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 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기업 범죄의 경우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법적 처벌을 완화하고 해당 법인에 대한 과징금 부과 등 행정 제재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대기업 총수의 사익 편취 등 사실상의 ‘개인 범죄’까지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16일 내놓은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에서 “경제 법령상 형벌이 기업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지 않도록 행정제재로 전환하고 형량 합리화 등을 추진하겠다”며 법무부·공정거래위원회·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가 태스크포스를 꾸려 개선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시이오(ceo)나 경제 주체들에 대해 형사적 처벌을 하는 법규들이 많은데 해외 사례를 봤을 때 기업 자체에 과징금을 물리는 게 일반적이다. 경제단체들이 꾸준히 제기했던 문제여서 전수조사를 통해 실효성 여부를 따져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공정위는 조만간 심사 지침을 개정해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책임자에 대한 고발 기준을 완화할 방침이다. 불공정거래 행위의 판단 기준도 완화된다. 재벌 총수 일가의 일감몰아주기(사익 편취)와 통행세 부과 등을 통한 계열사 부당 지원 등의 경우, 규제 적용 범위는 축소하고 예외 인정 범위는 넓히는 쪽으로 규정을 개정할 방침이다. 규제당국도 공정거래 분야는 행정·민사 중심으로 규제하고 형사처벌은 경성 카르텔 등에 국한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 대부분은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는 전속고발제로 운영된다.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고발이 없으면 공정위 단계에서 형사처벌 자체가 면제되는 셈이다. 지금도 공정위는 전속고발권 행사가 미흡해 ‘재벌 봐주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고발 기준이 더 완화되면 훨씬 더 많은 이들이 형사법적 처벌을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우리 경쟁법은 경제력 집중뿐 아니라 소유 집중까지 포괄 범위가 너무 넓고 과하다”며 “형사고발이 줄면 기업 경영 부담도 그만큼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는 ‘기업 범죄’라기 보다는 ‘개인 범죄’에 가깝다는 점이다. 일감몰아주기나 계열사 부당지원 등 사익편취 행위로 고발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고려대 교수)은 “다른 나라처럼 담합·카르텔 등 전통적인 공정거래 분야라면 행정 제재 중심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 총수들은 개인적인 사익 추구로 기업에 손해를 끼쳐 고발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사정이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과징금 중심 행정 제재의 실효성도 논란거리다. 국내 공정거래법은 행위 주체를 기업으로 보고 과징금을 부과한다. 경영책임자에게도 부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총수 일가나 최고경영자의 위법 행위로 제재를 받아도 그 손실 부담은 오롯이 회사가 지는 셈이 된다. 형사처벌 대신 행정 제재로 실효성을 얻으려면, 현행 과징금 수준을 대폭 높이는 한편 경영책임자한테도 의무적으로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 소장은 “주주대표소송 등 민사적 손해배상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섣불리 형사법적 처벌을 없애면 유사한 범죄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 통상 사전 규제 문턱을 낮출 땐 사후 규제를 더 엄격히 해야 하는데, 새 정부는 대규모 규제 완화와 동시에 사후 규제 문턱까지 전방위로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김회승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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