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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옛날을 겨냥한 인디폭탄

등록 2016-09-02 19:01수정 2016-09-02 19:10

[토요판] 성기완의 노랫말 얄라셩
최초의 인사말 아카이빙
안녕하세요  작사 강기영 작곡 강기영 노래 삐삐밴드

식사하셨어요? 별일 없으시죠?
괜찮으세요? 수고가 많아요.
우리 강아지는 멍멍멍
옆집 강아지도 멍멍멍
안녕하세요? 오오 잘 가세요. 오오

좋은 꿈 꾸셔요. 좋은 아침이죠.
내일 또 봅시다. 동방예의지국
지금 사람들은 1995년.
옛날 사람들은 1945년
안녕하세요? 오오 잘 가세요. 오오

좋은 꿈 꾸었니? 좋은 아침이야.
내일 또 보자. 니가 보고 싶어.
나는 누군가가 정말 필요해.
내일 우리 같이 여행을 떠나볼까?
안녕하세요? 오오 잘 가세요. 오오 (4차례 반복)
안녕.

삐삐밴드의 앨범 <문화혁명>은, 한편으로는 역사의, 역사적 인식의, 그것을 기반으로 한 혁명의 냉소적 해체였다. 타이틀곡 ‘안녕하세요’에서 삐삐밴드는 예의바르게, 무표정하게, 인사말 할 거 다 하면서 옛날을 폭파한다.

달파란(강기영, 베이스), 박현준(기타), 이윤정(보컬) 이렇게 세 사람이 결성한 삐삐밴드는 1990년대 인디 열풍의 뇌관이었다. 곡의 가사를 쓴 달파란은 늘 그렇듯 한발 앞서 폭발했다. 그는 인디 열풍이 불기 직전에 먼저 분 바람, 삐삐밴드라는 전조현상을 이끌었다. 그러나 현상이 현상으로 존재하기 시작하면 그는 이미 다른 곳으로 가 있었다. 인디가 현실이 되었을 때 달파란은 베이스를 놓는 대신 엘피(LP)를 돌리고 샘플러와 신시사이저를 만지는 전자음악가/디제이(DJ)로 변신했다. 박현준은 또 달랐다. 그의 모던한 기타 연주는 이전 밴드 에이치투오(H2O)에서 빛을 발했다. 핵심은 미니멀하고 단순한 접근에 있었다. 그에게는 특유의 적절한 귀차니즘이 있었다. 그 이상은 필요 없다는 듯 후려 젖히는 기타 커팅에 정말 그 이상은 없었다. 박현준은 어떤 망가짐을 보여줬다. 그 망가짐은 역설적으로 신사적이었다. 격을 갖춘 후에야 나타날 수 있는 퇴폐였다. 그래서 박현준은 90년대에 일종의 댄디즘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 두 남자에 이윤정이라는 화약이 더해졌다. 이 결합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두 남자가 자주 가던 압구정동의 어느 바에서 이윤정은 머리를 빡빡 민 알바생이었다고 들었다. 그들은 바에 앉아서 이윤정이 노는 모습을 보았겠지. 그리고 얼마 후 이 셋은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이윤정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귀여운 폭발물 같았다. 목소리가 또르르, 구르는 사이 그 큰 눈동자도 데구르르, 구른다.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귀엽다고 접근하면 바로 터지는 식.

‘안녕하세요’는 삐삐밴드의 데뷔 앨범 <문화혁명>(1995)의 타이틀 곡이었다.

식사하셨어요 별일 없으시죠 괜찮으세요 수고가 많아요

이 가사는 한국적 미니멀리즘의 시작 지점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이다. 사실 훈련된 전문 작사가라면 이 가사를 앞에 놓고 큰 고민에 빠질 것이다. 이게 가사가 될 수 있나? 인사말 연습인가? 사람 무시하는 건가? 더 깊은 이야기는 하기 싫다는 건가?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건가? 그렇다고 버릇없지도 않다. 인사를 잘하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노래 가사의 차원에서는 왠지 버릇없다. 그 이전까지 한국 가요사에서 이보다 더 간단한 가사를 만나볼 수는 없었다. 시적인 서정성과 소설적인 이야기 구조가 일단은 배제되어 있다. 이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이 메시지가 없는 ‘인사말 아카이빙’은 그러나 진짜 아카이빙이었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을 반추한 역사인식을 숨겨 놓은 자의식의 표출이었다. 그럴 수 있는 시대였다. 비로소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좋은 꿈 꾸셔요 좋은 아침이죠 내일 또 봅시다 동방예의지국

이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시간이 뒤죽박죽이다. 밤과 아침, 오늘과 내일, 시간의 순차성이 무시되고 편집된다. 무질서하게 겹친다. 시간의 몽타주, 시간의 가위질이다. 그다음, 쓸데없는 인사말이나 늘어놓더니 대뜸 ‘동방예의지국’이라고 결론을 낸다. 냉소적인 역사 인식이 깃들어 있다. 이 대목에 지나고 나서야 자기 세대의 정신을 암시하는 자의식을 살짝 보여준다.

지금 사람들은 1995년 옛날 사람들은 1945년

광복 50주년 되던 해가 1995년. 드디어 옛날은 갔다. 적어도 당시의 젊은이들은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옛날을 ‘옛날’이라고 선언한다. <문화혁명> 앨범은, 한편으로는 역사의, 역사적 인식의, 그것을 기반으로 한 혁명의 냉소적 해체였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관점이었다.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식으로 말하면 큰 이야기가 물러서고 작은 이야기가 의미 있게 등장하던 시절이었다. 사적이고 작은 우리만의 것, 대체할 수 없는 주름들이 만들어 나가는 우발적인 지형도 내에 문화적으로 숨는 것 자체가 혁명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더 돌아보자. 100억불 수출 목표를 달성하던 때가 1977년이다. 산울림의 ‘아니 벌써’가 그때를 상징한다. 18년 후, 1995년에는 2000억불 수출 목표가 달성된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노래가 ‘안녕하세요’다. 이 두 노래는 여러모로 비교된다. 두 노래 모두 8비트 리듬에다가 단순한 코드 진행의 로큰롤이다. 또한 아침의 노래다. 그러나 두 노래의 바탕에 있는 삶의 조건은 사뭇 다르다. 역사에 대한 반추가 끼어들 틈이 없을 만큼 눈코 뜰 새 없는 개발도상국 시민의 일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 벌써’라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흐름에 대해 새김질을 한 것이 이 노래다. 앨범의 속지를 보면 “시대에 따라서 인사도 변하나봐요”라고 적은 것이 눈에 띈다.

1995년 무렵, 공식적이고 딱딱하고 거대한 콘서트홀이 아니라 우리들만의 클럽 같은 문화가 젊은이들 가슴에서 비로소 싹트기 시작했다. 하긴, 그때는 피시(PC) 통신 시절이었고 비로소 나만의 방이 주어지던 때였다. 옛날 사람들은 십대 시절에 ‘자기 방’이라는 것을 꿈꿀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옛날’은 갔다. 간주 부분에 나오는 반음씩 떨어지는 신시사이저 음은 육이오 때 공습으로 떨어지던 폭탄을 상징한다고 했다. 이것은 어쩌면 ‘옛날’에 투하하는 폭탄일 수도 있다. 폭탄은 말없이 던질 것. 삐삐밴드는 예의바르게, 무표정하게, 인사말 할 거 다 하면서 옛날을 폭파한다. 추리닝 패션에 비니를 푹 뒤집어쓴 채 엉성한 포즈로 티브이(TV)에 등장한 삐삐밴드는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이것이 2000억불 시대 아이들의 세련된 도발 방식이었다. ‘안녕하세요’는 새로운 세대의 그러한 문화적 변화를 알리는 인사말 같은 곡이었다.

성기완
성기완
삐삐밴드는 이른바 ‘스리 코드’의 미니멀리즘 펑크록에 복잡미묘한 전자음향을 얹어 향후 제조될 인디 폭탄의 뇌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불가능한 작전’(1996)을 끝으로 사라지는 듯하더니 삐삐 롱스타킹으로 되살아나 ‘바보버스’라는 훌륭한 곡을 남겼지만, 한국 대중문화사에 길이 남을 그 유명한 ‘공중파 침 뱉기’ 사건으로 유성처럼 사라졌다. 요즘 티브이에 나오는 애들은 이런 도발을 꿈조차 꾸지 못한다. 또는, 꾸지 않는다.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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