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성공시대/(12) 부천로봇산업연구단지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로봇의 출현은 아직 먼 훗날의 일이다. 하지만 부천로봇산업연구단지에 입주한 18개 로봇업체와 관련 기관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로봇의 꿈을 함께 모여 ‘조립’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 연구단지에는 로보틱스연구조합을 구심점으로 탄탄한 기업간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으며, 10개 연구기관 및 대학이 인력과 기술의 든든한 지원군을 맡고 있다. 지능형 로봇은 동작제어, 명령어 수행, 공간·사물 인지 등 다양한 첨단기술이 어우러져야 하는 퓨전산업인 까닭에 이곳에 모인 업체들은 기술자문은 물론 실제 부품과 모듈을 주고받는 협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인공지능로봇 제작 과정을 실습할 수 있는 교육용로봇을 만드는 디엠비에이치의 박용길 사장은 최근 이 로봇에 음성인식 센서를 탑재하려다 걸림돌을 만났다. 주문물량이 적다보니 미국업체의 음성인식 칩을 구입하기가 수월치 않았다. 박사장은 “바퀴가 달려 굴러다니는 로봇에 음성명령을 내리려면 로봇을 따라다녀야 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말한다. 여기에 해결책을 제공한 곳은 이웃업체인 한국파워보이스. 피시컴퓨터에서 작동하는 이 회사의 음성원격제어 기술을 적용하니 두 문제를 한번에 풀 수 있었다.
부천로봇산업연구단지 내 상설전시장에서 어린이 관람객이 유진로봇의 다기능 홈서비스 로봇인 ‘아이로비’와 게임을 즐기고 있다. 사진 부천산업진흥재단 제공
관련 업체들이 자연스럽게 클러스터를 형성한 덕분에 외국기업보다 값싸고 품질도 우수한 국산 부품을 발견하는 사례도 많다. 산업용 로봇팔로 유명한 로보테크는 소형 교육로봇를 주로 생산하는 한울로보틱스로부터 모터와 감속기를 공급받고 있다. 로보테크 중앙기술연구소의 홍영기 이사는 “10만원대인 한울쪽 제품들은 40만원 안팎 하는 스위스제보다 저렴할 뿐 아니라 섬세하게 힘을 전달하는 기능도 빼어나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지난해 이 회사가 만든 우체국 도우미 로봇에는 20여개의 한울쪽 모터 및 감속기가 들어가 있다.
업체들끼리 플랫폼 및 금형을 공유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일단 완성된 플랫폼에 새로운 기술을 추가하는 경우 연구개발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 또 플라스틱을 찍어내는 금형은 로봇제작의 핵심기술은 아니지만 한번 틀을 제작하는 데 수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강아지형 로봇 제니보를 만든 다사테크와 교육용 로봇업체 디엠비에이치는 제니보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공학실습용 로봇을 만들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또 정밀완구를 만드는 퓨처탑은 음성으로 열고닫는 디지털 도어록 제작에 나서려는 한국파워보이스에 금형기술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두 달에 한번 꼴로 열리는 입주사 교류회는 로봇연구단지 내 협업상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업체 사장들이 모여 시장상황과 기술개발 과정에서의 어려움 등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는다. 지난 13일 모임에서는 최근 단지 내 로봇공동연구센터에 새로 들여올 공용설비를 정하기 위한 토론이 벌어졌다. 설비도입은 경기도와 부천시가 지원하는 5년 기한의 기반구축사업으로, 지난해에는 3차원 설계도면을 그대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내는 아르피머신을 비롯해 15개 장비를 구입했다.
로보틱스연구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신경철 유진로봇 대표는 “로봇은 아직 시장성은 부족하지만 미래유망사업으로 꼽혀 부천, 대전, 안산, 창원, 광주 등에 지역클러스터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로봇업체들은 하나의 제품을 사업화하기 위해 협력하거나 국외전시회에 함께 진출하는 등 다양한 협업모델을 실험 중인 단계”라고 밝혔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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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스킨십으로 높은 생산성”
“시간, 인력 및 비용의 중복투자는 이윤 극대화라는 기업의 목표에 맞지 않습니다. 로봇 기업들끼리 부품·플랫폼 공유 등 협업에 적극적인 것은 바로 중복투자를 막기 위해서지요. 나아가 저비용, 고효율을 실현함으로써 로봇산업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고요.”
로보틱스연구조합의 장성조 사무국장은 “부천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로봇 집적화 단지들에서 협업이 활발한 것은 기업논리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국책 연구개발 과제에 공동참여해 수익 및 기술을 확보하는 업체들이 대부분이라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에서도 ‘공동전선’을 취한다는 것이다. 또 “좁은 공간에 모여 ‘스킨십’을 나누다 보면 사업형태나 부품·모듈에 대한 일종의 ‘표준화’가 이뤄져, 가정용 및 공공기관용 로봇 시장의 형성도 앞당길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전국 70여개 회원사가 뭉쳐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주관·관리하고, 전시회와 포럼 등을 개최하는 로보틱스연구조합은 2004년 부천로봇산업연구단지가 문을 열 때 로봇업체들과 함께 입주했다. 임대비용이 주변 시세의 3분의 1 정도로 싼 데다 부천지역이 경쟁력을 갖춘 모터, 센서, 금형 업체들이 많이 모인 곳이어서 ‘단지’ 형성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는 “클러스터에 모인 업체들의 협업 이유가 중복투자 방지에 있는 만큼 앞으로 ‘지역별 중복투자’를 막는 데 힘을 모으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디스플레이 산업은 90년대 초만 해도 손목시계의 액정을 만드는 정도 수준이었지요. 당시 일본은 이미 5인치 액정 티브이를 내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0여년 동안 꾸준히 기술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업체들끼리 협력한 결과 지금은 세계최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로봇산업의 경우에도 선진국과 3~5년의 기술격차를 보이고 있지만 업체간 협업 및 경쟁을 통해 비슷한 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임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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