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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소상공인 생존권 갈아넣어 버틴 1년 반…“살고 싶습니다”

등록 2021-08-26 04:59수정 2021-08-26 09:14

“찔끔찔끔 지원하며 생색만…업종·지역별 구제계획 내놔야”
지난 1월28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7개 중소상인시민단체 집합제한·손실보상 관련 요구사항 전달 합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 1월28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7개 중소상인시민단체 집합제한·손실보상 관련 요구사항 전달 합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때는 희망이 보였어요. 뭐라도 될 줄 알았죠.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소상공인 편드는 건 처음 봤거든요.”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하는 노용규씨는 지난 5월 소상공인지원법 입법청문회에 출석해 방역수칙으로 인한 소상공인의 고통을 증언했던 ‘참고인’이었다. 당시 여야는 목소리 높여 ‘소상공인 손실보상 소급적용’을 외쳤다. 하지만 소급적용은 결국 무산됐다. 대신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소상공인 희망회복자금’이 마련됐다.

노씨는 지난해부터 146일간 집합금지 명령을 받아 가게를 닫는 바람에 빚이 6천만원이나 늘었다. 노래방 영업시간·인원 제한 탓에 매출은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그런데도 희망회복자금으로 받은 돈은 400만원에 불과했다. 추경 편성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은 ‘최대 2천만원’이라는 지원 상한액을 거듭 강조했지만 대다수 소상공인에게 이는 그림의 떡이다. 그는 “실망 그 자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대기업 구제엔 열심이었으면서 왜 지금 우리한테는 이렇게 나 몰라라 하느냐”며 씁쓸해했다.

방역수칙으로 피해 본 소상공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역시 입법청문회 참고인이었던 경기도 부천의 스터디카페 사장 곽아름씨는 지난해 6월 “직원들 월급이라도 제때 줘야겠다 싶어서” 아파트를 팔고 무주택자가 됐다. 그는 모든 손해를 자영업자가 옴팡 뒤집어쓰는 방식의 방역수칙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마이너스 통장은 있는 대로 가져다 썼고, 제가 판 집은 그사이 값이 두 배 뛰었어요. 폐업하려 해도 철거비만 2천만원 드는데, 자칫하다가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겠다는 우울한 생각이 들어요.” 곽씨의 스터디카페 매출은 여전히 반 토막 수준이고 임대료 등 다달이 고정비는 1천만원씩 나간다. 정부의 방역수칙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희망회복자금 300만원이 고작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집합금지·영업제한이 시작된 뒤로 그가 받은 소상공인 지원금을 모두 합쳐도 1천만원이 안 된다. 곽씨는 “우리는 우리 생존권을 담보로 행정명령을 준수하는데 정부는 아무 개선의 의지도 없이 숫자놀이만 한다”며 끝내 울먹였다.

정부는 “소상공인은 아무리 드려도 부족하다고 한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는 태도다. 하지만 실제 소상공인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단순히 금액보다는 ‘체계적 지원’에 가깝다. 찔끔찔끔 지원금으로 시간만 끌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자영업 구제 계획’을 달라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4차례의 소상공인 지원금을 지급했지만,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업종별·지역별 소상공인 피해 규모에 대한 분석은 전무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될 때마다 추경을 편성하고 때마다 지원 대상과 지원액이 기준 없이 정해져 왔다.

울분 토한 스터디카페 사장
“정부 방역수칙 따른 손해를
자영업자가 옴팡 뒤집어쓰는 방식
직원 월급 주려 집까지 팔았다”

빚 6천만원 쌓인 코인노래방 사장
“대기업 구제해주며 우리에겐 왜”

지난 5월 입법청문회에서 “우리는 응급환자”라며 지원을 호소했던 식당 사장 유아무개씨도 정부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유씨는 “얼마 주지도 않으면서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낸다. 우리를 거지 취급하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명동의 이름난 그의 식당은 매출이 70%나 줄었고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된 뒤론 저녁 영업은 작파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번 희망회복자금을 포함해 그가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은 총 1200만원밖에 안 된다. 두 달치 임대료에도 못 미친다.

유씨는 “정부는 무작정 4단계를 할 일이 아니라 그걸로 자영업자들이 얼마나 피해를 볼지, 그에 대해서 어떻게 보상과 지원을 할지 대책을 좀 같이 가지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당 유지는 해야죠. 제가 20년씩 함께 일한 직원들 하루아침에 직장 없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정부가 인건비든 임대료든 좀 보태주면 좋으련만.” 유씨는 “세상없어도 미룰 수 없는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적금도 다 깼고 대출을 6천만원이나 받았다.

그나마 위 사례들은 ‘여행업’보다는 사정이 낫다. 여행업은 1년 반째 ‘매출 제로’ 상태이지만 정부의 집합금지·영업제한 대상이 아니어서 이렇다 할 지원과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여행사 대표 이장한씨는 입법청문회에서 “여행업이 무너지면 글로벌 여행기업에 국부가 유출되는 계기가 된다. 손실보상법에 여행업을 꼭 포함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거절당했다. 여행업은 지난달 입법예고된 손실보상법 시행령에도 보상 대상에서 빠졌다. 희망회복자금 기준으로도 여행업은 ‘경영위기 업종’으로 분류된다. 이씨가 받은 희망회복자금은 300만원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2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폐업한 상점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2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폐업한 상점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답답한 마음에 문을 두드린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마땅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얼마 전에 여행업 대표자들과 문화부 담당자를 만났는데, 지원정책이란 것이 다 디지털 관련 대책이에요. 생각해보세요. 내가 배곯고 있는데 디지털·온라인 플랫폼 만들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7명 있던 직원은 2명으로 줄였는데, 2명 유지하는 것도 버거워요.”

코로나 재정 100조 이상 썼지만
대상·금액 그때그때 ‘응급 처방’
긴 호흡의 체계적 지원대책 절실

10월 시행 손실보상도 “기대 안해”
전문가 “현업 종사자 참여시켜야”

국회 입법청문회에서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증언하고도 ‘소급적용 무산’이라는 결과를 받아든 이들은 오는 10월부터 시행될 소상공인 손실보상에 대해서도 “큰 기대는 없다”는 반응이다. 정부는 범부처 ‘소상공인 손실보상 민관 티에프(TF)’를 만들고 10월8일까지 소상공인 손실보상 기준을 확정하기로 했다. 기준 마련과 함께 꾸려질 ‘손실보상 심의위원회’가 소상공인들의 피해 접수를 심사하고 피해 정도를 따져 보상금 지급 여부와 지급액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최재섭 남서울대 교수(유통마케팅학과)는 “보상심의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되느냐가 중요한 문제”라며 “전문성을 가지고 업종별로 판단해야지 일괄적 기준으로는 안 된다. 공무원이나 전문가들은 자영업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현업에 있는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지혜 이정훈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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