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이 7월1일부로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인하한다고 27일 밝혔다. 소매점 기준 1000원에 판매되는 신라면 한 봉지의 가격은 50원, 1500원인 새우깡은 100원 각각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한 대형마트에 신라면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에 라면 업계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라면 업계 1위인 농심은 27일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다음달 1일부터 인하하기로 했다. 라면업계 빅3 중 하나인 삼양식품 역시 삼양라면 등 12개 대표 상품 가격을 다음달 1일부터 평균 4.7% 순차적으로 인하하기로 했다. 오뚜기 역시 다음달 중 가격 인하에 나설 방침을 밝혔다. ‘국제 밀 가격 하락’을 내세운 정부의 압박에 따른 가격 인하 움직임이 라면을 넘어 제과·제빵 업계로 확대될지 주목된다.
농심은 이날 낮 보도자료를 통해 “7월1일자로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각각 4.5%와 6.9%씩 인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소매점 기준으로 1천원에 판매되던 신라면 한 봉지 가격은 950원, 1500원이던 새우깡은 1400원으로 각각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농심이 신라면 가격을 인하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농심 관계자는 “국내 제분회사로부터 공급받는 소맥분(밀가루) 가격이 오는 7월부터 5% 인하될 예정으로, 농심이 얻게 될 비용 절감액이 연간 약 80억원 수준”이라며 “이번 가격 인하로 연간 200억원 이상의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격 인하 대상인 신라면과 새우깡은 국내에서 연간 36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국민 라면과 국민 스낵이다. 여러 품목보다는 국민 생활에 밀접한 1위 제품을 대상으로 가격 인하에 나서기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양식품도 이날 오후 늦게 보도자료를 내어 “7월1일부터 순차적으로 삼양라면, 짜짜로니, 맛있는라면, 열무비빔면 등 12개 대표 제품 가격을 평균 4.7% 인하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삼양라면은 5입 멀티 제품 할인점 판매가 기준 3840원에서 3680원으로 4%, 짜짜로니는 4입 기준 3600원에서 3430원으로 5%, 열무비빔면은 4입 기준 3400원에서 2880원으로 15% 가격이 내린다.
농심과 삼양의 전격적인 가격 인하로 오뚜기 역시 가격 인하 대열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뚜기 쪽은 “아직 품목과 인하율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7월 중으로 라면 주요 제품 가격을 인하하기 위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농심이 7월1일부로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인하한다고 27일 밝혔다. 소매점 기준 1000원에 판매되는 신라면 한 봉지의 가격은 50원, 1500원인 새우깡은 100원 각각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한 대형마트에 새우깡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업계 관계자는 “씨제이(CJ)제일제당이 농심에 밀가루 공급 물량을 늘리는 대신 판매장려금을 지급해 5% 수준의 가격 인하 효과를 약속한 것처럼 다른 제분사 역시 비슷한 수준의 가격 인하에 나설 것”이라며 “농심과 씨제이제일제당의 인하율이 결국 업계의 가이드라인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업계에서는 농심·삼양식품의 라면값 인하를 두고 “정부가 기업 손목을 비틀기 한 결과물”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18일 “현재 국제 밀 가격이 50% 안팎 내렸다”며 “(라면 업계가)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가격을) 내렸으면 한다”고 라면 업계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이어 21일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원료(가격)는 많이 내렸는데 객관적으로 제품값이 높은 것에 대해선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유통구조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라면 업계가 “밀 가격이 내려도 제분사가 밀가루 가격을 내리지 않고 있다”고 강변하자 26일엔 농식품부가 나서 밀가루를 납품하는 제분업계 관계자를 불러모아 “가격 안정 협조”를 당부하고 나섰다. 결국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 라면업계가 백기 투항을 한 셈이다. 이날 농심의 주가는 신라면 50원 가격 인하 발표 뒤 급등해 전날보다 1만6000원(3.96%) 오른 42만원에 장을 마쳤다. 삼양식품 주가(11만원)도 4.86% 급등했다.
이제 라면 업계 외 제과와 제빵업계 등이 가격 인하 대열에 합류할지 관심이 쏠린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제과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작정하고 압박 수위를 높이면 기업이 당해낼 재간이 있겠냐. 다음은 어느 업계가 타깃이 될지 두렵다”며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하는 정부가 이런 방식으로 가격 인하·물가 안정책을 쓰는 것이 최선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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