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성공시대/④ 한국공구조합
166곳 연간 300억 코발트·철분말 등 사들여
10% 싸게…가격파동 때도 공급부족 막아
10% 싸게…가격파동 때도 공급부족 막아
네트워크 성공시대/④ 한국공구조합
한국의 조그만 중소기업이 세계 원자재 시장에서 초대형 구매자로 군림한다?
얼핏 앞뒤가 안맞는 상황처럼 느껴지지만, 여럿이 머리를 맞대면 길이 트이는 법이다. DIY가구를 만드는 가정용 수공구부터 자동차 엔진 가공에 쓰인는 절삭공구까지 다양한 ‘연장’들을 제조하는 중소기업들의 모임 ‘한국공구공업협동조합’(공구조합)이 바로 이 독특한 사연의 주인공이다. 조합에서 회원사들을 끌어모아 연간 300억원 규모로 공동구매를 벌이는 까닭에, 코발트·철 분말 등 원자재 시장에선 ‘빅 바이어’로 통한다. 말하자면 공구조합이 ‘공구’(공동구매의 줄임말)의 달인인 셈이다.
공구산업은 기계·자동차·조선·전자 등 우리 경제의 주요 제조업을 떠받치는 핵심 기반산업이다. 실제로 공구조합 회원사들은 현대차에 초경 절삭공구를 공급하고 삼성전자에 반도체 금형 공구를 대주는 등 이른바 ‘대공장’제조공정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활약하고 있다. 숙련공의 ‘손’을 많이 타는 노동집약적 성격을 띠고 다품종 소량생산이 주류를 이루는 터라, 전형적인 중소기업 업종이기도 하다. 현재 국내에는 430여개의 공구 제조업체가 있는데, 이중 166곳이 공구조합에 가입돼 있다.
지난 1988년 설립된 공구조합은 전신인 금형공구공업협동조합 때까지 치면 20년이 넘게 공동구매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주요 원자재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업체들끼리 공생의 길을 찾은 것이다. 공동구매라면 일단 싼 값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공구조합은 매년 원자재 공급업체와 조달협상을 통해 시중가격보다 평균 10%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해 왔고, 지난해에만 79개업체서 130억원 안팎의 원가절감 효과를 거뒀다. 코발트 메탈 파우더의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단일구매에 나서는 것은 한국이 유일하며, 지금도 일본의 미쓰비시나 스미토모사 등보다 싼 값에 공급받고 있다.
하지만 공구조합의 강유일 이사는 “가격 장점은 초창기에 비하면 많이 사라진 편”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이 사라져 금리와 조합 수수료 부담이 만만찮고, 대형 업체가 개별적으로 나설 때 가능한 신용구매는 꿈도 꾸기 힘들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가 강조점을 찍은 공동구매의 매력은 ‘싼 값’ 보다는 ‘안정적인 수급’이었다. 코발트 메탈 파우더 처럼 가격변동이 심해 종종 파동이 벌어지는 물품의 경우, 공동구매로 최대 바이어 지위를 유지해야 물량 확보에 유리하다. 지난 2004년 말 킬로그램 당 40달러 수준이던 코발트 가격이 갑절까지 폭등했는데, 공구조합은 장기계약을 맺은 덕분에 공급부족 사태를 막으면서 동시에 800만 달러 정도를 아낄 수 있었다. 강 이사는 “우리처럼 원자재 공동구매를 하는 금형공업협동조합도 2년 전 후판가격이 폭등했을 때 포스코로부터 안정적 공급을 받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최근 한국의 공구산업은 질적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원자재 가격은 계속 치솟는데 시장은 이미 공급과잉 상태라 납품단가를 올리기 만만치 않은 형국이다. 예전의 수출 주력품목인 저가의 석재용 다이아몬드 공구 등으로는 세계시장을 뚫기 힘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공구조합은 신소재 및 다기능 고부가가치 공구 개발과 설비투자 확대로 올해 전체 생산이 지난해보다 11.3% 증가한 2조여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공동구매를 통해 회원사들의 발전을 돕고 조합 운영비용을 충당하는 공구조합의 사례는 단체수의계약제 폐지로 운영상 어려움에 처한 다른 중기 협동조합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구조합은 원자재 수급 안정을 위해 광업진흥공사를 통한 북한산 자원의 국내 반입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네트워크 성공시대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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