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와 ‘기계의 오작동’
사계 문승현 작사 작곡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짧은 쌰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저 하늘엔 별들이 밤새 빛나고 찬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
간밤에 편지 한장 적어 실어 보내고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눈이 온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짧은 쌰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저 하늘엔 별들이 밤새 빛나고 찬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
간밤에 편지 한장 적어 실어 보내고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눈이 온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돌아가네 미싱은 돌아가는/돌리는 기계다. 미싱에는 감정이 없다. ‘저 하늘엔 별들이 밤새 빛나도’ 미싱은 별을 보지 않고, 공장에는 다만 ‘작업등이 밤새’ 켜져 있다. 노동의 시간 동안 감정은 최대한 억압된다. 미싱은 부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업등에 비친 미싱은 매끈한 허리를 지니고 있다. 때로 미싱도 사람 같아 보인다. 미싱은 말없는 노동자들과 같다. 영양과 수면 부족으로 누렇게 뜬 여공들의 피부와, 잔업과 야근에 시달려 허깨비처럼 보이는 그 표정과, 미싱의 표면을 타고 흐르는 형광등 불빛은 잘 어울린다. 사람은 공장의 부속이자 미싱의 대화자다. 동시에 미싱에 의해 다뤄지는 천쪼가리들이다. 법은 사람을 꿰매고 덧대고 자르고 모양낸다. 미싱이 돌아가는 시간만큼 자본가는 이윤을 남긴다. 그래서 죽도록 돌린다. 공장에서 죽도록 돌아가는 건 미싱과 사람이고, 그로 인해 죽도록 태어나는 것은 제품들이다. 고장난 미싱은 폐기처분되고 쓸모없는 사람은 퇴직처리되며 불량한 제품은 반품된다. 미싱과 사람과 제품이 같은 위상의 존재가 된다. 미싱은 시간적이다. 미싱은 보편적 현재, ‘지금의 타임라인’에 동기화된다. 그것은 ‘과거’ 또는 ‘미래’를 지배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만을 지배할 뿐이다. 미싱은 묻지 않는다. 과거에 너는 누구였니, 따위는 미싱의 관심사가 아니다. 미래에 너는 뭐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역시. 여공들은 이런 질문을 삭제당한 채 청춘을 희생한다. 불법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반-기계’인가? 한때 ‘반-기계’로서의 불법을 꿈꾸던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의 ‘합법’은 야만이었다. 그때 법은 불법적 억압의 다른 이름이었다. 29년 전 6월10일, 청년들은 길로 쏟아져 나왔다. 불법이었다. 도로교통법 위반. 그날 명동에서 저녁 6시에 울려 퍼졌던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그 경적 소리는 1980년대에 존재하던 모든 노래의 총합이었다. 불법이었다. 모든 정당한 것들은 불법이었고 그것을 억압하는 전두환 독재정권의 기계만이 합법이었다. 그래서 외쳤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그 합법을 철폐해야만 했다. 그것이 불법의 당위성이었다. 흰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짧은 쌰스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청년들은 법을 우습게 여겼다. 우리가 듣던 노래들도 거의 불법이었다. 팝송의 명곡들은 금지곡으로 지정됐고 그것들은 불법 복제된 해적판으로 들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도 소리가 가늘어진 불법복제 카세트테이프로 떠돌았다. 그때 노래를 찾아다닌 청년들이 있었다. 노래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노래를 찾아다녔다. 노래가 있는데 노래는 없었다. 노래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찾는다’는 행위는 지금의 ‘검색’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것은 합법의 억압 바깥에 존재하는 불법의 생산이었다. 그러다가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이 발매되었다. 1984년의 일이었다. 학원자율화 조처의 일환이었다. 합법의 가시밭 속에 심어놓은 사탕발림이었다. 노찾사의 1집은 최초로 합법 발매된 민중가요로 기록된다. 그러나 혹독한 검열을 통과해야 했다. 그래서 더 서정적이었다.
성기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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