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겨레 박종식(좌), 황지희(우)
[이코노미21] 현대상선, 우리사주 발행 등 필사적
현대중공업 “우리는 관심없다”
현대중공업 “우리는 관심없다”
‘전초전’은 끝났다. 이젠 ‘실전’이다.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의 ‘진검승부’가 시작됐다. 현대상선이 지난 17일 유상증자 발행가액을 결정하면서 양측의 경영권 분쟁은 1라운드에 본격 돌입했다. 이를 계기로 양측은 본격적인 ‘실탄싸움’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의 최대 변수 ‘현대건설 인수전’도 임박하고 있어 우호세력 및 실탄 확보를 둘러싼 양측의 싸움은 더욱 격렬해질 전망이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격이다.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증권’으로 이어지는 현대그룹 순환출자 구조상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거머쥐면 현대그룹을 지배할 수 있다. 현대상선의 경영권은 곧 현대그룹의 지배권이라는 얘기다. 그런 현대상선의 최대주주가 최근 바뀌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지난 4월27일 현대상선 주식 18.43%를 일괄 매입, 기존 최대주주 현대엘리베이터(17.16%)를 단숨에 밀어내고 1대 주주에 등극했다. 현대삼호중공업이 같은 날 매입한 현대상선 지분 8.25%을 합치면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분율은 26.68%에 달한다. 현대엘리베이터를 비롯한 기존 대주주의 지분 20.53%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그 중심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시동생 정몽준(MJ) 의원이 있다. 정 의원은 현대중공업그룹의 최대주주(10.8%)다. 이를 통해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를 틀어쥐고 있다. 현대그룹이 현대중공업의 현대상선 지분 일괄 매입을 ‘시동생의 난’이라고 규정지은 까닭이다. ‘시동생’ 정 의원에게 일격을 당한 현 회장의 현대그룹은 전전긍긍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현대그룹의 지배권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면서도 내심 ‘경영권 방어는 충분하지 않겠느냐’는 희망도 감추지 않는다. 이른바 ‘낙관론’이다. 현대그룹의 우호지분이 현대중공업을 앞서고 있다는 것이 낙관론의 첫 번째 근거다. 현재 현대그룹의 우호지분은 현대엘리베이터(17.16%), 케이프포춘(10%), 특수관계인(3.69%), 우리사주(3.89%) 등 총 34.74%. 반면 현대중공업그룹(26.68%), KCC(6.26%) 등 현대중공업그룹 우호지분은 32.94%에 불과(?)하다. 현대상선의 유상증자 후 지분 변화가 현대그룹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낙관론’에 힘을 실어준다. 현대상선은 지난 17일 유상증자 1차 발행가액을 주당 1만4천 원으로 결정했다. 현대상선은 직원들의 유상증자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3년 간 대출이자를 회사가 대납해주는 인센티브를 내놓았다. 현대상선이 우리사주로 배정되는 물량 600만 주를 모두 소화할 경우 우리사주 조합의 지분은 3.89%에서 8.23%로 늘어난다. 이를 통해 현대그룹은 39.08%의 우호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현대중공업그룹과 KCC 지분율은 각각 25.48%와 5.98%로 줄어들어 총 우호지분율이 31.46%로 감소한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의 유상증자를 통해 현대중공업그룹과의 우호지분율 차이를 최대 6% 가까이 벌릴 수 있는 셈이다. 현대상선의 한 관계자는 “유상증자하는 3천만 주 가운데 20%인 600만 주가 우리사주에 배당되는데 이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면 현대그룹의 우호지분은 다소 상승할 것”이라면서 “이를 통해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현대그룹이 마냥 안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의 지분을 각각 2.31%, 0.55%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중립지대’에 버티고 있는 현대백화점, 현대동차와 연합전선을 구축하면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막강한 자금력의 정 의원이 계열사를 동원해 현대상선의 추가지분 확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가장 큰 변수인 ‘현대건설 인수전’도 남아 있다.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은 8.69%.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자가 현대그룹의 진짜 주인에 등극할 수 있는 구도다. 물론 현대중공업그룹은 시종일관 “현대건설 인수에 관심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한 관계자는 “현대건설을 인수할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측의 시각은 다르다. 현대상선 지분의 일괄매입을 현대건설을 인수하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의 ‘적통’이다. 왕회장(정주영 명예회장)은 현대건설을 통해 현대그룹의 기반을 닦았다. 때문에 범(凡)현대가는 현 회장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것을 탐탐치 않게 생각한다. 현대건설은 현(玄)씨 가문이 아닌 정(鄭)씨 가문이 소유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왕회장의 위업을 계승할 ‘정씨 가문’은 정 의원이 유일하다. 정몽구(MK)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일찌감치 왕회장과 선긋기를 해놓은 상태다. 왕회장의 후계자격이던 정몽헌(MH) 전 현대아산 회장은 유명을 달리했다. 사업적으로도 정 의원의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건설을 탐낼 만하다. 현대중공업의 조선소나 플랜트 건설은 ‘건설분야’와 불가분의 관계다. 현대중공업으로선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짭짤한 ‘시너지 효과’에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상황이다. 현대그룹이 ‘정 의원의 현대중공업은 현대건설 인수전에 반드시 참여할 것이다’고 확신하는 이유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한 가장 큰 이유는 현대건설을 인수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고 목청을 높였다. 현대중공업의 현대상선 지분 일괄 매입은 ‘동쪽으로 쳐들어가는 듯 하면서 서쪽을 공격하는 성동격서 전략’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현대중공업그룹의 대표적 우군 KCC는 벌써부터 현대건설 인수전에 대비하는 인상이다. KCC는 최근 현대엘리베이터 보유주식 182만주를 독일 엘리베이터 회사인 쉰들러홀딩스에 전량 매각했다. KCC가 이번에 매각한 주식은 총 1천493억원. 여기엔 KCC 보유분 153만주, 울산화학 18만주, 정상영 명예회장 7만1500주, KCC건설 3만8400주 등이 포함돼 있다. 현대그룹은 이를 현대건설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속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KCC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KCC는 “(현대건설 인수는) 검토된 바 없다”고 밝히면서도 ‘현재까지’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상황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현대건설 인수전에 참여할 수 있다는 뉘앙스다. 현 회장, 현대상선 30만주 지분 극비리 확보 현대그룹이 최근 우호지분, 실탄 확보에 여념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그룹의 우호세력 중 하나인 케이프포천은 최근 주식 1만 주를 장내에서 매수, 현대상선의 지분율을 10.1%까지 한껏 끌어올렸다. 현 회장 역시 극비리에 총 30만 주의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 회장의 부모도 현대증권 지분 12억 원을 팔아, 현금을 비축해 놓은 상태다. 현대그룹이 경영권 분쟁, 현대건설 인수전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음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처럼 현 회장의 현대그룹과 정 의원의 현대중공업그룹은 일전을 벼르고 있다. 현대상선의 유상증자 절차가 진행되면서 양측은 ‘경영권 분쟁 1라운드’에 본격 돌입했다. 특히 ‘현대건설 인수전’도 임박하고 있어, 양측의 싸움은 더욱 격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승리의 여신 ‘니케’가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 중 누구에게 미소를 보낼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을지 모른다. 이윤찬 기자 chan4877@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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