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4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내년 예산안을 설명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올해보다 2.8% 늘어난 656조9천억원으로 확정했다. 지출 증가 규모가 20년 만에 가장 적다. 잇따른 감세 조처로 세수 기반을 약화시키고 지출을 위한 부채 확대도 경계한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가 고스란히 드러난 예산안이다. 경상성장률 전망값(4.9%)보다 낮은 수준의 지출 증가율인 탓에 찬바람 부는 경기를 더 끌어내리는 수준의 예산안이란 평가다.
정부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2024년도 예산안’을 확정·의결했다. 예산안을 보면, 총지출은 올해 예산보다 2.8% 늘어난 656조9천억원이다. 총수입은 같은 기간 2.2% 줄어든 612조1천억원이다.
올해 총지출 증가율이 5.1%였다는 점에서 정부가 내년 예산을 매우 짜게 편성한 셈이다. 정부 재정 통계를 현재 기준으로 바꾼 2005년 이래 최소 증가폭이다. 대규모 감세와 경기 악화로 내년 세수가 애초 전망(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 기준)보다 약 51조원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된 데 따른 것이다. 연구개발비·보조금을 중심으로 기존 예산 약 23조원이 잘려나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각에서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예산을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국채 발행을 통한 지출 확대는 경제 전반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총량 증가를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생계급여 인상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강화했다. 재정의 지원 대상을 취약계층으로 좁히는 대신 지원 폭은 좀 더 두텁게 하는 ‘선택적 복지’ 경향이 내년 예산안에 뚜렷이 담겼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내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받는 생계급여는 4인 가구 기준 13.2%(월 162만원→183만4천원) 인상하고 지원 대상도 3만9천가구 확대한다. 노인 일자리도 내년 103만개로 올해 대비 14만7천개 늘린다. 여러 금융기관에서 빚낸 소득 하위 30% 미만 자영업자 1만명을 대상으로 한 저금리 대출 전환 사업을 새로 만들어 예산 5천억원을 배정했다. 부부 합산 소득 연 1억3천만원 이하인 출산 2년 이내 가구에 저금리 주택 구매·전세자금 대출을 지원하고 공공 분양·임대주택도 우선 공급한다. 육아휴직 급여를 받는 유급 지원 기간도 12개월에서 18개월로 연장한다.
취약계층 지원은 강화했다고 하나 경기 회복이 늦어지고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염두에 두면 ‘짠물 예산’이 낳을 부작용은 커 보인다. 총지출 증가율이 당장 내년 우리 경제의 성장 규모(정부의 경상성장률 전망값 4.9%)에도 크게 못 미치는 탓에 정부가 성장을 갉아먹는 결과를 낳을 공산이 높다. 이런 재정 기조는 취약한 세수에서 비롯된 측면이 큰 터라 현 정부 임기 내내 이어질 전망이다. 나아가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 규모가 정부 추산(예산안 기준)으로도 올해와 내년에 각각 58조2천억원(국내총생산 대비 적자 비율 2.6%), 92조원(3.9%)이다. 특히 내년 재정적자 비율은 정부의 관리 기준(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 이내로 통제)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건전 재정’이란 구호도 빛바래는 셈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소비·투자·수출이 모두 좋지 않고 고금리 장기화, 중국 경제 악화 등 악재도 많은데 정부가 예산을 긴축 기조로 짤 때인지 의문스럽다”며 “세수 기반을 확충하며 기술 패권 경쟁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산업 정책과 양극화 등 경제의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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