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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금리 인상’ 한은의 화려한 부활인가 헛된 모험인가

등록 2006-08-11 16:40수정 2006-08-11 16:53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등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명동 한국은행에서 회의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등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명동 한국은행에서 회의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현장리포트] 한국은행, 매달 금통위회의때면 짙은 커튼이 드리운다
태평로1가 한국은행 본관 15층. 매달 둘째 화요일 오전 9시, 이곳에선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열린다. 7명의 위원이 모여 한은이 정책금리로 삼고 있는 콜금리(금융기관 사이의 초단기 금리) 목표치를 결정하는 자리다. 경제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자리인만큼, 철저한 보안 속에 회의가 진행된다.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도감청을 막기 위해 회의실의 모든 창문은 짙은 커튼으로 가려진다.

10일, 8월 금통위가 열렸다. 이번 금통위에 쏠린 관심은 여느때와 사뭇 달랐다. 한은 이성태 총재는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다며 콜금리를 다시 올리겠다는 의지를 여러차례 내비친 터였다. 정부여당의 생각은 크게 달랐다. 각종 경제지표에 잇달아 빨간불이 켜지고 있는 마당에 한은이 콜금리를 다시 올린다면 경기 둔화세가 더욱 두드러지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콜금리 수준을 놓고 이처럼 왈가왈부한 것도 아주 오랫만의 일이다. 우스갯소리로, 한은 주변에선 이번에 한마디라도 내뱉지 않은 사람은 경제관료나 경제통을 자처하는 정치인이 아니라는 ‘농담성’ 푸념마저 오가곤 했다.

예상을 깬 금리인상 배경엔 무엇이?

10시20분. ‘콜금리 인상 결정’이라는 짤막한 한마디가 기자실에 전달됐다. 한동안 술렁거림이 이어졌다. 경제전문가들이나 시장참가자들 대부분이 이번 회의에서 한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금리동결이라는 결정이 내려질 것이란 예상을 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지난 6월에 이어 콜금리가 또다시 0.25%포인트 인상됨으로써, 지난해 10월 이후 콜금리는 열달 사이에 1.25%포인트나 올랐다. 지난 4월 취임한 이총재는 취임 이후 백일 남짓한 기간 사이에 두 차례나 콜금리를 올린 장본인이 됐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기자회견을 위해 기자실로 들어오는 이 총재의 표정은 평소보다 한결 밝아보였다. 무거운 짐을 벗게 된 데서 오는 홀가분함도 느껴졌다. 뒤따르는 집행간부들 표정에서도 긴장감 속에 뿌듯함이 묻어나왔다. 한은이 화려하게 부활하던 순간이다. “이번 금리인상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운을 뗀 이 총재는 8월 금통위를 앞두고 경기 둔화를 우려해 정부여당으로부터 콜금리 동결 압박을 받은 상황에서 금리 인상 카드를 밀어붙인 배경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갔다.

이성태 총재 “단기적 성장률에 연연해서는 안돼”

콜금리 미·FRB 금리 추이
콜금리 미·FRB 금리 추이
밑바탕엔 중앙은행은 좀 더 큰 틀에서 경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이총재 자신의 강한 소신이 깔려 있다. 전날 한국경제학회 학술대회 오찬 강연에서 “단기적인 성장률 수치에 연연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 총재는 “과거 저금리체제가 지속되면서 생긴 경제구조상 부작용을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총재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부작용으로는 부동산 시장 거품을 빼놓을 수 없다.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통화증가 감속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운을 뗀 이총재는 시중에 풀린 과잉유동성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는데 중앙은행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지난 4월 취임한 이 총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금리를 올리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통화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콜금리를 서둘러 중립금리 수준까지 올려놓아야 한다는 한은 내부의 공감대가 커진 것도 한몫했다. 금리가 중립금리 수준에 머물러 있을 때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의 열쇠를 확실하게 쥘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기어를 일단 중립에 가져다 놓아야만 상황에 맞게 전진이든 후진이든 할 수 있지 않느냐는 논리다. 송태정 엘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과거 신용카드 대란 당시 정치논리에 눌려 금리인하라는 정반대 결정을 내린 게 현재의 과잉유동성의 불씨가 됐다는 판단도 소신을 밀어붙이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라 말했다.

시야를 좀 더 넓혀 최근 중앙은행의 행보를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오석태 씨티은행 경제분석팀장은 “전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이 교감하듯 긴축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중앙은행이 새로운 정체성 고민을 시작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70년대와 같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한편에서는 중앙은행 무용론까지 거론되는 형국이다. 이제 중앙은행은 예전처럼 좁은 의미의 물가안정을 넘어 자산시장 안정을 포함한 경제 전반의 파수꾼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는 얘기다.

다음 정권까지 이어지는 금통위 위원, “정권 입맛 맞출 필요 적어”

여기에 더해 한은 내부 사정 역시 이총재의 소신 행보를 뒷받침하고 있다. 콜금리 결정권을 지닌 금통위원 대부분의 임기는 다음 정권까지 이어진다. 굳이 집권정당이나 정부의 입맛에 맞게 통화정책을 꾸려가야 할 필요성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이다. 오랫만에 내부 인사가 총재직에 승진했다는 분위기마저 더해지면서, 한은 주변에서는 ’요즘은 그래도 할 말은 하는 편’이라는 얘기가 조심스레 나돈다. 금통위를 앞두고 한 고위 인사는 정부가 정책으로 평가받듯이 이제 한은도 떳떳하게 정책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연히 그 전제는 독립성과 권한이다. 오래전부터 통화정책과 관련해 ’매파’로 불리던 이총재가 “콜금리 결정은 금통위 고유 권한”이라며 뚝심을 밀어붙인 것도 이런 배경에서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체감경기가 급속하게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콜금리가 다시 인상됨으로써 경기 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날 이 총재 스스로 “당초 전망과 달리 경기 하방 위험이 생겼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불과 한 달 전인 지난달 초 하반기 경제전망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4분기 이후 우리경제가 다시 상승세를 이어간다고 말한 것에 견주면, 경기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한은이 경기보다는 소신에 지나치게 치중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을 전망이다. 당장 콜금리 인상으로 인해 환율 하락 압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도 한은의 고민이다. 수출 기업에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은의 수출 전망이 민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밝은 편”이라며, 수출마저 나빠질 경우 경기가 더욱 둔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출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게 한은의 화려한 부활에 감춰진 그림자다. 홍춘욱 키움증권 리서체센터 팀장은 “지금 상황은 5년만에 미국경제 호황국면이 끝나는 상황인데도 한은이 자칫 경기를 볼모로 도박을 벌이는 셈”이라 꼬집었다. 홍팀장은 90년 초반 일본은행을 예로 들었다. 중앙은행 독립이라는 달콤함에 취해 세계경제라는 큰 흐름을 보지 못한 채 긴축기조에 나선 게 90년대 내내 일본경제에 커다란 후유증을 안겨준 사실을 되새겨봐야 한다는 얘기다.

한은의 화려한 부활인가, 헛된 모험인가? 그 답이 가려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게 분명해 보인다.

<한겨레>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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