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십조원대 세수 펑크가 기정사실화하면서 정부가 올해 예정된 재정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예산 불용’(편성된 예산을 쓰지 않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가뜩이나 하반기 경기 회복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정부의 지출 삭감이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재정 절벽’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21일 재정 당국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수 결손(정부 예상보다 세금이 덜 걷히는 것) 대응 방안의 하나로 예산 불용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 수입이 줄어드는 만큼 올해 계획했던 지출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지난 4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때 기자 간담회를 갖고 “매년 연내에 예산이 집행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재정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 확실시되는 사업이 확인되면 집행 효율화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 원래 계획대로 지출하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선을 긋고, 지출 삭감을 시사한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당초 예정돼 있는 재정지출 사업 중에서 집행을 백지화하거나 내년 이후로 미룰 사업을 추려내는 작업에 곧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1∼3월 국세 수입은 87조1천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24조원이나 줄었다. 지금보다 1~3월 세수 감소 규모가 작았던 지난 2013년과 2014년에도 정부의 불용액이 각각 18조1천억원, 17조5천억원에 달했던 만큼 올해 불용 규모가 이보다 커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대규모 불용 사태가 ‘재정의 적극적 역할’ 축소로 최근의 경기 부진을 더욱 심화시키고 경기 ‘상저하고’ 전망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이다. 기재부 등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올해 경기가 상반기에 주춤하고 하반기 들어 반등하는 상저하고 흐름을 점쳤으나, 반도체 수출 부진 지속 등으로 실제론 ‘상저하중’에 가까울 거라는 전망이 많은 편이다. 국내·외 주요기관도 한국의 올해 실질 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며 이런 시각을 굳히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올해 성장률 전망값을 석달전보다 0.3%포인트 하향한 1.5%로 확 낮춰잡았다.
특히 정부가 올해 경기 대응 차원에서 상반기에 재정을 몰아쓰며 조기집행하는터라 하반기 들어 ‘재정 절벽’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질 수 있다. 기재부는 중앙재정의 주요 사업비(약 243조원) 중 65%인 158조원을 상반기에 쏟아붓고 있다. 올해 1분기 성장률(전기 대비 0.3%)에서 정부 지출이 0.2%포인트를 오히려 갉아먹은 가운데, 하반기에는 재정 불용 사태가 성장을 더 끌어내릴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세수 부족과 불용이 이뤄진 2014년에도 연간 성장률(3.2%) 가운데 정부 지출의 성장 기여도가 민간 지출의 기여도(2.8%포인트)보다 훨씬 적은 0.4%포인트에 그치며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준 바 있다.
안태호 기자,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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