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제주시 제주대학교 안에 위치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전기차진단기술센터의 테스트 실험실. 아이오닉5 한 대가 러닝머신을 뛰듯 제자리에서 달리고 주행 속도, 시간, 습도, 압력 등의 데이터가 기록되고 있다. 최우리 기자
지난 3일 오전 제주시 제주대학교 안에 위치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전기차진단기술센터의 테스트 실험실. 마치 런닝머신을 뛰듯 아이오닉5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제자리에서 바퀴를 구른다. 실제로 달리고 있지는 않지만, 주행 시간과 속도, 습도와 차량 내·외부 압력 등이 앞에 세워진 화면 위로 데이터로 기록된다.
지난해 7월부터 전기차 안전도 등을 실험하고 있는 김우중 연구원은 “아이오닉5로 주행하는 전기차와 관련한 정밀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연구”라며 “고장난 배터리팩을 장착하거나 노후한 전기차라는 가정 하에 하루에 최대 6~8시간씩 주행을 하며 데이터들을 모아 분석에 활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차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국내 전기차 수는 올해 4월 국토교통부 통계 기준 43만7486대까지 늘었다. 그러나 전기차가 보다 더 대중화되기 위해선 전기차 화재와 정비 문제 등에 대한 소비자 불안을 뛰어넘어야 한다. 제주연구원이 2019년 공개한 ‘전기차 구매년도에 따른 이용 항목별 만족도’를 비교해보면 주행거리 200㎞내의 1세대 전기차(2015년 전 구입한) 소비자들은 배터리 성능·충전불안·정비·1회 충전거리 등 다양한 불만 사항을 제기했고, 주행거리 400㎞까지 성능이 향상된 2세대 전기차(2016~2020년 구입) 소비자들은 정비·충전 불안을 불만족 요소로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항목에 대한 만족도는 크게 개선되어도 정비·충전에 대한 불안이 여전하다고 느끼는 셈이다.
전기차진단기술센터는 이같은 정비·충전 불안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제주도 내 주행 중인 전기차 택시 100대(아이오닉5와 코나 이브이(EV))의 데이터를 모은 뒤 분석하는 작업이다. 분석 대상 차량이 배터리를 교체하거나 사고가 날 경우에는 연구진이 운전자와 정비업소에 직접 연락해 ‘채굴하듯’ 사고 차량의 부품 등을 수집하고 있다.
홍영선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미래모빌리티실증센터장은 “5초 단위로 데이터가 쌓이기 때문에 차량 1대당 2GB(기가바이트)의 자료들이 쌓인다. 현대차그룹도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지만 연구 목적에 맞는 데이터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전기장비 부품 유지 관리와 보수 방법, 정비 진단 노하우를 쌓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전기차가 늘어났는데 그동안 이런 연구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전기차 문제를 진단하기 위한 국가연구과제로 2020년부터 2024년 말까지 모두 180억원(국비 120억원, 지방비 6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여전히 높은 것에 대해 업계 쪽에선 일단 고개를 젓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비행기 떨어질 확률보다 낮은 비율로 사고가 나고 있다는 외국 통계도 있다. 다만 화재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전기차 리콜이 늘고 있지만, 배터리나 모터 등 핵심 부품보다 실제론 소프트웨어 관련 리콜이 많은 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이광범 박사(공학·법무법인 세종 고문)는 “전기차 리콜이 잦아도 고전압이나 배터리쪽 리콜이 압도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고등이 안 들어오거나, 에어백 안에 있는 사고기록장치에 가속페달 기록이 저장되지 않는 사례 등 배터리와는 관련 없는 사례도 많다는 것이다.
완성차·배터리 회사들은 전기차 자체 보다는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에 대한 예산 투자와 범정부 단위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후경 이브올(EVall) 대표는 예측하기 어려운 전기차 화재를 전담할 소방 공무원에 대한 화재 교육 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세계 1위 전기차 시장인 중국도 정부 주도의 안전 가이드를 만들었다. 소비자, 정비사와 엔지니어 등은 안전 교육을 받고 소방이나 구조 대원은 사고 조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터리로 인한 화재 위험성 역시 크다는 점은 완성차·배터리 회사들이 풀어야 할 과제다. 이광범 박사는 “급속충전은 배터리잔존용량(SOC)의 기준을 80~90%로 제한하지만 대부분의 완속충전은 100% 충전하고 있다. 100% 충전은 화재 위험성을 높일 수 있어 이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차체 설계를 강건하게 하고, 배터리 불량율을 줄이는 노력이 중요하다. 화재가 나기 전에 운전자에게 경고할 수 있게 자동차 시스템도 더 견고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차 사고와 화재를 우려하는 세계 각 나라들의 가이드라인은 완성차·배터리 업체의 과제이기도 하다. 유럽자동차연합은 오는 8월께 ‘전기차 안전 백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백창인 현대자동차 통합안전개발실장(상무)은 “유럽 백서를 참고해 우리도 법규 대응과 상품성 위주 개발을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사고 검증을 강화하려 한다. 충돌시 안전 성능을 높이고 배터리 화재 위험을 낮추도록 (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3일 오전 제주시 제주대학교 안에 위치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전기차진단기술센터의 테스트 실험실. 진단 중인 코나 이브이(EV) 옆으로 실제 제주 도내를 주행 중인 전기차 택시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다. 최우리 기자
제주/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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