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통북스의 이영복 전무가 4천만여권을 저장·유통시키는 초대형 출판물창고에서 지게차를 이용해 선반에 책을 올리는 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18개사 지분 균등 10억 출자 갈등 최소화로 중기청 지원도
인건비 부담 축소 등 큰 효과 150개사 출판사 3000만권 유통
인건비 부담 축소 등 큰 효과 150개사 출판사 3000만권 유통
[네트워크 성공시대] ⑮ 문화유통북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은 출판사와 책 창고의 경우에 딱 들어맞는다. 출판업의 핵심인 기획과 편집에 필요한 공간은 얼마 안되지만, 일단 인쇄에 들어가면 최소한 초판 수천권을 찍는다. 독자들의 기억에 남는 책들이 많아질수록 책을 만드는 출판사는 비좁아진다. 18개사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문화유통북스의 공동창고는 중소 출판사들이 뭉쳐 ‘배와 배꼽의 딜레마’를 해결한 사례다.
“원래 출판사들은 서울의 4대문 안쪽이나 마포에 집중 분포돼 있었습니다. 학자, 교수, 전문저술가 그리고 언론과 자주 접촉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출판계에 활황이 찾아온 80년대 중반부터 정작 출판사들은 시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출판계의 골칫거리를 풀어보자는 생각에 알고 지내던 출판사 대표들과 공동물류창고사업에 나섰습니다.”
실천문학사 사장을 지낸 이석표 문화유통북스 대표는 “공동창고의 성공은 동업자들끼리 십시일반 뭉쳐 갈등을 최소화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1995년 설립 당시엔 10억여원의 출자금을 회사의 규모에 따라 달리 하려 했다. 이때 동녘출판사의 이건복 사장이 ‘지분은 균등하게, 이용료는 이용량에 따라 받자’고 제안을 했다. 누가 주인인가를 다투는 일이 없어야 오래간다는 그의 논리에 동업자들은 흔쾌히 동의를 표시했다. 문화유통북스는 이런 주주사들의 단합을 밑바탕으로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이 벌이는 협동화사업 대상에 선정돼 15억여원을 지원 받는 데도 성공했다.
경기도 파주시 와동리에 1200여평 부지를 확보해 출발한 문화유통북스는 이제 150여개 출판사들이 이용하는 대형 출판물류창고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만 3000만권의 책을 유통시켰고, 매출은 40억원이 이르렀다. 하지만 처음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 회사의 이영복 전무는 “선팅지가 뙤약볕에 녹아내려 버린 탓에 종이로 창문을 막고, 입출고 창구가 가까워 우왕좌왕하기도 하는 등 난관이 수두룩했다”고 말했다. 경험부족에서 온 이런 시행착오를 극복한 힘도 주주사들의 관심에서 나왔다. 돌베개 출판사의 한철희 사장은 “처음 창고에 지게차가 필요하다기에 서울 성수동 일대를 헤매고 다닌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책 창고라는 특성이 십분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공부도 꽤 열심히들 했다”고 돌아봤다.
최근 문화유통북스는 2차 협동화사업장을 건립해 파주시 검산동 8000평 터로 이사했다. 주요 창고의 경우 최고 높이가 18m나 돼 대형 전시장을 연상시키고, 동시 수용규모도 4000만권에 이른다. 완전자동화 시스템으로 설계돼 입출고의 시간과 노력도 줄였다. 특히 높은 곳까지 책을 쌓기 위해 책 선반 주변의 바닥을 180cm 이내에서 오차가 0.6mm에 그치는 초평면바닥으로 설계했다. 물류의 ‘물’자도 몰랐다는 ‘출판쟁이’들이 첨단창고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제약회사 등 다른 제조업 분야 관계자들도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할 정도다.
출판계의 ‘공동자산’인 문화유통북스는 출판물류 개척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도서출판 동녘의 이희건 주간은 “영업사원이 일일이 서점으로 책배달에 나서던 게 불과 15년 전의 일”이라면서 “이젠 공동창고 덕에 출판사들의 인건비 부담이 크게 줄었고, 덕분에 1인 출판도 가능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문화유통북스의 이석표 대표는 “반품처리를 원활하게 하는 등 출판사들의 애로사항을 줄이려 애쓰고 있다”면서 “앞으로 도매업까지 진출해 본격 물류기업으로 거듭날 장기계획을 갖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사진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이석표 문화유통북스 대표이사가 출판업계 공동창고가 가져온 긍정적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글·사진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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