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업계의 제품 가격 인하 움직임이 식품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2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라면이 진열되어 있다. 연합뉴스
“라면값·과잣값 50~100원 내린다고 살림살이 나아질까요?”
<한겨레>의 ‘오뚜기·팔도까지 라면값 내린다…정부 압박에 줄줄이 투항’ 기사에 한 누리꾼이 단 댓글이다. 국무총리·부총리·‘재계 저승사자’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선 옥죄기의 결과물이 고작 ‘신라면 50원·새우깡 100원 인하냐’는 물음인 셈이다.
앞서 지난 27~28일, 농심을 시작으로 삼양·오뚜기·팔도 등 라면업계와 롯데웰푸드·해태 등 제과업계, 에스피씨(SPC) 등 제빵업계까지 잇달아 가격 인하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은 “소비자 부담을 덜고 물가안정에 적극 동참한다는 취지”라고 입을 모았다. 전날까지도 “국제 밀 가격이 내렸지만 제분업계가 밀가루 가격을 내리지 않은 데다 설탕·전분 등 다른 원재료는 값이 올라 (인하) 여력이 없다”고 강변했던 것에서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막상 발표된 내용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업계가 내놓은 평균 인하율은 4~5% 남짓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농심은 라면 출고가를 평균 11.3%, 오뚜기는 11.0%, 11월엔 삼양식품이 9.7% 올린 바 있다. 제빵업계 1위인 에스피씨가 올린 빵값 평균 인상률은 12%가 넘었지만, 인하율은 5%에 그쳤다. 오를 땐 10% 넘게 오르다 내릴 땐 반토막에 그친 것이다.
인하 품목도 논란을 불렀다. 인기가 높은 상품을 인하 대상에서 대부분 뺐다. 농심은 연 매출 2천억원이 넘는 ‘짜파게티’ 등 스테디셀러 제품은 제외했다. 삼양식품도 자사 매출 1위이자 매출의 65%를 차지하는 ‘불닭볶음면’ 시리즈는 뺐고, 오뚜기 인하 품목엔 연 18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진라면’은 없었다. 롯데웰푸드도 꼬깔콘·빼빼로 등 인기 과자의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 해태는 ‘오리지널 아이비’ 단 한 품목으로 생색을 냈다.
물론 식품업계만 탓할 일은 아니다. ‘자유시장경제’를 내세운 정부가 수요와 공급에 맞춰 자유롭게 경쟁해야할 업체와 특정 품목을 ‘콕’ 찍어 압박하는 것은 ‘정체성 부정’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원료는 많이 내렸는데 객관적으로 제품값이 높은 것에 대해선 공정위가 담합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유통구조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라면 값 인하 요구에 버티는 업계를 직접 겨냥했다.
식품업계 취재를 해보면 하소연부터 쏟아진다. 한 관계자는 “원윳값 협상 중이니 곧 우유 가격도 오를 텐데, 그때도 ‘공정위 조사’를 꺼내 들거냐. 서민 삶에 영향이 더 큰 공공요금에나 신경 쓸 일”이라며 “‘정책적 솔루션’이 아닌 ‘기업 팔 비틀기’로 물가를 잡겠다는 발상 자체가 쌍팔년도 식이다. 정부도 알면서 ‘보여주기식’으로 손보기 쉬운 식품업계를 겨냥한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고물가에 지친 시민들의 불만을 돌리기 위한 조처를 한 것이라며 억울함을 표한 셈이다. 라면의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는 1000분의 2.7에 불과하다.
‘물가잡기냐 가격통제냐’는 논란을 부른 정부 개입은 이전에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 때도 물가가 오르자 “라면값부터 잡겠다”며 공정위를 동원해 짬짜미 조사를 벌였고, 공정위는 2012년 농심·오뚜기·삼양에 1천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2016년 대법원은 “과징금 부과를 취소하라”며 결국 업계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어쩌면 정부는 과거 일은 덮은 채 “할 일을 했고 결과도 좋다”며 자화자찬하고, 업계도 “급한 불은 껐다”며 안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가격인하 소동에 대한 서민들의 평가는 첫 물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라면값·과잣값 50~100원 내린다고 살림살이 나아질까요?”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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