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정부는 소상공인 손실보전금을 3일 안에 지급하고 손실보상금 등 다른 사업도 한 달 안에 지급을 시작하는 등 최대한 빨리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없다는 점이다. 추경 재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초과세수’가 아직 정부 수중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채 없는 추경”을 약속했던 정부는 단기 자금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은행 일시차입을 활용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6일 “추경으로 갑자기 20조원 넘게 재정이 나가면서 일시적으로 현금이 부족할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 한은 차입금을 가져올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불리는 한은 차입금은 세출에 필요한 세입이 확보되지 않았을 때 한은에서 자금을 빌려 융통하고 나중에 들어온 세금을 통해 갚는 제도다. ‘급전’ 조달의 성격이라 하루나 이틀짜리 초단기자금부터 수개월짜리까지 다양하다. 매년 국회가 정한 상한(40조원)까지 쓸 수 있는데, 정부는 이번 추경 집행을 위해 수조원 규모의 재원을 여기에서 조달할 예정이다.
‘중앙은행 단기 차입’은 최후의 수단이다. 시중통화량의 변동을 야기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중앙은행 단기 차입을 엄격히 제한한다. 재정증권 등 국채를 발행할 경우 국가가 얼마를 빌리고 이자는 얼마나 내는지가 분명해지지만, 중앙은행 차입은 국채 통계에도 잡히지 않아 정부가 재량권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우려도 크다. ‘한국은행의 대정부 일시대출금 한도 및 대출조건’에도 “정부는 일시적인 부족자금을 ‘국고금 관리법’에 따라 한은 차입에 앞서 재정증권 발행을 통해 조달하도록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는 부대조건이 붙어있다.
일시 부족자금 조달을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인 재정증권(통상 63일물)은 상대적으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민간의 자금이 정부로 이전됐다가 다시 민간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라 시중통화량이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재정증권을 너무 많이 발행하면 채권이 소화되지 않고 금리가 올라가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한은 차입금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지만, 전문가들 생각은 다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요즘 같은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금리가 조금 올라가더라도, 물가 자극이 덜 한 재정증권을 쓰는 편이 낫다”며 “실제로 정부가 한은 차입에 앞서 재정증권 발행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최후의 수단인 ‘마이너스 통장’까지 끌어다 쓰는 배경에는 ‘국채 발행은 없다’던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 있다. 애초 지키기 어려운 경직적인 약속을 해놓고 이를 위해 국채 발행이라는 중요한 정책 수단을 정부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우 교수는 “윤 대통령의 약속 자체가 국고금 관리법 위반을 부르고 있다. 지금은 재정증권을 발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정부가 국채 발행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한쪽 손을 묶어버리면서 정책적 자유도가 무척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아직 들어오지 않은 초과세수를 기반으로 대규모 추경을 편성한 것부터 국채 발행을 피하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국채 없는 추경’을 말하면서 한은 차입금을 쓰는 정부의 행태는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은 차입은 ‘국채’로 분류되지 않지만 역시 정부가 진 빚이어서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형식논리로는 ‘국채 없는 추경’이라는 말이 맞지만, 국채 통계에 한은 차입금이 잡히지 않을 뿐 한은 차입금과 국채 발행은 경제적으로 보면 모두 부채”라며 “거짓말은 아니지만 잘못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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