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등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명동 한국은행에서 회의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표의 드라마’. 예상을 깨고 콜금리를 4.25%에서 4.50%로 올렸던 8월 금융통화위원회는 마지막 순간까지 금통위원들 사이에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 ‘박빙의 승부’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마지막 순간에 콜금리 인상 결정을 내린 것은 바로 금통위 의장을 맡은 이성태 총재가 던진 한 표였다. 표결 과정에서 의장은 명시적인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는 금통위의 오랜 관례를 깨고 이 총재가 직접 표결에 나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했음을 뜻한다.
지난 9월26일 공개된 8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강문수, 이성남, 박봉흠 의원 등 3명은 콜금리 인상에 명백히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콜금리 목표의 현 수준 유지를 주장”한 것으로 드러나 있다. 한은 총재를 포함해 모두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금통위에서 총재를 뺀 6명의 위원들 사이에 콜금리 인상과 동결 주장이 3대3으로 맞선 것이다. 그간 금통위 의사록이 위원들의 실명을 뺀 채 발언 내용만을 기록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 공개된 8월 금통위 의사록엔 콜금리 인상에 반대한 위원들이 실명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마지막까지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았음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비공개로 열리는 금통위 의사록은 통상 금통위가 열린 후 6주일이 지나 공개된다.
이처럼 금통위 회의에서 의견이 3대3으로 갈려 의장을 맡은 한은 총재가 캐스팅보트를 행사한 건 극히 이례적인 경우로, 98년 금통위원 상근제가 도입된 후 두 번째 사례로 꼽힌다. 금통위는 매달 두번째 목요일 한차례 열리는데, 금통위 하루 전날엔 한은 집행부서장들과 금통위원들이 참석하는 경제동향보고회의를 열어 콜금리 결정을 위한 열띤 토론을 벌이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금통위원들 사이엔 자연스레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한 의견이 조율되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금통위 본회의 석상에서 의견이 3대3으로 갈리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는 게 거의 불문율처럼 굳어 있다. 통화정책 향방을 결정하는 모든 책임이 총재 한 사람에게 떠안겨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금통위를 앞두고 이런저런 말이 오가다가도 정작 본회의에서는 만장일치로 콜금리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8월 금통위를 앞두고는 각각 콜금리 인상과 동결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강하게 터져나왔다. 현재의 금리수준이 중립수준을 밑돌므로 통화정책의 열쇠를 쥐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콜금리를 좀더 올려야 한다는 한은의 움직임에 대해, 경기둔화를 우려한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콜금리 동결 압력을 노골적으로 행사하기도 했다. 8월 금통위 의사록은 이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콜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위원들은 “부동산 가격이 6월 중순부터 진정되고 있어 기조적인 물가불안 요인은 완화되고 있는 반면, 경기상황은 불확실 요인이 점차 늘고 있다”는 견해를 회의 도중 여러 차례 밝혔다. 통화정책의 무게중심이 물가관리와 과잉유동성 흡수에서 경기관리쪽으로 옮겨와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나머지 위원들은 “금융시장에는 제반 유동성상황 지표로 판단할 때 여전히 과잉유동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콜금리 인상을 주장한 것으로 의사록에 나타나 있다. (8월 시점에서) 경기가 그렇게까지 우려할만한 수준은 못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콜금이 인상 결정이 내려진 8월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성태 한은 총재는 “경기상황을 놓고 이런저런 말이 많은데 한은이 보기에 아직은 경기가 그럴싸한 수준”이라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 뒤인 9월7일, 9월 금통위 직후 이 총재는 “경기 하방위험이 커졌다”고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콜금리 인상과 동결로 나뉜 위원들의 면면을 뜯어보는 일도 흥미롭다. 7명으로 이루어진 금통위는 한은 총재와 부총재가 당연직으로 참여하는 것을 비롯해, 재경부, 한은, 금감위, 은행연합회, 대한상의 등 5개 기관이 각각 한사람씩 추천해 모두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8월 금통위에서 콜금리 인상에 끝까지 반대표를 던진 강문수, 이성남, 박봉흠 위원은 각각 재경부, 금감위, 대한상의의 추천을 받은 인물이다. 반면, 콜금리 인상에 표를 던진 인물은 한은 부총재인 이승일 위원을 비롯해 한은 추천인사인 이덕훈 위원과 은행연합외 추천인사인 심훈 위원이다. 심훈 위원이 오랜 기간 한은에 몸담았던 ‘한은맨’이라는 점에서, 8월 금통위는 금통위를 앞두고 한은과 한은 외부세력이 벌인 한판 승부의 복사판이었던 셈이다.
통화정책과 관련해 두고두고 기억될 사건이라 불리는 8월의 금통위 의사록이 공개됨에 따라, 오는 10월12일 열릴 다음번 금통위가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일 열린 미국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계기로,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 싸이클에 마침표가 찍혔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8월 금통위에서 금통위 위원들이 이례적으로 마지막까지 격론을 벌였다는 사실까지 공개되면서, 앞으로 한은이 콜금리를 추가적으로 올리긴 더욱 힘들어진게 아니냐는 얘기가 힘을 받고 있는 중이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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