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 시장장의 한 매장에 재난지원금 사용 가능 안내문. 연합뉴스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차 추가경정예산은 국민지원금의 지급 대상을 고액자산가 등을 제외한 ‘국민의 88%’로 확정했다. ‘소득 하위 70%’를 검토했던 정부와 ‘전국민 지급’을 주장했던 더불어민주당이 협의 과정에서 서로 명분 싸움만 되풀이하다가 절충안을 마련한 것이다.
당정 논의 과정에서 지급 대상은 80%→84%→100%→90%로 널뛰기하다 88%에서 최종 결정됐는데, 문제는 88%라는 기준의 근거가 없다는 점. 전문가들은 “과학적 논리도 근거도 없는 자의적 기준을 정했다”며 “정책 의사결정의 나쁜 선례”라고 꼬집었다.
애초 기획재정부는 중산층을 포괄하는 ‘중위소득 150%’를 기준으로 이에 해당하는 ‘소득 하위 70%’를 검토했다. 이후 당·정·청 협의로 기준이 ‘소득 하위 80%’로 결정되자 기재부는 “소득 5분위는 코로나19 와중에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이 줄지 않았다”며 뒤늦게 새로운 논리를 끌어오기도 했다. 여당의 90%나 100% 주장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설명이 제시된 바 없다.
전문가들은 당정의 명분 싸움과 정치적 셈법이 논의를 좌지우지하다 사회적 논란만 키웠다며 비판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현금 지원을 할 때는 지원이 필요한 대상을 가려 ‘중위소득 몇%’ 혹은 ‘소득 기준 얼마’로 선정하는 것이 기본이다. 기준을 ‘인구의 몇%’로 정하는 것은 선후관계가 바뀌었을 뿐 아니라 정책적 정당성도 없다”면서 “당정이 재정적으로나 정책효과에서나 실익이 없는 정치적 논란만 야기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책적 근거 없이 대상자를 정하다 보니 곳곳에서 불만이 터질 때마다 기준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자산은 없지만 소득은 높게 잡히는 일부 맞벌이 가구와 청년 1인 가구가 지원금을 못 받게 되자, 민주당은 대상자를 찔끔찔끔 늘리기에 급급했다. 최종 결정된 2차 추경에서는 건보료 기준 ‘소득 하위 80%’를 그대로 두고 맞벌이 가구는 가구원 수를 1명 추가하고 1인 가구는 연 소득 기준을 5천만원까지 늘리는 것으로 선정기준이 수정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를 두고 “족보도 없는 기준”이라는 거센 비판이 나온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은 “누구는 소득만 보고 누구는 자산까지 보는 불공평한 건강보험료 기준 탓에 불거진 불만인데, 건보료 기준은 그대로 두고 당장 쏟아지는 불만만 주먹구구식으로 막아낸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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