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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애국가, 내가 본 최초의 뮤비

등록 2017-01-05 20:21수정 2017-01-05 20:28

[토요판] 성기완의 노랫말 얄라셩
애국가
애국가   작사 미상·작곡 안익태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3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4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내가 본 최초의 뮤직비디오는 애국가의 영상이다. 텔레비전의 오전 방송도 없던 1970년대에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꼬맹이였다. 방송이 시작하는 오후의 시간을 동생들과 함께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다가 애국가의 뮤비부터 감상하는 것이 우리 세대 아이들의 일과였다. 그 이후에 펼쳐질 환상의 세계에 빠지기 이전에 우리는 ‘엎드려뻗쳐’ 하는 기분으로 애국가의 영상을 보곤 했다. 그것은 꼭 거쳐야 하는 순서였다. 쉬어 자세 앞에 반드시 차려 자세가 선행돼야 하는 것처럼.

프로그램 개편 때마다 애국가 화면도 조금씩 바뀌어 갔던 것 같긴 하지만 어떤 시즌의 애국가 뮤비든 대개 비슷했다.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그 전형성은 아마도 가사의 내용에 기반하고 있는 듯하다. ‘동해물과 백두산’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바다와 산은 반드시 등장한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이 바다 저편에 떠오르는 황홀한 장면도, 파도가 검은 바위를 때리는 다이내믹한 장면도 매일 보다 보면 지루했다. 어느 시즌의 애국가 뮤비는 차전놀이에서 두 진영이 맞붙는 장면이 ‘대한 사람 대한으로’의 절정 부분에 등장하는 심벌 소리와 동기화되었다. 유신 말기로 갈수록 매스게임 장면 같은 것들이 자주 등장했다.

애국가 뮤직비디오만 보면 대한민국의 국민은 모두 다 한마음 한뜻인 것 같지만 실은 어린 마음에도 어딘지 불편하게 다가왔다. 거짓말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 위를 달리다가 비상하는 새떼들이 슬로비디오로 날아오르는 장면이 등장할 때는 약간 슬프기도 했다. 희망을 품기보다는 아직 우리는 날지 못한 국민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일깨워주었다. 그렇다고 아주 기분이 나쁜 것만도 아니었다. 마음 한구석에 존재하는 뭉클함이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역시, 애국가의 뮤직비디오는 지겨웠다. 한마디로 교련시간처럼 지긋지긋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강요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건전가요’였다. 가장 불건전한 의도로 만들어진 건전가요. 무슨 장르의 음반이든 상관없이 반드시 한 곡씩 실어야 하는 ‘건전가요’. 음반을 망치는 건전가요가 진짜 혐오스러웠다.

이제는 고전이 된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최초의 뮤직비디오 평론으로 기록될 만하다. 그는 우리보다 한 세대 위다. 그래서 애국가 뮤비를 티브이에서보다는 극장에서 더 일찍 접했을 것이다. 물론 우리 세대도 극장에서 애국가의 영상을 보긴 봤다. 고등학교 때 학교 땡땡이치고 동네 삼류극장에 들어가서 두 편 연속으로 에로영화를 보던 1980년대 초에도 애국가 뮤비는 반드시 봐야 했다. 극장에서 보는 애국가는 참담했다. 그 어떤 영상보다도 압도적으로 자주 상영돼서 그런지 화면은 문자 그대로 ‘그런지’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가 다른 모든 국뽕 장면들을 압도했다. 황지우는 어느 날 흐린 주점에 있기 전 환한 대낮의 빛을 피해 어두운 극장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 영화라도 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영화 이전에 애국가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된 것이겠지.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 삼천리 화려 강산의 /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 /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 대한 사람 대한으로 / 길이 보전하세로 /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 주저앉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새들처럼 세상을 뜨지 못하고 주저앉고야 마는 우리들은 여전히 이 나라 대한민국에 퍼질러 앉아 있다. 약은 사람들은 있는 대로 다 해먹고 떠날 사람은 다 떠났고 유엔으로 떠났던 어떤 약은 이는 다시 돌아온다. 새들은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한반도에 조류독감을 퍼뜨린다. 며칠 전 서울 변두리의 길거리에서 비둘기 하나가 날아가질 못하고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비척대는 것을 봤다. 불쌍했지만, 순간 약간 겁에 질려 한 걸음 물러서는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더니 “얘야, 너 어디 아픈 게로구나” 하고 자꾸 더러운 비둘기에게 손길을 주려 하셨다. 나는 순간 짧게 외치고 말았다.

“안 돼요 할머니, 큰일 나요.”

사람들은 모두 물러섰고 할머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할머니가 혹시 보살님이셨을까. 막달라 마리아였을까. 아픈 새들 수천만 마리가 산 채로 땅에 묻히는 시대다. 새들은 세상을 뜰 자유의 날개를 가졌지만 사육장의 오리는 그 날개를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흙에 갇힌다. 새들도 땅에 묻히는구나.

애국가는 아다시피 안익태의 작품이다. 그의 ‘한국환상곡’에 나오는 선율을 가사에 붙였다. 가사가 먼저고 선율이 나중이다. 애국가의 선율은 우리가 자랑할 만하다. 잘 만든 국가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작사는 미상이다. 윤치호가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누가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나라 잃은 한을 품은 어떤 선구자가 나중에 국권을 회복했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서 만들었으리라. 그것만은 확실하다. 가장 어려운 때 만든 나라사랑의 노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보면 애국가의 정의는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을 일깨워주기 위한 노래’라고 되어 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가사처럼,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면 책임져야 할 텐데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나라 사랑의 근저에 뭐가 있을까? 잘살아 보세? 그런 것들 말고 더 중요한 것이 있을 법하다. 얼마 전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제대로 들을 기회가 있었다. 전 악장의 연주였다. 역시 합창대가 부르는 기쁨의 노래가 압권이었다. 이런 가사였다.

성기완 시인
성기완 시인
“만인이여 서로 껴안아라 / 세계의 입맞춤을 받아라 / (…)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그 어떤 고통 속에서도 베토벤이 잃지 않고 있던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휴머니즘, 인류애였다. 인간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것이 그를 위대하게 한다. 환희의 송가를 듣는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성기완 시인·뮤지션·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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