경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두꺼운 외투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따스한 해안 지역은 푸른 바다와 짙은 초록 잎 사이에 달린 귤, 동백나무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풍경을 보여준다. 반면 가을바람이 쌀쌀한 중산간 지역은 황금빛 억새가 한창이다. 한라산은 아침, 저녁으로 서리가 내려 초겨울 풍경을 보여준다. 이처럼 제주의 가을에는 한 계절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한 풍경이 공존한다.

이런 다채로운 풍경을 품을 수 있는 까닭은 제주에는 남한에서 하늘에 가장 가까운 산, 해발고도 1950m의 한라산이 있기 때문이다. 한라산은 높이에 따라 식생이 다르다. 해안 지역에는 난대림, 중산간 지역은 초원 지대, 해발 600m부터 백록담까지는 활엽수림 지대, 침엽수림대, 관목대로 이어지며 높이에 따라 풍경을 달리한다.

어떻게 하면 제주의 다채로운 풍경을 짧은 시간 안에 한눈에 담을 수 있을까? 무척 어려울 거 같지만 생각보다 간단하다. 1100도로(1139호선)를 이용하면 쉽게 다양한 제주의 가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1100도로는 한국의 국도 중 가장 높은 도로로 1973년에 완공되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이어주며, 한라산 중턱의 해발 1100m 고지를 지난다 하여 1100도로라 불린다. 총 길이 36.6㎞로 길지는 않지만,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를 짧은 시간에 모두 느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도로 주변에는 미술관과 관광 명소 등이 있어 볼거리까지 다양하다.

어승생악에 단풍이 한창이다.
어승생악에 단풍이 한창이다.
1100도로는 중문에서 출발한다. 한국에서 가장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서귀포시 중문동은 가을에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스하다. 아직도 ‘중문색달 해변’에서는 파도를 기다리는 서핑족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1100도로 출·도착점인 중문에서 제주시 방향으로 차로 8km 정도만 달려가면 중문색달 해변과 180도 다른 풍경이 나온다. 바로 서귀포 자연휴양림이다. 서귀포 자연휴양림은 217종이나 되는 난대·온대·한대 수종이 어우러진 보기 드문 힐링 숲으로, 하늘을 밀어 올릴 듯 수직으로 뻗은 편백 숲으로 유명하다. 산책로는 노랑, 주황, 붉은색을 총동원하여 물든 나무들이 가득하며, 경사가 없는 편이어서 가을 트레킹을 즐기기 좋다. 법정악 정상 전망대에 오르면 ‘영주십경’의 하나인 영실기암도 보인다. 250m 높이의 영실기암 곳곳에 오색 단풍나무들이 그려내는 풍경은 한 폭 한 폭 병풍을 펼쳐놓은 듯 아름답다.

서귀포 자연휴양림을 등지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1100도로에서 가장 높은 곳 1100고지에 다다른다. 1100고지에 서면 멀리 한라산의 거대한 몸짓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인다. 한라산에 안긴 나무들은 벌써 앙상한 나뭇가지를 그대로 드러낸 채 서 있다. 이미 가을과는 이별을 고한 모습이 왠지 애잔하다. 인간 세상은 이제야 가을이 숙성되는데, 한라산은 벌써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자연은 늘 인간보다 앞선다.

어승생악 정상의 관광객들.
어승생악 정상의 관광객들.
1100고지를 지나면 본격적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내려갈수록 나무들은 붉고 노랗게 물들어 있다. 겨울에서 가을로 계절을 되돌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내려가다 보면 붉은 옷을 입고 위풍당당하게 가부좌를 튼 거대한 오름 하나가 눈에 한가득 들어온다. 제주도 북부지역을 대표하는 오름 어승생악이다. 제민일보에 <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를 연재하는 김철웅 편집장은 어승생악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동쪽에선 다랑쉬오름이 여왕, 서쪽에선 왕이메오름이 군왕이라면 어승생악은 ‘왕 중의 왕’이다. 황제인 한라산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필하며 섬의 북쪽을 관장한다.”

어승생악은 한라산 북서쪽에 있는 오름으로 면적(254만3257m²)은 안덕면 군산오름(283만6857m²) 다음으로 넓고, 높이(비고)는 350m로 389m인 오백나한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탐라지(1652년)에는 이 오름 아래에서 임금이 타는 말이 태어났다고 하여 어승생악이라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높이나 면적은 물론 풍기는 풍채를 보아도, 이름의 유래를 보아도 범상치 않은 오름이다.

일본군 진지동굴
일본군 진지동굴
어승생악은 오름의 왕 중의 왕이라지만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다. 30분이면 족하다. 오르는 길도 나무 계단으로 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정상 부근에 다다르면 어승생악 동쪽의 두모악뿐 아니라 제주 서부의 새별오름, 한림부터 저 멀리 동부의 성산까지 제주의 모든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가을엔 대부분 대기가 깨끗해서 멀리 있는 오름까지 하나둘 모두 눈에 담긴다. 정상의 분화구 안에는 작지만 산정호수도 있다. 또 정상에는 일제강점기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동굴 진지도 있다. 동굴 진지는 거대하고 장엄한 자연 속에 남은 역사의 흉터가 되어, 섬 북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어승생악의 지형적 특징 때문에 이곳에 만든 것으로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그러나 역사의 광기가 만든 흉터마저 담대하게 품어버린 대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마음은 숙연해진다. 어승생악 오르는 길은 짧고 굽이지고 우거졌으나, 정상은 광활하고 웅장하다. 당당하면서 따뜻함이 스며 있는 멋진 오름이다.

신비의 도로
신비의 도로
차머리를 다시 북쪽으로 돌려 달리면 커다란 도시와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가 눈에 들어온다. 어승생악의 장엄함을 마음껏 감상하고 난 뒤라 그런지 인간 세상에 진입한 기분이 든다. 이어지는 1100도로는 ‘신비의 도로’로 안내한다. 신비의 도로 내리막길에서 기어를 중립에 놓으면 신기하게도 자동차는 오르막을 향해 올라간다.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차가 오히려 오르막을 향해 뒷걸음치는 것이다. 물을 흘려보내도, 생수병을 굴려도 마찬가지다. 신비의 도로가 보여주는 의외의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지표 측량 값과 시야로 느끼는 값이 서로 다르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다.

신비의 도로는 제주를 대표하는 미술관인 제주도립미술관과 이웃해 있다. 제주에서 현대미술의 흐름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인데, 건축물도 아름다워 2009년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잘 정리된 잔디 정원엔 배, 물고기, 현무암, 해녀 등 제주의 정서를 담은 조형물이 놓여 있다. 미술관 뒤로는 한라산이 보인다. 손에 넣을 듯 관능적인 한라산 능선을 타고 흘러온 물은 미술관 앞 반사 연못에 고인다. 미술관과 주변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연못에 비친다. 그 모습은 흡사 바다 위에 홀로 있는 화산섬 제주도를 떠올리게 한다. 미술관은 제주의 자연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연에 녹아들어 있어 더없이 아름답고 고즈넉하다. 미술관 1층은 실내 전시 공간이고 2층은 옥외 전시장이다.

한라수목원
한라수목원
깊어가는 가을을 좀 더 느끼고 싶다면 1100도로 끝자락에 있는 제주시 한라수목원을 찾아가보자. 1993년 문을 연 한라수목원(14만9782㎡)에는 872종 5만여 본의 나무와 식물이 자란다. 교목원, 관목원, 초본원 등 전문 수종원 10개를 비롯해 온실도 있어 한눈에 제주의 식생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잘 정비된 산책로 곳곳에서 노란 털머위와 은빛 억새가 인사를 건네며 깊어가는 가을 풍경을 선사한다.

한라수목원은 낮보다 저녁에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다. 수목원 초입에서 매일 열리는 야시장이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푸드 트럭에서 수제 햄버거와 수제 흑돼지 강정, 베트남 요리 등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고, 지역 주민들이 직접 만든 수제 잼과 액세서리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아루요2’의 회덮밥
’아루요2’의 회덮밥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좋은 풍경에 어찌 좋은 음식이 빠질 수 있겠는가. 1100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수 이효리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유명한 ‘아루요2’가 있다. 제주산 광어 뱃살과 두툼한 참치회로 만든 회덮밥이 일품이다. 간장 양념 된 쌀밥에 신선한 붉은 참치살을 올려 먹으면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가을은 흔히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한다. 하늘이 맑고 높으니 말이 살찐다는 이 가을의 다양한 풍경을 즐기고 싶다면 제주로 가을 여행을 떠나보자.

서귀포 자연휴양림
주소_제주 서귀포시 대포동 산1-1 전화_064-738-4544

어승생악
주소_ 제주시 해안동

신비의 도로
주소_제주시 1100로 2894-63

제주도립미술관
제주시 1100로 2894-78 전화_064-710-4300

한라수목원
제주 제주시 수목원길 72 전화_064-710-7575

아루요2
제주 제주시 신광로10길 22 전화_064-745-4858

글·사진 문신기 여행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12·3 계엄 ‘서울의 밤’…현실이 영화를 이겨버리네 1.

12·3 계엄 ‘서울의 밤’…현실이 영화를 이겨버리네

‘취했나 봄’ 패러디 쏟아지고…문화·체육계도 ‘계엄 후폭풍’ 2.

‘취했나 봄’ 패러디 쏟아지고…문화·체육계도 ‘계엄 후폭풍’

출판인회의 “출판의 자유 압살 윤석열을 규탄한다” 3.

출판인회의 “출판의 자유 압살 윤석열을 규탄한다”

연예계도 계엄 여파 ‘혼란’…두아 리파 내한공연 두고 문의 빗발 4.

연예계도 계엄 여파 ‘혼란’…두아 리파 내한공연 두고 문의 빗발

콩으로 쑨 된장·간장, 한국 23번째 인류무형유산 됐다 5.

콩으로 쑨 된장·간장, 한국 23번째 인류무형유산 됐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