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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9개사 9년간 ‘구로의 전설’ 쌓다

등록 2006-08-23 18:52

1997년 전자부품업체 13곳 손잡고 아파트형 공장 설립
제품개발 협업으로 매출 늘려 9곳 남아 ‘중견’으로 ‘우뚝’

네트워크 성공시대/(15) 한국전자협동

옛 구로공단 터는 이제 마천루의 숲처럼 보인다. 섬유업체나 가내수공업 형태의 전자부품 임가공업체들이 모여 있던 자리는 ‘구로디지털단지’로 탈바꿈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15~20층 규모의 첨단 아파트형 공장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면서부터다. 상전벽해라 할 구로공단 변신의 첫 장을 쓴 주역 중 하나는 1997년 이곳에 6층짜리 아파트형 공장을 지은 13개 중소 전자부품 업체들이었다.

“제조업에 3년 이상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굴 잡고 물어봐도 최고의 소원은 자기 공장을 갖는 거라고 답할 거예요. 경기도 광명, 서울 화곡동 등지에 흩어져 있던 기업들이 사업장을 합쳐 구로로 옮겨온 까닭도 거기 있습니다. 그 뒤 공동 기술개발, 상호발주, 정보교류 등 다양한 협업을 통해 동반성장을 일궈냈죠.”

공장 건립 및 운영 주체로 입주 기업들이 함께 설립한 법인인 ‘한국전자협동’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병우 동우자동도어 사장은 “부도를 맞고 팔려가는 회사가 생기는 등 10여 년 동안 제법 부침을 겪었다”면서 “지금 남은 9개사는 은밀한 사업정보를 나누고 급할 때 자금을 융통해 줄 만큼 끈끈한 우정으로 뭉쳐있다”고 말했다.

입주 기업들은 78억원을 모으고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50억원을 대출받아 2개 동의 공장을 지었다. 큰 건물은 현재 나산정밀, 동성정공, 동우자동도어, 동진산업사, 시코정보기술, 원샤프트정공, 이레전자산업, 파워넷 등이 층별로 나누어 사용하고, 다른 한 동은 몸집이 큰 내외시스템이 쓴다. 입주 당시 종업원 5명 안팎의 영세기업들이었지만 이젠 어엿한 중소기업들로 자리잡았다.

한국전자협동의 아파트형 공장 1층에 입주해 있는 동성정공 직원들이 프레스 작업 뒤 생산된 부품들을 점검하고 있다.
한국전자협동의 아파트형 공장 1층에 입주해 있는 동성정공 직원들이 프레스 작업 뒤 생산된 부품들을 점검하고 있다.
매월 둘째 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월례회의는 사업영역 개척이나 부품구매 관련 정보를 교환하는 사랑방 역할을 해 입주사들의 매출과 채산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자동문 업체인 동우와 전광판 및 은행 순번기를 제작하는 내외시스템의 협업은 대표적이다. 5년 전 자동문 위쪽에서 사람을 감지하는 센서를 만들어 일제 수입품을 대체했던 두 회사는 최근 지하철역의 스크린도어를 함께 개발하고 있다. 또 내외시스템은 중국 산둥 지방에 협력공장을 가진 나산정밀을 통해 4년 전 전자회로기판 임가공업체를 소개받아 생산비를 30%이상 절감할 수 있었다.

끈끈한 우정은 경영위기가 닥칠 때 숨통을 터주는 구실을 했다. 동진산업사의 이국진 사장은 “외환위기 때 거래 업체들의 연쇄부도로 직원들 정리해고를 해야 할 만큼 휘청거렸다”면서 “입주사 중 규모가 큰 이레전자가 연매출 4~5억원 규모의 부품을 발주해줘 위기를 넘겼다”고 돌아봤다. 급전이 필요할 때는 그동안 사무실 및 식당 임대수입, 건물 관리비, 주차료 등을 모아서 만든 기금이 쌈짓돈 구실을 한다. 박현양 내외시스템 사장은 “납품 규모가 갑자기 커지면 오더를 따도 소재·부품을 살 돈이 없어 쩔쩔 맬 때가 많다”면서 “은행보다 빠르고 편리해 1억원 안팎씩 조합기금을 빌려 쓰곤 한다”고 설명했다.


구로에 공장을 마련한 덕분에 인력을 구하는 데도 장점이 많다. 출퇴근도 편리하고 작업 환경이 개선되자 이직률도 크게 떨어졌다. 또 건물 6층에는 공용식당을 마련해 사원복지도 이전보다 좋아졌다. 한국전자협동이 건물 및 주차장 시설관리와 식당 운영을 맡아 하기 때문에 입주 기업들은 자잘한 업무에 신경쓰지 않고 지낸다.

“처음 입주할 땐 한창 사업욕심이 많았는데, 요즘은 모이면 리스크 관리에 대한 얘기를 가장 많이 합니다. 경기가 어려운 탓도 있겠지만 다들 50대에 접어들더니 걱정거리가 많아진 것 같아요. 허허. 10여년 동안 다양한 협업모델을 실험해 결실을 거뒀지만 그래도 최고의 성과를 꼽자면 믿음 가는 사업 파트너들을 만났다는 점입니다.” 구로디지털단지의 터줏대감이 된 김병우 사장의 설명이다.

글·사진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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