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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론스타 먹튀’ 전모 아는 스티븐 리 미국서 체포…누가 떨고 있을까

등록 2023-03-20 09:57수정 2023-03-20 18:02

스티븐 리 3월2일 미국에서 체포
송환되면 ‘론스타’ 재수사 가능성 커
법무부 “빠른 국내 송환 추진”

외환은행 부실로 몰고간 BIS 조작,
산업자본인데도 대주주 자격 심사 통과
론스타 ‘먹튀’ 전모 잘 아는 인물

추경호, 이창용 등 현 정부 고위층
‘론스타 사건’ 연루 의혹 밝혀질까
2012년 1월 30일 한국노총 산하 금융산업노조원들과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 및 소속 의원들이 30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국부 유출 론스타 먹튀 매각 승인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1월 30일 한국노총 산하 금융산업노조원들과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 및 소속 의원들이 30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국부 유출 론스타 먹튀 매각 승인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금도 그 결정에 후회가 없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론스타 중재 판정과 관련한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2003년과 2011년 각각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에 깊숙이 관여했다. 이런 이유로 야당 의원들은 “3천억원대의 론스타 배상 판정에 ‘원초적 책임’이 있다”고 몰아붙였고, 그는 “최선을 다한 결정”이라고 항변했다. 추 부총리뿐만 아니다. 론스타의 ‘먹튀’에 관련된 전직 관료들은 한결같이 ‘국익을 위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사실일까. 형사처벌 여부만 판단하는 법원의 무죄판결을, 정책 실패에 대한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오도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무죄판결로 미궁에 빠진 당시 정책 당국자들의 잘잘못을 가릴 기회가 온 것 같다. 17년 동안 잠적했던 론스타 사건의 핵심 인물 스티븐 리(이정환)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가 최근 미국에서 붙잡혔다. 법무부는 스티븐 리가 지난 3월2일(현지시각) 미국 뉴저지주에서 연방 수사기관에 의해 체포됐다고 최근 밝혔다.

스티븐 리가 송환되면 당시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정부 고위층의 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가 재개될 것이다. 피의자가 해외로 도피하는 순간 공소시효는 중단된다. 공범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매각하는 과정에서 정책 당국자 및 금융권 인사들과 계약의 긴밀한 내용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검찰이 2006년 수사에 착수했지만, 스티븐 리는 2005년 9월 이미 미국으로 도피한 뒤였다. 검찰은 그를 기소 중지하고, 미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당시 검찰은 그가 외환은행 불법 매각과 수익률 조작으로 업무상 배임, 조세포탈, 횡령 등의 혐의가 있다고 발표했다.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스티븐 리는 론스타를 대표해, 당시 외환은행 매각 과정을 감독한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계약 당사자인 외환은행의 이강원 행장을 만났다. 둘은 각각 정책 당국과 계약 당사자 쪽의 실세였다.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만만찮은 장애물이 있었다. 스티븐 리는 론스타가 장애물을 넘을 수 있도록 누가 어떤 도움을 줬는지 가장 잘 아는 인물이다.

당시 론스타 앞에 놓인 장애물은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이다. 은행법에 따르면 외국자본이 국내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되려면 금융회사 또는 금융지주회사여야 한다. 론스타는 사모펀드이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은행법 시행령(8조2항)은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금융기관이 아니어도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으로 은행 지분을 10% 이상 보유해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론스타는 이 조항을 근거로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비금융주력자’ 심사였다. 은행법(16조2항)은 금융업을 주력으로 하지 않는 비금융주력자는 은행 지분을 4%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했다. 금융당국이 비금융주력자 판정을 내리면 4%만 남기고 나머지는 처분해야 한다. 비금융주력자는 계열사 가운데 금융회사가 아닌 회사에 출자한 지분이 합쳐서 25%가 넘거나, 순자산이 2조원이 넘는 회사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인수 당시 일본의 호텔 등을 비롯한 비금융회사들을 소유했는데 합쳐서 순자산이 2조원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론스타는 비금융주력자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론스타가 이 두 가지 장애물을 넘는 데 관여한 인사는 변양호, 김석동(당시 금감원 감독정책국장) 등 퇴직 관료뿐만이 아니다. 윤석열 정권의 산업·금융 정책을 관장하는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당시 금융위 부위원장)도 깊숙이 관여했다. 특히 추 부총리는 직속 상관인 변양호와 함께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외환은행은 부실 금융기관은 아니었다. 자기자본비율(BIS)이 8% 아래로 떨어져야 부실 평가를 받는데 외환은행은 당시 10%가 넘었다. 따라서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금융당국의 ‘예외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은행제도과장인 추경호는 ‘외환은행 비아이에스 비율이 8% 이상 유지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상관인 변양호에게 올렸다. 그러나 그는 외환은행 매각을 두달 앞둔 2003년 7월15일 이른바 ‘10인 비밀회동’에 변양호와 함께 참석한 뒤 ‘비아이에스 비율이 악화될 것’이라는 정반대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변양호는 이를 근거로 금감위에 ‘예외승인’을 요청했고, 금감위는 “재경부에서 ‘예외승인’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는데, 이 공문의 작성자가 바로 추 부총리였다. 이후 외환은행은 부실 금융기관 정리 등의 ‘특별한 사유’에 해당해 금융당국의 예외승인을 받았다. 추 부총리의 태도 변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추 부총리는 지난해 5월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로부터 ‘변심’의 이유를 추궁당했다. 그는 “당시 국장(변양호)께서 종합 판단하에 (결정했다)”라고 얼버무렸다.

추 부총리는 금융당국의 부실한 ‘비금융주력자 심사’에도 관련돼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2003년 당시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가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을 추궁당하자, “당시 금감원과 금융위가 적정한 절차를 거쳐서 인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재경부 은행제도과장이었던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답변이었다. 그러나 추 부총리는 2011년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비금융주력자 여부를 따지는 것) 때는 금융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앞서 자신이 해명한 대로 금융위 부위원장은 심사 당국자였다. 론스타는 2010년 말 기준으로 일본의 골프장을 비롯해 비금융 계열사의 자산합계액이 2조8천억원이 넘는 비금융주력자였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때도 비금융주력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론스타의 일본 골프장 소유 사실은 이미 2008년 론스타가 금융당국에 제출한 자료로 다 드러나 있었다. 당시 추 부총리에 앞서 금융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추 부총리는 론스타가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소송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2013년 론스타 소송의 서면 심리절차가 시작됐을 때 국무조정실장이었던 추 부총리는 대응팀 단장을 맡아 소송 대응을 총괄했다. 당시 야당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단체는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이기 때문에 은행 인수 자격이 애초에 없었다는 사실을 쟁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비금융주력자 문제를 쟁점으로 삼지 않았다. 아이에스디에스는 국내법상 무자격 인수자에 대한 중재 관할권이 없다. 만약 비금융주력자 문제가 쟁점이 됐다면 론스타에 300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정은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법무부는 지난해 론스타 판정문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당시 관료들과 하나금융지주 관계자들의 이름은 알아볼 수 없도록 까맣게 칠한 상태로 공개했다. 법무부는 ‘외교기밀’이라는 이유를 댔지만, 론스타 배상 판정에 대한 책임규명을 막기 위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민변 송기호 변호사는 앞서 법무부를 상대로 판정문의 비공개 부분 공개를 요구하는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판정문에는 당시 금융 관료들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도운 과정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지만, 법무부가 이름을 가려 공개한 바람에 누가 어떤 책임이 있는지 확인이 안 된다.

최근 이 소송을 심리하는 재판부(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판정문 원본을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가 원본을 보고 법무부가 주장하는 비공개 사유가 타당한지 따져보겠다는 취지다. 재판부가 판정문 원본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리면 관련자들이 누군지 드러난다. 스티븐 리까지 국내에 송환돼 재수사가 이뤄진다면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 누가 떨고 있을까.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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