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출 만기가 도래해 연장을 요청했는데, 신용이 좋지 않다며 최고이율을 적용하고 원금상환 조건까지 요구했다. 어쩔 수 없이 은행 요구대로 연장했는데, 이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이자 부담이 큰 걱정이다”(충남 소재 기계부품 제조업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매출이 회복되지 않고 있는데, 대출금리가 크게 올라 이자 갚기도 급급한 상황이다. 수출 판로를 뚫어도 원료·설비에 투자할 여유 자금이 부족해 납품계약이 힘들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서울 소재 화장품 제조업체)
경기 둔화와 가파른 금리인상 영향으로 중소 제조업체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원재료 가격 상승 부담으로 이익은 쪼그라들고, 이자 부담은 훨씬 커졌는데도 자금 조달은 쉽지 않은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
19일 대한상공회의소가 674개 중소 제조 상장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조사 대상 기업의 영업이익은 1조3980억원으로 작년 동기(1조2780억원)보다 3.9%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이자 비용은 5070억원에서 6100억원으로 20.3% 급증했다. 이자 비용 증가율이 이익 증가율의 5배를 웃돈 셈이다. 이는 지난해와는 정반대 상황이다. 지난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 증가율은 2020년보다 19.7% 증가했고, 이자비용 증가율은 0.3%에 그쳤다. 총부채는 22조5140억원에서 24조8680억원으로 10.4% 늘어났고, 재고자산 증가율은 10.0%에서 15.6%로 높아졌다.
이 조사는 종업원 300명 미만 중소 제조업체(금융·부동산 제외) 중 분기별 보고서를 공시한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중소 제조업체 대부분이 원가 상승으로 흑자 폭이 감소하거나 적자를 내면서 부채와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상장사들보다 더 영세한 곳들은 은행 문턱조차 넘기 힘든 곳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상의를 통해 접수된 중소 제조업체들의 애로 사항을 보면, 최근 들어 유동성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호소하는 기업들이 많다. 정부가 시행 중인 만기연장·상환유예 제도의 지원 대상에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충남 소재 한 식품업체는 “코로나19 대유행 때도 꾸준히 이자를 갚았는데, 최근 사정이 너무 나빠졌다. 은행에 상환유예를 신청했더니 기존 지원을 연장하는 개념이라 신규 신청은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호소했다. 당장 연체가 불가피한데 정책 지원은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고금리 영향으로 실질적인 부채상환 부담이 커진 곳들도 아우성이다. 만기연장 때 현재의 재무상태 및 상환능력을 기준으로 금리를 재산정하기 때문에 고금리를 감수해야 한다. 인천 한 철강업체의 경우, 은행이 통보한 회사의 신용등급은 한 단계 상향됐는데도 만기연장 대출금리는 3배 가까이 올랐다.
업계에선 경기둔화와 고금리가 지속될 내년 상반기에는 자금난이 더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금리인상 효과는 통상 6개월∼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에 본격 영향을 미친다. 대구의 한 중소 철강업체 대표는 “추가 대출 길이 막히면서 이미 유예된 이자와 원금 상환 계획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올해보다 좋지 않은 내년에 부채 상황이 나아질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실장은 “올해가 금리 인상기였다면 내년은 고금리가 지속될 시기”라며 “경기가 살아나고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대응시간을 주고, 은행권의 자율적인 원리금 유예나 정책기관을 통한 저금리 대환대출 등 연착륙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승 선임기자
hon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