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정용진 부사장에 헐값 몰아줬던 98년
장사 잘 해 차입금 80% 갚고 자본잠식 탈출
광주출점 실패했다던 신세계 책임자 되레 승진
장사 잘 해 차입금 80% 갚고 자본잠식 탈출
광주출점 실패했다던 신세계 책임자 되레 승진
1998년 4월20일 신세계는 긴급 이사회를 열었다. 3년 전 100% 자회사로 세운 광주신세계가 자금 부족을 이유로 유상증자를 결의하자, 이에 참여할 지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신세계는 당시 광주신세계가 ‘지속적인 영업부진’과 ‘자본잠식상태’로 차입금이 너무 많은 ‘부실계열사’라며, 추가출자를 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광주신세계의 유상증자 규모는 50만주(지분율 83.33%)나 돼, 신세계의 증자 불참 결의는 사실상 광주신세계의 주인 자리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이후 광주신세계의 새주인 찾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신세계 대주주인 이명회 회장의 장남인 정용진(38) 신세계 부사장이 신세계가 포기한 주식 전량을 주당 5천원씩 25억원에 인수해 광주신세계의 새 주인이 됐다.
25억원의 마술?=새 주인을 맞은 ‘부실기업’ 광주신세계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지 25억원의 돈이 새로 들어갔을 뿐인데, 8개월 뒤인 1998년 말 18억원에 이르던 자본잠식을 단숨에 벗어난 것은 물론 1년 전 300억원대에 육박하던 차입금 규모를 60억원으로 무려 240억원 가까이 줄였다. 외환위기 당시 ‘부실기업’이 증자 8개월 만에 증자금의 10배를 넘는 현금을 창출하는 마술같은 일이 일어난 셈이다.
정 부사장 등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참여연대 쪽은 “애초 부실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당시 광주신세계의 영업력이나 재무제표 등을 따져보면 자본잠식 탈피나 차입금 상환 등은 오너의 출자금 25억원보다, 그 해 영업에서 창출해낸 현금 수입 210억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참여연대는 보고 있다. 25억원 정도는 당시의 현금 흐름으로도 충분히 메울 수 있는 수준이며, 유상증자없이도 1년 정도면 자본잠식을 탈피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영업손실 한번도 없는데 부실계열사?=광주신세계는 광주시내 한복판인 고속터미널을 끼고 지어졌다. 광주사람은 물론 터미널을 오가는 전라도 사람 모두가 잠재고객이다. 당시 광주에는 송원백화점 등 지역연고의 소형 백화점 3곳이 있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광주지역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당시 신세계가 광주와 전라도 일대의 돈을 긁어모은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출점 이래 광주신세계는 영업에서 손해를 본 적이 없다. 유상증자 직전인 1997년에도 매출 1954억원에 영업이익 55억원, 순익 33억원에 이르는 알짜배기였다. 같은 해 신세계의 전체 순이익인 96억원의 3분의 1수준이었다. 하지만 신세계는 단순히 자본잠식과 차입금이 많다는 이유로 광주신세계를 ‘부실계열사’로 결론 내렸다. 자본잠식과 차입금 과다는 자본금이 덩치에 비해 너무 작았던 탓이라는게 참여연대 지적이다. 실제로 1997년 말 광주신세계의 자본금은 5억원으로 자산 971억원의 0.5%에 불과하다. 이는 당시 자산 972억원으로 엇비슷한 신세계푸드시스템의 자본금이 30억원(자산의 3%)이고, 백화점과 이마트 등 15개 정도의 점포로 구성된 신세계의 자본금이 560억원으로 점포당 30억원을 넘는데 견줘 지나치게 작은 액수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자본금이 작다보니 차입금 의존도가 높아지고 자본잠식도 쉬워 겉보기에는 부실한 기업으로 비친다”며 “왜 신세계가 이런 기형적 구조를 채택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부실’ 책임자는 승승장구=신세계는 현재 위치에 광주점을 내기 위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지역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 독립법인으로 출범시켰을 정도라는게 회사 쪽 설명이다. 하지만 신세계는 출점 3년 만에 광주신세계의 주인 자리를 내놓았다. 광주 출점의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그러나 신세계는 회사에 손해를 끼친 당시 광주 출점 책임자인 김아무개씨를 문책하는 대신 승진시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를 했다. 김씨는 1996년까지 광주신세계 점장을 지낸 뒤 이듬해 인천점 출점의 책임을 맡아 해당 점장까지 지낸 뒤 98년 말 신세계의 백화점부문 대표이사로 승진해 2003년 말까지 맡았다. 신세계 관계자는 “당시 오너 일가의 증자 참여는‘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살아남는다’는 폐단을 방지하고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대주주의 사재를 털어야한다는 여론에 따른 것”이라며 “조만간 참여연대의 고발에 대해 고소할 계획인만큼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곤 기자 c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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